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단풍에 열매까지 가을 색 더 깊게 만들어
존재감 분명해 공원 및 띠녹지 조경수로 식재

▲ 화살나무의 가을은 단풍나무의 가을과 다른 색을 갖고 있다. 연하면서도 색은 더 분명하다. 화살깃이 아니어도 화살나무는 충분히 아름답다. 사진은 경기도 여주 영릉(효종의 능) 재실 앞에 단풍 곱게 든 화살나무 군락이다.
▲ 화살나무의 가을은 단풍나무의 가을과 다른 색을 갖고 있다. 연하면서도 색은 더 분명하다. 화살깃이 아니어도 화살나무는 충분히 아름답다. 사진은 경기도 여주 영릉(효종의 능) 재실 앞에 단풍 곱게 든 화살나무 군락이다.

가을의 화살나무만큼 존재감이 분명한 나무가 또 있을까. 입이 떨어져 겨우내 알몸을 드러내야 했던 나무는 가지에 두 줄, 혹은 네 줄로 깃털처럼 난 코르크 날개가 나무의 이름표 역할을 해줘 나무를 구분할 수 있었고, 봄에는 눈 밝은 이들에게 반찬거리로 새순을 내주면서 나무의 존재 이유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녹색으로 피는 화살나무의 꽃은 또 어떤가. 대부분의 봄꽃은 자기 정체성을 보여주듯 꽃 자랑에 여념이 없기 마련인데, 이 나무만큼은 소박하기 그지없어 꽃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연한 녹색의 꽃은 잎겨드랑이에서 무리 지어 피어나는데 꽃의 구조마저 무척 단순하다.

연두색의 잎이 네 장이 나며 녹색의 꽃 중심에 암술이 하나 도드라지게 보일 뿐이다. 그것도 자세히 살펴야 알아볼 수 있다. 즉 관상의 가치는 전혀 없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꽃은 분명 꽃이다. 그러니 가을에 콩알 크기의 작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열매는 붉은색으로 익어가며 다 익을 때가 되면 화살나무의 잎도 붉디 붉은색으로 단장한다. 마치 이 계절을 위해 그동안 그리 투박하고 퉁명스럽게 자신을 감추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붉은색의 화살나무의 열매는 다 익으면 과피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식으로 종족을 번식한다. 하나의 열매는 여러 칸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칸에 씨앗을 담고 있는 삭과(蒴果) 형태이다.

무궁화와 도라지, 백합 등도 삭과 모양으로 열매를 맺는다. 화살나무의 경우는 4갈래로 갈라지며 육질 속에 씨앗이 들어 있다. 이 열매가 터지기 전의 모습은 마치 붉은색 보석이 돼 화살나무의 붉은 단풍잎과 함께 가을 색을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 봄에 피는 화살나무의 꽃은 존재감이 크지 않지만, 가을에 맺는 열매는 반대로 선명하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듯 잎과 열매가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이다. 그래서 줄기에 난 코르크 재질의 화살깃이 더 돋보인다.
▲ 봄에 피는 화살나무의 꽃은 존재감이 크지 않지만, 가을에 맺는 열매는 반대로 선명하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듯 잎과 열매가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이다. 그래서 줄기에 난 코르크 재질의 화살깃이 더 돋보인다.

이처럼 열매와 잎이 합심해서 나무의 존재감을 표시하다 보니 단풍의 대명사인 단풍나무와 붉나무, 고로쇠나무의 단풍에 전혀 뒤지지 않는 단풍색을 가지게 된다. 특히 갈색이나 노란색으로 가을을 표시하는 나무 속에 있다면 화살나무의 붉은색은 더욱 도드라질 것이다.

그래서 가을에 만나는 화살나무는 큐피드의 화살나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붉은색 그것도 선명한 붉은색이 가득한 나무를 보면, 그리고 잎과 열매 사이에 드러나는 화살깃을 보게 된다면 왜 이 나무를 큐피드의 화살나무라고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큐피드의 화살이 이 나무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깊어져 가는 가을, 붉은 단풍의 화살나무를 보며 큐피드를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봄에 피는 꽃만큼이나 나무의 단풍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식물의 입장에서 가장 큰 변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살나무는 노박덩굴과의 낙엽 떨기나무로 전국 어디서나 잘 자란다. 높은 산 낙엽 떨기나무 주변의 비옥한 땅이면 어디서든 찾을 수 있는 나무이며, 모래흙에서도 잘 자라 요즘에는 붉은색의 단풍 또는 화살깃의 독특함을 보기 위해 도시공원이나 도로변의 띠녹지, 아파트의 경계목 등으로 많이 식재되고 있다.

가로수의 울타리로도 심은 나무도 많아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이 들 때쯤이면 대도시의 띠녹지도 붉은색으로 단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나무는 키가 크지 않다. 도시에서 보는 나무는 어른 가슴을 넘어서지 않으며 산에서 만나는 나무도 어른 키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3m까지 자라는 나무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렇게 큰 키의 화살나무는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도 아쉽지는 않다. 키가 작은 것은 생장속도가 더뎌서 그런 것일 뿐이다.

지난주 경기도 여주에 있는 조선의 왕릉인 영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에서 만난 화살나무는 어른 키를 넘어서지 않았지만, 그래서 큰 키의 단풍나무보다 왜소한 규모였지만, 단풍의 색에선 전혀 단풍에 밀리지 않고 오히려 단풍나무를 호위무사처럼 보듬으며 가을 색의 깊이를 보태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화살나무를 조경수로 쓰는지도 모르겠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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