조지 오웰이 상상한 펍 ‘물속의 달’ 만큼 매력적인 곳
우리 술과 인문·예술 결합한 공간, 합정역 ‘주류사회’

마포 합정역에 위치한 필자의 아지트 ‘주류사회(김호일 대표)’는 우리술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보틀숍이자, 우리 술을 양조할 수 있는 술공방을 겸하고 있다. 막걸리와 증류주, 그리고 국산와인과 수제맥주까지 다양한 주류를 취급하고 있다.
마포 합정역에 위치한 필자의 아지트 ‘주류사회(김호일 대표)’는 우리술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보틀숍이자, 우리 술을 양조할 수 있는 술공방을 겸하고 있다. 막걸리와 증류주, 그리고 국산와인과 수제맥주까지 다양한 주류를 취급하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누구나 자신만의 아지트가 하나쯤 있었으면 한다. 자신의 취미나 취향을 다른 이의 간섭없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서재일 수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연주실이나 청음실일 수도 있다.

이런 독립적인 공간이 주는 의미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심리적 위안에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연구실을 자신의 공간으로 가지려 했고,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창작활동에 매진해왔으며,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들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과 술을 즐길 수 있는 펍이나 선술집을 단골로 삼곤 했다.

그중에서 책과 관련한 아지트를 소개한다면 마키아벨리와 몽테뉴의 사례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각각 자기 집이나 자신의 성에 있는 한 공간을 특별한 장소로 삼고 독서에 천착했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정청의 비서관에서 물러난 뒤 자기 집에서, 몽테뉴는 법관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있는 성에서 고전을 만난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가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그리고 몽테뉴는 행복한 삶에 대한 글을 남기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두 사람의 가문에선 오늘날 자신들의 조상 이름을 걸고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술을 좋아했던 애주가들의 아지트는 어떠할까. 글까지 남기면서 아지트 같은 술집을 소개했던 조지 오웰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술을 만드는 과정은 공학이지만 마시는 과정은 인문학이다. 보틀숍 ‘주류사회’는 인문학으로서의 술을 완성시키기 위해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담아낼 계획이다. 사진은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의 저자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프린트본)이다.
술을 만드는 과정은 공학이지만 마시는 과정은 인문학이다. 보틀숍 ‘주류사회’는 인문학으로서의 술을 완성시키기 위해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담아낼 계획이다. 사진은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의 저자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프린트본)이다.

그는 ‘물속의 달’이라는 펍을 자신의 아지트로 삼고자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2분 거리지만 샛골목에 있어 주정뱅이들이 쉽게 찾아올 수 없고, 손님은 많지만 대부분 자신의 자리에서 맥주와 함께 대화를 즐길 수 있는 곳. 그래서 그 ‘분위기’가 좋아, 단골이 됐다는 손님들의 말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겨울에는 두 곳의 벽난로가 공간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일반 바와 여성용 바가 구분되어 있고, 집에서 마실 맥주를 사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별도로 술을 판매할 수 있는 코너까지 갖춘 곳이다.

즉 오는 손님들이 원하는 감성을 맞출 채비가 된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았고 그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19세기 양식의 술집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조지 오웰이 살던 시절, 런던의 펍 중에 흑맥주를 생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은 10% 정도였다고 하는데, ‘물속의 달’에선 항상 기네스 생맥주를 즐길 수 있었고, 그리고 잔도 손잡이 없는 유리잔이 아니라 유리 혹은 백랍으로 만든 조끼(손잡이가 있는 맥주 전용잔)나 분홍빛의 머그잔이었다고 오웰은 말한다.

하지만 이 공간은 조지 오웰이 가장 이상적인 펍으로 상상한 곳이지 실제 존재했던 술집은 아니다. 조지 오웰이 런던의 다양한 펍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모아 ‘물속의 달’에 이입시킨 것이다.

필자에게도 아지트가 하나 있다.

연전 마포역 인근에 술을 만들 수도 있고, 마실 수도 있는 ‘술공방’을 운영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갖추고 전문성을 가미한 장소로 새롭게 마련한 장소다.

아지트는 합정역에서 걸어서 2분 정도면 올 수 있으나 미로 같은 길을 따라와야 하므로 취객이나 무뢰한들의 접근은 불가능한 곳이다.

그러나 우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전국의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와 약주, 소주는 물론 국내산 과일로 빚은 와인과 수제 맥주를 살 수 있는 판매점을 겸하고 있다.

인테리어도 그리 화려하진 않지만, 요즘 시대에 맞게 우리 술을 돋보이도록 보라색으로 통일시켜 공간의 안정성을 높였다.

그런데 이 공간을 정말 아지트라고 부를 수 있는 까닭은 우리 술을 비치했기 때문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한 술을 그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술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아직 유명해지지 않았지만, 실력 있는 화가의 그림도 전시하면서, 소수의 인원과 술과 인문학을 논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아지트’가 될 수 있도록 하려는 점도 추가된다.

술을 만드는 과정은 공학이지만, 마시는 과정은 인문학인 만큼, 술은 인문과 예술을 껴안을 수 있는 공간일 때 더 빛을 발하게 된다.

그 아지트의 이름은 ‘주류사회(대표 김호일)’다. 조지 오웰의 ‘물속의 달’은 상상 속에 있었지만, ‘주류사회’는 합정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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