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김두철 상명대 명예교수

보험계약 전부를 구성하는 요소 살펴야
산출방법서는 오히려 계약자 보호 수단
약관 난이도 아닌 보험 원리로 접근해야

5년째 일진일퇴의 공방을 지속하던 즉시연금 분쟁이 대법원 상고를 결심한 보험사의 결정으로 최종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생명보험사에서 가입하는 즉시연금은 보험료 전액을 일시에 내면 보험사가 보험료를 운용하고 매달 이자를 연금 형식으로 제공하는 상품이다. 논란이 된 건 즉시연금 중에서도 상속만기형(만기환급형) 상품이다. 
보험사는 만기일에 처음 냈던 보험료를 돌려주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평소 운용수익의 일부를 적립해둔다. 때문에 매월 발생하는 이자(연금액)에 일정 금액을 공제한 후 지급한다. 
문제는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비롯했다. 한 가입자는 실제 연금액이 가입 당시 설명 들었던 월 연금 예시액에 못 미친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이후 보험사가 줄어든 연금액에 대한 설명의무를 충실히 했는지 여부가 재판으로 이어졌다. 보험사는 즉시연금의 이자 계산식이 기초서류 중 하나인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이하 산출방법서)’에 적시됐다는 입장이다.
김두철 상명대 명예교수와 즉시연금을 둘러싼 쟁점에 대해 살펴봤다.

2022년 3월 21일 05:09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Q. 즉시연금 재판은 보험회사가 약관에 만기환급금 마련을 위해 연금액을 차감해야 하는 구체적 내용을 명시했는지 여부로 판결이 갈리고 있다. 보험 이론적 측면에서 바라볼 땐 어떤가?

A. 보험 이론에서는 보험계약을 따질 때 약관만 보지 않는다. 보험은 보험회사와 계약자간 ‘부합계약’이다. 부합계약이란 약관을 포함한 보험계약의 모든 내용은 전문가인 보험자(보험회사)가 작성하고 보험계약자는 이를 승인한다는 의미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약관이란 ‘평균적 고객의 이해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다. 비전문인인 보험계약자가 계약내용인 약관의 중요한 사항을 파악하지 못해 생기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약관만으로는 보험계약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연금액 계산식처럼 보험급여의 계산 원리나 공식 등 이해하기 어렵고 전문적인 내용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니 다른 문서로 대체하는 거다. 

보험계약이 구성되려면 계약에 참여한 쌍방의 약속이 필요하다. 약관은 보험계약에 참여한 개체 중 가입자와 관련된 내용이다. 보험자(보험회사)가 상품을 어떻게 운영할지와 함께 보험계리와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 등은 사업방법서와 산출방법서에 담긴다. 보험에는 이런 내용이 빠질 수 없다. 다른 금융산업과 달리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예측을 근간으로 운용하기 때문이다.

Q. 약관뿐만 아니라 현재 즉시연금 재판의 쟁점이 되는 산출방법서도 보험계약의 하나라는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건가?

A. 약관만을 보험의 전부로 보는 시각은 보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이는 ‘단일화 조항(entire contract clause)’을 토대로 보험경영이 이뤄지는 국제적인 보험 일반원칙에도 어긋난다. 단일화 조항은 보험회사에서 발급한 모든 서류가 하나의 보험계약을 형성한다고 규정한 보험의 원칙이자, 보험계약을 강제하는 법적 근거를 규명하는 보편적인 보험 논거다.

단일화 조항으로 보험계약을 규명하는 원칙이 정해지고, 이에 따라 보험계약에 어떤 내용이 포함되는지도 명확해진다. 이번 사건에 단일화 조항의 개념을 적용하면, 약관뿐만 아니라 보험회사가 발급한 서류인 산출방법서 등은 보험계약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봐야 한다. 

Q. 우리나라에서 단일화 조항은 생소한 개념이다. 어떤 특수성 때문인지?

A. 단일화 조항은 약관에 별도로 명시돼 있지 않더라도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와 약속한 내용이 지켜졌는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단일화 조항을 근간으로 삼는 국가에서는 대체로 보험회사 경영의 자율성이 보장돼 있다. 이에 금융당국에서 정해준 것보다 ‘왜 보험료를 많이 받느냐’ 등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때문에 보험회사가 발급한 모든 서류를 토대로 보험계약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미국에서는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보험회사의 모든 행위가 ‘불공정거래행위(Unfair Trade Practices)’ 등에 해당하는지를 규명하고 관련법으로 처벌한다. 영국에서는 ‘보험업무행위지침(ICOBS)’을 통해 보험금청구에 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처리를 의무화하고, 부당한 보험금 지급 거절을 금지하고 있다.

