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즈니스 때 경험 맥주산업에 투영해 콘텐츠로 활용
펍에서 출발해 맥주 잡지 이어 양조장과 박람회까지 개최

수제 맥주를 알리기 위해 ‘맥주잡지’를 창간한 비어바나 이인기 대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쌓은 기획력을 발휘해 수제맥주 전문 박람회까지 개최하기에 이른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대한민국국제 맥주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이인기 대표의 모습.
수제 맥주를 알리기 위해 ‘맥주잡지’를 창간한 비어바나 이인기 대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쌓은 기획력을 발휘해 수제맥주 전문 박람회까지 개최하기에 이른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대한민국국제 맥주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이인기 대표의 모습.

행위의 결과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관심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필연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특히 직업은 개인의 선택이 중요하기에 우연함을 강조하는 것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느낀 점도 그랬다. 음악 비즈니스를 하던 사람이 맥주를 만들고 있다.

당시 4대 음반사 중 하나였던 ‘예당엔터테인먼트’에서 콘텐츠 기획업무를 맡았던 이인기 비어바나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맥주 관련 비즈니스에 종사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우연함은 필연이었다. 그가 해왔던 일이 콘텐츠 기획이었기에 그 기획력을 맥주 전문주점에 온전히 투입했던 것이다.

이야기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얼개를 맞추는 핵심 키는 그가 가진 호기심과 열정이었다.

음악과 술의 연관성도 마찬가지다. 신을 위한 제의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 술이고 음악이다.

그래서 이 둘은 보완재가 돼 인류가 일궈온 문명의 한 축을 이루었지만, 그에게 이 둘은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로 전달될 수 있는 하나의 원천 콘텐츠였다.

처음에는 LP판과 테이프에 실리던 노래가 90년대 와서는 CD 형태로 제작되고, 지금은 디지털음원으로 출시되고 있는데, 형태만 다르지 모두 같은 음악을 담고 있다는 특징은 맥주도 같다고 그는 말한다.

캔과 병, 그리고 케그 등 담는 용기만 다를 뿐 용기에 담는 내용물은 같은 맥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기획력을 다양하게 접목시킬 수 있는 맥주 비즈니스에 점점 깊이 빠지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 대표가 처음 맥주 쪽 일을 하게 된 것은 10년 전 문을 연 인사동의 펍 ‘슈가맨’이었다.

전통주점이 밀집해 있는 인사동에서 일반적인 맥주로 승부를 건다는 것이 무모하게 느껴졌다는 이 대표는 맥주를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서울 문래동에 자리한 브루펍 ‘비어바나’는 이인기 대표가 맥주의 본질을 알기 위해 만든 곳이다. 이 곳에선 현재 15종 가량의 자체 맥주를 판매하고 있는데 사진은 그 중 샘플러 시음세트로 판매하고 있는 8종의 맥주다. 이중 오른쪽 상단에 있는 검은색의 맥주 ‘영등포터’는 유럽 최고의 맥주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맥주이기도 하다.
서울 문래동에 자리한 브루펍 ‘비어바나’는 이인기 대표가 맥주의 본질을 알기 위해 만든 곳이다. 이 곳에선 현재 15종 가량의 자체 맥주를 판매하고 있는데 사진은 그 중 샘플러 시음세트로 판매하고 있는 8종의 맥주다. 이중 오른쪽 상단에 있는 검은색의 맥주 ‘영등포터’는 유럽 최고의 맥주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맥주이기도 하다.

벨기에의 수도원 맥주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든 맥주를 구해 맛보았고, 맥주 관련 책을 수배해 직원들과 함께 독회하면서 관련 지식을 쌓아갔다고 한다.

당시 수제 맥주와 관련한 국내 도서는 기행기를 다룬 책 한 권이었기에 그는 아마존에 의지하며 지식에 대한 갈증을 채워갔다.

그러다 느낀 점은 “맥주가 우리가 만들어 마시는 ‘소맥’의 보조제가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외서를 접하면서 쌓은 수제 맥주의 세계를 단지 직원들과 공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이 대표는 결국 맥주 잡지를 내기로 한다.

그것이 현재 50호까지 발행한 《비어포스트》다. 2015년에 창간한 이 잡지는 올 11월이면 6년이 되는 수제 맥주 전문 월간지다.

물론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최근에는 계간 형태로 발행하지만, 매호 충실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잡지다.

그런데 잡지가 끝이 아니었다. 수제 맥주 전도사로 나선 이 대표는 결국 2018년에는 문래동에 ‘비어바나’라는 브루펍(양조장을 겸한 펍)을 오픈한다.

수제 맥주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것이 양조업 진출의 이유였다. 더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선 만들고 있는 맥주의 한계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발을 넓히던 이 대표는 결국 음악 비즈니스에서 기획했던 대형공연을 맥주에도 접목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맥주 박람회로 연결한다. 올해로 3년이 된 ‘대한민국 맥주산업 박람회’가 그것이다.

이처럼 이 대표는 하나의 콘텐츠로 다양한 활용법을 만들면서 수제 맥주가 더 많이 사랑받는 날을 손꼽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최근 펼쳐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수제 맥주산업의 상황에 대해선 할 말이 많은 듯하다.

“모든 사람이 수제 맥주를 알고 있지만, 아무도 수제 맥주를 모르는 상황입니다.” 역설적인 이 말을 통해 이 대표는 현재 수제 맥주 업계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 우려감을 표한다.

빠른 성장세 덕분에 자본이 급격히 유입돼 수제 맥주 본연의 모습을 놓친 양조장들이 다수 출현하고 있는 데다, 대형 맥주회사에서 기존 수제 맥주 영역의 술들을 OEM 생산하면서 경계선이 흐릿해졌다고 그는 말한다.

심지어 최근 한 회사가 수제 맥주 양조장들의 레시피 콘테스트를 거쳐 10개의 맥주를 선정해 자사 공장에서 생산, 편의점을 통해 유통하는 프로그램까지 실행하고 있어 대기업에 의한 수제 맥주 시장의 혼란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래서 이 대표는 ‘수제 맥주’라는 단어도 새롭게 생각해봐야 한다며 새로운 용어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지역에서 생산해서 지역에서 소비되는 맥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아 문화로서의 크래프트 맥주 산업을 알차게 챙기고 싶다는 것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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