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한 모양 탓에 과일전 망신 대상으로 홀대받아
가을이면 향기 그윽한 노란 열매로 차와 술 되어 과시

▲모과나무는 너무 단단해 목재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다. 간혹 기둥으로 사용되긴 하는데,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워진다. 구례 화엄사 구층암의 요사채 기둥이 대표적이다. 사진은 장성 백양사의 모과나무다. 밑기둥이 펑퍼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과나무는 너무 단단해 목재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다. 간혹 기둥으로 사용되긴 하는데,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워진다. 구례 화엄사 구층암의 요사채 기둥이 대표적이다. 사진은 장성 백양사의 모과나무다. 밑기둥이 펑퍼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속담이 있다. ‘나무에서 열리는 참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목과(木瓜)’. 노랗게 익은 열매는 여름 참외처럼 생겼지만, 울퉁불퉁한 모양은 예쁘지 않아 ‘과일전 망신’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모과나무는 봄에 핀 꽃으로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가을에 열리는 열매와 껍질로 입을 즐겁게 해주는 과실나무다. 

5월 붉은 빛을 띠며 피어나는 꽃은 이 나무의 열매의 생김새를 잊게 할 만큼 존재 이유가 분명하다. 

그런데 그 꽃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그냥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꽃이 피는 계절, 모과나무는 물이 오르면서 껍질이 축축해진다. 물관을 통한 수분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나무의 껍질까지 물에 젖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을 피우고 난 뒤 그 껍질의 일부가 벗겨지는데, 그때 모과나무의 속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얼마나 힘겹게 꽃을 피웠으면 그렇게 앓듯이 껍질을 벗고 속까지 드러내겠는가. 그렇게 피어난 꽃은 여타의 봄꽃에 뒤지지 않고 자존감을 뽐낸다. 그런데도 ‘과일전 망신’의 대명사가 되는 것은 여전히 외모를 중시하는 태도 때문이다. 

모과에 대한 홀대 사연을 하나 더 들어보자. 조선 세조 때의 충청도 선비 루윤의 이야기다. 단종이 폐위되면서 벼슬을 버리고 청주로 내려온 루윤은 세조가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 그를 불렀으나. 그때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모과나무를 빗대 “나는 이 모과나무처럼 쓸모없는 사람”이어서 벼슬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의 ‘쓸모’는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에 따른 것이다. 

가을이면 가지가 휠만큼 주렁주렁 노란색 열매를 맺지만, 입으로 베어 먹을 수 없을 만큼 딱딱한데다 신맛이 강해 다른 과일처럼 먹을 수 없으니 그리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모과는 꽃의 아름다움만큼 향으로도 충분히 존재가치를 보여주는 나무다.

입을 즐겁게 해주는 이 열매는 주당들에겐 술의 재료가 돼주었고, 차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차의 재료가 돼 향기를 전해준다. 온몸을 불태우듯 모과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건네준다. 게다가 방향제가 돼 자동차나 거실에 모과 몇 개 정도 접시에 담아 놓은 경험들도 있을 것이다. 

▲모과나무는 5월쯤 붉은 색을 띤 꽃이 핀다. 꽃만 보면 모과나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 계절이 되면, 수관을 통해 물 공급이 활발해져 껍질까지 축축할 정도가 되고 속살까지 드러내게 된다. 사진은 올해 5월 예산 추사고택에 있는 모과나무의 꽃이다.
▲모과나무는 5월쯤 붉은 색을 띤 꽃이 핀다. 꽃만 보면 모과나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 계절이 되면, 수관을 통해 물 공급이 활발해져 껍질까지 축축할 정도가 되고 속살까지 드러내게 된다. 사진은 올해 5월 예산 추사고택에 있는 모과나무의 꽃이다.

가을이면 으레 생각나는 모과는 그래서 시인의 입을 통해서도 노래 불려왔다. 
“앞산에 가을 비/뒷산에 가을 비/낯이 설은 마을에/가을 빗소리/이렇다 할 일 없고/기인 긴 밤/모과차 마시면/가을 빗소리” 박용래 시인의 ‘모과차’라는 시의 전문이다.

박 시인에게 가을은 모과인 셈이다. 길고 외로운 밤, 시인은 모과차를 마시며 허전한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김명리 작가의 신작 《단풍객잔》에도 모과나무는 등장한다. “그 절의 허물어져 가는 요사채 뒷곁에 오도카니 서 있던 꽃 핀 모과나무 한 채를 이 봄에 나는 기어코 만나고야 말았던 것이다./세상에! 못생긴 과실 모과가 안겨주는 저다지 비밀스런 향낭(香囊)의 정체란 비할 데 없이 가녀린 모과꽃 붉은 꽃잎 한 장, 한 장의 타는 듯 애절한 아름다움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러한 모과 상찬은 모과가 지닌 고유한 특성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알려지지 않은 모과의 특성 중 하나는 다 익은 모과가 땅에서 검게 썩어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육이 썩어야 과육 속에 들어 있는 씨앗이 발아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과일은 썩으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모과는 여전히 향기를 피우며 자신의 종족을 번식하는 것이다. 

추석이 지나 가을이 깊어지면 모과의 계절이 다가온다. 어떤 이는 편을 내 침출주를 내거나 청을 담아 차로 즐길 것이다. 그때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 지난 5월 힘을 다해 피워냈던 꽃과 그 열매가 지닌 향기로운 모습을 추억해내자.

그러면 구례 화엄사에 있는, 다듬지 않고 천연의 모습을 그대로 기둥으로 세운 요사채 건물의 아름다움이 절로 이해될 것이다. 펑퍼짐한 하관의 모습이 그때 비로소 절집의 미학으로 다가올 것이다. 개심사 요사채의 대들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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