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원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부 부장연구위원

한세원 신한금융투자 부장연구위원 (사진=신한금융투자)
한세원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부 부장연구위원 (사진=신한금융투자)

글로벌 천연가스 시장 수요가 요동치고 있다. 통상 동절기 한파 때마다 반복되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이다. 신재생에너지 자산 증가 영향에 에너지 안보 이슈가 가세한 상황이다.

그간 글로벌 전통 에너지 시장에서 천연가스는 독특한 존재였다. 다른 에너지 자원 대비 저장과 수송이 어려워 천연가스 시장의 성장은 반드시 인프라 투자와 궤를 함께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스공급 여력의 키는 LNG액화터미널 용량이 쥐고 있다. 북미 천연가스 생산량, 헨리허브 가스가격이 모두 이 신설 용량 추이의 영향권 아래 있다.

LNG액화터미널 신규투자가 집중된 대표적인 지역은 북미다. 2010년 이후 북미는 셰일가스 생산 증가와 함께 가스 수송 및 수출을 위한 파이프라인의 신규투자 역시 늘어났다.

그러나 북미 천연가스 시장은 최근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과 자본시장의 ESG흐름에 따라 투자자 관심의 초점에서 비켜나 있었다.


신재생으로 전력망 불안정…가스 수요 주목


최근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천연가스 수요다. 그간의 사례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주요국을 중심으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이 증가하면서 간헐성 영향과 전력 부하 추종 능력 하락으로 전력망 불안정성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한 영향이다.

이 상황에서 각국은 에너지저장장치인 배터리ESS 설치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나 사실상 당장의 대안은 가스발전을 늘려 변동성에 대처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LNG 수입의 구조적 증가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EU가 2022년 말까지 유럽향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을 기존의 1/3로 축소 예고했기 때문이다.

당장 올해에만 전년 대비 3600만톤의 수입 증가가 필요한 실정이다. 전년 대비 900만톤 수입 증가가 예상된 기존 연초 추정치에서 4배가 늘어난 수준이다.

LNG터미널 유지보수를 연기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올해 유럽에 추가 공급 가능한 LNG 공급 여력은 약 1400만톤정도에 불과하다. 유럽 천연가스 시장에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수준이다.

결국 공급 부족분은 아시아 시장향 공급량을 유럽으로 돌리는(Redirecting)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도착지 제한 조건 등 경직된 중장기 공급계약이 주를 이루는 LNG시장에서 현물(Spot) 거래량 혹은 유연한 조건이 적용된 계약 비중이 관심 대상이 되는 이유다.


천연가스 신규 생산투자도 보수적 접근


그렇다면 가스전 투자로 셰일가스 생산량 조절이 비교적 유연한 북미의 상류(Upstream) 부문에서 천연가스 생산이 증가하면 LNG 공급 여력에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그러나 현 상황에서 이 같은 가설은 유효하지 않다. 천연가스의 해상수출 즉 LNG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수출 측의 액화터미널과 수입 측의 재기화터미널 같은 인프라 시설 용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0년간의 투자로 미국의 LNG액화터미널 용량이 계속 늘어나고는 있으나 계속되는 수출증가로 인해 이용률은 이미 100%를 초과한 수준이다.

추가 수출을 위해서는 신규 액화터미널 용량의 증가가 필요하다. 최근 대형 사모 인프라펀드들이 LNG액화터미널 건설 프로젝트 참여를 확대 중인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유의미한 신규 액화터미널 용량 추가가 없는 상태에서 북미 가스전의 천연가스 생산이 늘어날 경우, 유럽과 미국의 가스공급 불균형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세부적으로 유럽은 가스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오르는 반면 미국은 수출 액화터미널 용량 부족에 의한 국내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역전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흔히 석유·가스의 단기적인 생산량 증감을 예측할 때는 해당 지역 내에서 운영 중인 시추기 수(Operating Rig Count) 변화를 관찰한다.

최근 미국의 천연가스 시추기 수는 코로나19 확산 당시인 2020년보다는 크게 회복된 상태다. 다만 가스가격(Henry Hub Price)이 지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던 2019년에는 아직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원유 시추기 수 추이와 비교해도 훨씬 더딘 회복세다. 주요 천연가스 생산자들은 오히려 다량의 시추공 재고(DUC Wells)를 소진하는 보수적인 접근법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모습이다.

이 같은 생산전략은 2019년 이후 타이트하게 강화된 원유·가스 시추 프로젝트의 금융 조건이 1차적 원인이다. 그러나 LNG수출 액화터미널 용량의 증가 추이도 중요한 영향 요소로 볼 수 있다.

결국 북미의 가스 생산자 입장에서는 점차 증가하는 LNG액화터미널 용량에 맞춰 생산량을 늘리면서 최근의 높은 가스 가격을 향유하는 방법이 이익 극대화에 가장 부합하는 전략이다.

향후 천연가스 생산량과 가격 움직임은 생산자들이 실제 이런 전략적 선택을 유지할 정도로 합리적인가 여부에 달려있다.

한편 유럽이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직면한 정치 현실은 에너지 시장의 우선적 고려요소들을 다시 소환하는 중요한 계기로 자리했다는 평가다.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에너지 수급을 좌우하는 정책 수립에는 △기후변화 대응의 대의 △경제성 △에너지 안보 등 세 가지 가치 요소는 반드시 함께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를 수반하고 시장에 참여하는 수많은 공공·민간 혹은 민간·민간 간 균형 잡힌 경쟁과 협력의 기준을 정해야 하는 에너지 정책은 이 중 어느 한 요소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다수 서유럽 국가들 내부에서는 최근 에너지 정책에서 기후 이슈의 대의에 집중한 나머지 경제성과 에너지 안보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았는지 논쟁이 활발하다. 석탄 및 원자력발전의 재가동 움직임이 이미 예상된 결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