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2일 15: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기관장이 은행을 공공재로 규정하고, 공적 기능 강화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 금리 상승기에 편승해 막대한 이자 이익을 거둬 ‘돈 잔치’를 벌인 은행권에 찬물을 끼얹은 거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도 구축했다. 고배당 레이스에 제동을 걸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도 손 볼 계획이다.

5대 시중은행의 과점체계를 해소하겠다며 칼을 빼 들었는데, 은행의 기능별로 라이센스를 쪼개는 ‘스몰라이센스’와 기술 기반의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챌린저 뱅크’ 도입을 검토 중이다. 신규 은행 허가 문턱을 대폭 낮추겠다는 심산이다.

시장은 요동쳤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 시가 총액은 5조990억원 가량 증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은행은 공공재”라고 발언한 이후 TF가 첫 회의를 한 오늘까지 일이다.

은행권 종사자들은 주주자본주의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엔 과거 외환·금융 위기 당시 금융권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지원해 준만큼 금융회사들은 공적 기능 수행 의무가 있다는 대전제가 깔려있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4년까지 금융회사에 쏟은 공적자금은 약 165조원이다. 이 중 제1금융권에 들어간 규모가 86조9000억원이고, 4대 시중은행만 따로 보면 46조5000억원이 투입됐다.

여기에 정치권에선 ‘아직도 안 갚은 돈’을 거론하며 질타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곤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제정된 공적자금상환기금법에 따라 2002년 말 이전 지급된 공적자금은 상환의무가 없어졌다. 이로 인해 은행권에서 갚지 않은 공적자금은 약 12조원 규모다.

은행들이 IMF 위기 극복에 혈세로 마련된 공적자금을 썼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책임이 온전히 은행에만 있는 걸까.

제일은행(現 SC제일은행)도 IMF 당시 자산 건전성 위기에 공적자금을 수혈했으나 2년여를 겨우 버티다 미국 뉴브리지캐피탈로 매각됐다. 투입된 공적자금이 14조원에 달했는데 매각 대금이 5000억원에 불과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정부 실책으로 회자된다.

또 세계 경제 위기와 상관없는 ‘방만 경영’의 결과물로 막대한 공적자금 미상환금이 남아 있는 곳은 시중은행이 아닌 저축은행이다. 저축은행은 이미 이 같은 ‘원죄’로 높은 예보료율 등 타 금융권보다 강한 제약을 받고 있다.

서민들이 은행의 돈 잔치에 위화감을 느끼는 건 공적자금으로 기사회생해서 번 돈을 공익에 환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경제 불황에 살림살이는 나날이 빠듯한데 예금이자는 쥐꼬리만큼 주고 대출이자는 많이 받아 ‘최대실적 경신’을 외치는 행태에 화가 나는 거다.

이는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에 제약을 걸고, 성과급을 약점 삼아 경영진을 죄고, 시중은행과 금리 면에서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지도 못하는 은행의 수를 늘리는 거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특히 공적 기능 강화를 운운하며 국책은행도 아닌 시중은행에 총대를 메게 하는 상황은 정당성도 찾기 힘들다. ‘맏형’격이라는 이유로 금융권 기강 잡기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엄연히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인 은행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펼친 각종 금융 지원과 최근 마련한 10조원 규모 사회공헌 프로그램 등은 당연시하고 배당과 성과급을 늘렸다는 이유로 공적 기능을 수행할 의지가 있다, 없다를 정부가 판단하고 개입하는 건 불합리한 처사다.

팍팍한 살림살이는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국민의 자산을 맡아 관리하고 운영하는 은행이 공공성을 띠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협조’를 구할 일에 ‘책임감’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과도한 짐을 떠넘겨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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