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좋지 못한 채권 투자 성적표
예상과 달랐던 시장 리스크 선호 현상
단기채 중심 채권 바벨 투자전략 추천

최진호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애널리스트
최진호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애널리스트

2023년이 벌써 9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작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환경에 맥을 못 추던 금융시장은 경기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했고, 올해 초만 하더라도 2023년은 피할 수 없는 경기침체와 그로 인한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을 기대하는 시각이 우세했었다.

또 2023년은 채권투자의 해가 될 것이라는 금융시장의 컨센서스도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8월도 중반을 넘어선 현시점에서 올해를 되돌아보면, 채권 투자자들의 성적표가 우수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올해 3월 미국에서 SBV 사태를 시작으로 은행 위기가 불거지면서 채권금리가 한때 빠르게 내려오기도 했지만, 연준의 발 빠른 대처와 은행권의 십시일반으로 이제 시스템 리스크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 결과 채권금리는 다시 오르기 시작해 현재 미국 2년물 국채금리의 경우 연초대비 50bp(1bp=0.01%) 정도 높아졌고, 10년물은 30bp 정도 높아진 상황이다. 미국 하이일드 채권 금리 스프레드만 연초대비 60bp 이상 낮아진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올해 금융시장에서 Risk off가 예상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Risk on 현상이 시장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올해 금융시장에서 리스크 선호 현상이 살아난 원인은 먼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완화되기 때문이다. 작년 9%까지 올라섰던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3%대까지 낮아진 상황이다.

아울러 인플레이션 안정에 힘입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느려졌다는 점도 금융시장의 위험 선호 회복에 우호적이었다. 작년 자이언트스텝(+75bp)을 단행하던 미국 연준은 최근 베이비스텝(+25bp)까지 보폭을 좁혔으며, 9월 FOMC에서는 동결 기대감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특히 높아진 고금리 상황을 버텨낼 만큼 경기 펀더멘탈이 괜찮았었다는 점도 시장의 위험 선호 현상을 강화했다. 올해 초 0.5%에도 미치지 못했던 미국의 예상 경제성장률은 최근 1.6%(블룸버그 컨센서스)까지 올라왔다는 점에서, 경기 비관론을 자양분으로 자라나는 채권보다 성장성을 먹고 사는 주식이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든 배경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성장률 전망치가 개선돈 근원에는 양호한 고용지표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지속적인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은 미국내 일자리 수요를 창출했고,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때마다 빠른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역사적 저점 수준까지 낮아진 미국의 실업률은 한때 임금과 물가의 악순환(wage-price spiral)을 초래하는 인플레이션의 원흉처럼 취급받기도 했으나, 현재는 고금리를 버티며 미국 경제를 지탱하게 만드는 한 축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 힘을 얻고 있다.

양호한 고용은 고금리가 촉발할 수 있는 경기 위축을 방어하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대표적인 내구재 소비품목인 자동차 판매량의 경우, 양호한 고용시장에 힘입어 최근 15.7만대까지 회복되며 코로나19 이전 평균의 95% 수준까지 거의 회복되었으며, 소매판매의 양호한 실적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미국 경제의 양호한 실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 진입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9월 20일 예정된 FOMC에서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게 된다면 일단 시장 금리의 상승세(채권 가격 하락세)는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 통화정책 사이클이 보여왔던 ‘기준금리 인상 종료 후 인하 사이클 진입’이라는 공식을 이번에도 대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상술한 바와 같이 현재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고금리를 예상외로 잘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금융시장에서는 추가 금리인상의 높이(higher)보다 얼마나 오래(longer) 기준금리 수준이 유지될 것인가로 초점을 맞춰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은행은 연준보다 앞서 기준금리를 동결해왔다는 점에서 한국 채권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의 프레임 역시 미국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올해 한은이나 정부가 예상하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경기 반등 패턴은 기본적으로 남아있는 하반기 경기가 그렇게 나쁘지 않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한국 경기선행지수의 반등은 이와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주는 데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남아있는 기간에 경기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면 물가 역시 빠르게 낮아지기 힘들 것이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에서 유지해야 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8월 24일 예정된 금통위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9월 FOMC에서 미국 연준도 기준금리를 동결한다고 하더라도, 연준이나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 시그널을 쉽게 내비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의 채권시장은 당분간 높은 금리 수준과 내년 이후 도래할 인하 사이클 기대감 사이에서 박스권 횡보 기간이 길어지는 방향성 탐색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재의 고금리 캐리수익과 내년 이후 장기 관점에서 자본 차익을 노릴 수 있는 채권 바벨투자 전략이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 공개된 연준 위원들의 점도표에 따르면 2024년과 2025년의 최종금리 수준은 각각 4.6%와 3.4%로 낮아진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 5.5%에 비추어보면 내년 말까지 기준금리가 약 90~100bp 낮아지는 셈이다.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예단하기 힘들지만, 현재 시점이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의 종반부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든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의 종반부에서는 장기물 채권 투자가 유리하다. 하지만 위쪽으로 쏠려있는 점도표의 분포를 고려하면 9월 FOMC에서는 2024년과 2025년의 최종금리 수준이 상향조정되는 방식으로 고금리 기간이 길어질 수 있는 리스크가 남아있다.

채권에 관심을 두고 있는 투자자라면 고금리 캐리 수익을 노릴 수 있는 단기물과 기준금리 인하 시기에 가격차익이 큰 장기물을 함께 가져가는 바벨전략을 추천하는 이유이다.

아울러 현재 미국과 한국의 펀더멘탈을 살펴보건대, 채권 바벨 전략에서 바벨의 무게 중심을 단기 쪽에 조금 더 이동시켜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 본 견해가 소속기관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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