국내의 사법제도나 보험경영에서 단일화 조항이 명시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다. 유독 우리나라와 일본은 단일화 조항 대신 ‘기초서류’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일화 조항이 실질적으로 적용된 사례는 많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표준약관에는 회사가 발행한 보험안내자료나 건강진단서 등의 서류도 계약에 포함돼 효력을 발휘한다고 명시한 조항이 있다. 과거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K생명보험사의 CI가 새겨져 고객에게 배포한 설명자료도 보험계약의 일부로 인정된 바 있다. 이번 즉시연금 재판에서도 약관과 더불어 보험회사가 발급한 가입설계서와 상품설계서 등이 비중 있게 언급된다. 

Q. 하지만 약관은 보험사와 보험계약자가 맺는 계약서 아닌가? 약관이 모든 걸 설명하지 못한다면 보험계약자는 어떻게 보호하나.

A. 단일화 조항과 용도나 개념 측면에서 비견되는 게 기초서류다. 기초서류는 금융당국이 보험회사에 대해 법적 제재를 결정하는 근거다. 불특정다수로 구성된 가입자의 권익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기에 기초서류에 적시된 내용은 꼭 지키라는 의미다. 

산출방법서가 보험사 내부의 계리적 서류일 뿐 보험계약 체결 시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서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관점은 기초서류가 갖는 의미와 효력을 간과한 거다.

보험업법에서는 기초서류를 약관, 산출방법서, 사업방법서로 구성된다고 명시한다. 또 기초서류에 필수 기재돼야 하는 사항은 보험업감독규정으로 정한다. 보험사가 금융감독원에 상품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하는 신청서에도 기초서류 전부를 첨부하도록 한다.

기초서류는 보험회사가 아닌 소비자에게 유리한 조항이다. 기초서류는 준수 의무를 보험업법으로 정해 금융당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보험금 부당 삭감’ 역시 준수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로 과징금 부과 사유다. 산출방법서에 적시된 보험급여 계산방식을 꼭 지키라는 의미다. 

단일화 조항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출방법서는 보험회사가 발급한 서류고 용도도 명확하다. 별도로 약관에 명시돼있지 않거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산출방법서를 보험계약의 하나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보험회사가 산출방법서를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계약자의 불이익을 보호할 방법도 없어진다.

Q. 그럼에도 재판의 쟁점은 약관이 모든 걸 설명해야 한다는 거다. 보험사들의 즉시연금 약관에는 ‘공시이율에 의해 계산된 이자 상당액에서 사업비를 차감한다’라거나 ‘만기보험금을 고려’한다는 표현이 있다. 이는 연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측면을 통상적인 계약자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여 질 수 있는데?

A. 약관에서 모든 걸 설명해야 한다는 측면도 재판부마다 판결이 다르다. 보험회사의 승소 판결을 살펴보면 약관에도 보험계약의 체결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설명은 이뤄졌다고 본다. 패소 판결에서는 연금액이 줄어든 사유를 특정해 설명,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시·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본다. 사실상 같거나 비슷한 약관에 대한 엇갈린 해석이다.

즉시연금 연금월액의 크기는 적립액의 크기뿐만 아니라 적용이율, 지급기간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계약자들도 △월 이자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사망이나 만기 시 원금을 돌려받는데도 이자를 받는다는 사실 △아무리 시중금리가 하락해도 최저이율이 보증된다는 사실 등을 알고 있다. 이미 금액이 변동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데 이자액이 어떻게 계산되는지가 꼭 설명의무 대상이 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설사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아서 산출방법서가 약관의 하나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연금월액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가.

즉시연금은 만기에 적립액을 지급하는데, 그 금액이 처음 납입한 보험료인 상품이라고 약관에 적시된 상품이다. 이러한 약관상 표현은 무시하고 연금액은 납입한 보험료에 대한 예시 기준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건 보험 원리에 어긋난다. 약관에 적힌 문구의 난이도 문제가 아니라, 수지상등의 원칙과 같은 보험 원리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생명보험사의 주요한 경제적 기능은 국민의 자본 축적 수단이라는 점이다. 보험회사가 축적한 자본은 보험계약자의 자산이지 보험회사의 돈이 아니다. 보험금을 애초에 약속한 것보다 더 지급하라는 요구는 선량한 다른 보험계약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몇 사람의 재산을 늘려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보험 논리에 근거해 따져봐야 한다. 즉시연금 사례처럼 일부 가입자에게 미지급된 연금을 주라는 결정은 대다수 가입자의 희생으로 소수가 이익을 보라는 이야기가 된다. 설사 설명의무 위반이라 해도 일부에게 연금을 추가 지급하는 것과 전혀 별개의 문제다.

비슷한 약관임에도 재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점이 우려스럽다. 생명보험계약의 범주를 규명하거나, 약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원칙에 일관성이 필요하다. 보험소비자는 현재 통용되는 보험경영의 원칙이 앞으로도 유효할지 의구심을 갖게 될 수 있다. 보험경영의 필수 요소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원리나 원칙이 흔들리면 산업의 기반이 부실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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