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영 법무법인 시공 보험전문변호사

영국의 해상보험법은 17~18세기 중 정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출항한 선박과 적하에 대해 보험계약이 체결되던 시기였다. 당시엔 보험사가 보험관련 주요사항을 조사하지 않았다. 보험계약자가 고지하는 방식이었다. 선주가 보험사보다 선박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어서다. 이것이 고지의무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 시기엔 정보의 비대칭도 매우 심했다. 때문에 보험계약자가 부담하던 고지의무의 내용도 엄격한 편이었다. 보험회사가 질문하지 않은 사항도 중요하다면 고지해야 했다. 고지하지 않은 경우엔 고지의무 위반으로 여겨졌다. 이후 해상보험 외 다른 보험에도 이 원리가 적용됐다.

반면 오늘날 보험환경은 이때와 다르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보험기술도 발전했고, 보험회사의 정보 접근이 용이해졌다. 제대로 조사하면 계약자보다 저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게 된 것.

보험계약자가 자발적으로 고지해야 한다는 '자발적 고지의무'에서 보험회사가 질문하는 사항에 대해 제대로 답해야 한다는 '수동적 응답의무'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상법에서는 여전히 자발적 고지의무를 전제로 하고 있다. 보험회사의 질문사항과 관계없이 중요한 사항이라면 보험계약자가 스스로 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규정돼 있다.

상법 제651조에 의하면 보험계약 당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거나 불실의 고지를 한때에는 보험회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655조에서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후라도 보험자가 제651조에 따라 계약을 해지했을 땐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규정한다. 가입자의 실수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제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보험회사의 구체적인 질문에 한해 답변해 줄 의무가 있다고 개정할 때가 됐다.

현행 상법 하에서 고지의무가 응답의무로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판례도 있다. 한 판례에서 대법원은 보험약권이 고지대상을 '회사가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으로 보았다. 고지의무의 대상을 보험회사의 서면질의에 응답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효력을 가진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단은 보험계약자의 합리적 기대에 부합한다. 보험회사가 작성한 청약서 상의 질문에 응답하는 것으로 고지의무를 전부 이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평균적인 계약자의 이해 가능성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독일, 일본의 경우엔 이미 고지의무를 질문에 응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입법했다.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 사이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중요사항이 명확해지고 그 결과가 보험사고의 개연성과 위험률에 반영되고 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