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경제와 금융에 바란다'

[편집자주] 대한금융신문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변화와 성장 가능성을 금융권 전문가 및 퇴직금융인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윤 정부가 보완해야 하는 경제, 금융에 관한 이야기와 변화가 필요한 정책에 대해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송황준 칼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기준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대출은 지난해 말 기준 909조6000억 원을 기록하며, 2012년 집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말보다는 40.3% 이상 급증했다.

이처럼 코로나19 확산 이후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대출이 급속도로 불어났지만, 잠재 부실 규모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또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금리 인상과 더불어 금융지원 조치가 종료되는 올 하반기 이후에는 부실이 속출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4월부터 '대출 원금상환 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가이드라인'을 시행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지금까지 4차례 연장됐으며, 종료는 오는 9월 말로 또다시 미뤄졌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받는 대출은 133조4000억원(70만4000건)에 이른다.

배드뱅크, 과연 정답일까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 및 금융당국은 은행 및 소상공인 진흥공단 등이 참여하는 배드뱅크(Bad Bank)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배드뱅크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 흔히 IMF 사태로 표현되는 외환위기 때부터였다.

당시 과도한 부실채권 때문에 여러 은행이 파산 위기에 처했었고 은행의 줄 파산을 막아야만 했던 정부로서는 배드뱅크라는 개념을 정책에 도입했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기업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노무현 정부는 신용카드 대란에 따른 개인 신용회복 지원을 위해, 박근혜 정부는 1억 원 이하의 신용대출을 6개월 이상 갚지 못한 연체자의 채무를 감면해 주기 위해 배드뱅크를 설립했다.

자영업·소상공인 이해한 정책 수반돼야

현 정부는 기존 배드뱅크처럼 부실채권 회수·정리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신용회복위원회, 은행 등과 연계해 자영업자의 재기 지원역할은 물론 채무 부담에서 벗어나 다시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부채탕감과 채무 재조정 추진, 폐업 및 재기 지원, 통합 조정기구 운용 등을 포함하는 리빌딩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통합적인 지원체계 구축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방향이라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하다. 배드뱅크는 신중하게 운영돼야 하고 자영업 및 소상공인 생태계 전반을 이해한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배드뱅크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근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부실채권 정리 “기존 개념과 달라야"

현시점에서는 배드뱅크 설립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기존의 배드뱅크 개념은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를 예방하는 일종의 부실 은행 방지 성격이었다면 지금의 배드뱅크 개념은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 부채 해결을 위한 부실채권 관리 전담 기관으로서의 배드뱅크를 설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은행들의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고, 건전성에 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정부예산을 과도하게 투입해 새로운 기관을 만들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자 선정 및 부실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재정을 통해 지원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먼저란 의견이다.

배드뱅크 설립을 위한 가장 큰 문제는 재원 조달 방안이다. 재원 조달에 시중은행들도 일부분 참여하겠지만 결국 정부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어 국가재정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은 앞으로 발표될 구체적인 조건에 예의주시하면서도 자신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면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수차례 연장된 코로나 부실채권은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대출 만기연장·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는 언젠가는 대수술이 필요하며 배드뱅크로 부실채권을 대규모로 정리하는 게 향후 은행과 차주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체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등도 다각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사회 전반에 돈을 제대로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시그널을 줘 모럴해저드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갚아야 할 빚을 탕감해 주는 배드뱅크가 긍정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채무를 잘 상환해 온 차주들의 박탈감도 고려해야 할 문제다. 코로나 이후 경제 상황이 좋아져 차주의 대출 상환 능력이 높아질 수 있는 만큼 채권 회수율 같은 세부적인 사항들도 고민해야 한다.

정부·금융당국·시중은행 입장이 다 다르다

배드뱅크는 부실채권에 따른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정부는 배드뱅크에 여러 가지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시중은행들이 배드뱅크 추진에 참여하는 목적이 정부의 목적과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배드뱅크를 통해 경제 위기 극복 및 부실채권 정리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데 목적이 있겠지만 시중은행들은 배드뱅크에게 부여된 혜택을 활용하여 부수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 시중은행이 겉으로는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배드뱅크 설립에 협조하면서 속으로는 또 다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 취지를 넘어서는 먼 곳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진정으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어온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배드뱅크를 설립코자 한다면, 우선적으로 배드뱅크의 설립이 현 경제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는지, 배드뱅크에 부여된 권한이 지나치지는 않은지, 또한 대상자 선정이 모두에게 공평하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 감독 당국의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도·감독 시스템을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 나간다면 소기의 목적달성은 물론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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