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남서해 해변 및 울릉도에 군락 이루며 자생
‘후박’이라 부르는 일본목련과 달리 우리 고유 수종

▲여수 돌산도에 있는 항일암 주변에는 난대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푸른 바다와 초록의 후박나무숲이 어우러진 절경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여수 돌산도에 있는 항일암 주변에는 난대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푸른 바다와 초록의 후박나무숲이 어우러진 절경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따뜻한 남쪽을 대표하는 나무 중에 ‘후박(厚朴)나무’가 있다. 남해안은 물론 제주도에서 주로 자생한다. 서해안을 따라 전북 부안과 충남 태안에서도 자라고 동해 쪽에서는 울릉도에서도 이 나무를 찾을 수 있다. 윤기 나는 두꺼운 잎을 보면 ‘후박’이라는 나무 이름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후박’의 사전적 정의는 ‘인정이 두텁고 거짓이 없다’이다. 그렇다고 나무에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인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까다롭지 않게 잘 자라는 모습이 후덕하게 보여 그렇게 부른 것이다. 물론 앞서 설명했듯이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잎과 나무껍질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후박나무는 남부 해안지역보다 제주도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다. 제주공항 주변이나 비자림로 등 주요한 도로마다 가로수로 심겨 있기 때문이다. 왕벚나무, 먼나무 다음으로 많이 심었다고 한다. 성장이 빠르고 공해에 강한 나무이다 보니 따뜻한 지역에선 가로수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와 함께 곶자왈 등의 숲이나 오름에서도 후박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중부 내륙지방에서도 후박나무라고 부르는 나무가 하나 있다. 우리 고유 수종인 후박나무는 따뜻한 기후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혹독한 내륙의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후박나무라고 부르는 또 다른 나무는 중부지방에서도 잘 자란다. 그렇다고 두 나무의 생김이 닮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나무를 전파한 조경업자들에 의한 혼선에서 비롯된 듯하다.

중부지방에서 후박이라고 부르는 나무는 일본에서 들어온 일본목련이다. 우리나라의 목련은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는데, 일본목련은 먼저 잎이 나고 5~6월에 꽃이 핀다. 이 나무를 일본에서는 ‘호오노키(ホオノキ)’라고 부르는데, 이를 한자로 적으면 ‘후박(厚薄)’이 된다. 즉 한자는 서로 다른데 음이 같아 한글 이름표를 붙여놓으면 혼동은 불가피하다.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처음 봤던 후박나무다. 완도에서 자라던 나무를 수목원에 옮겨 심은 것이다. 수목원 1호 나무라고 한다. 전북 부안 정도가 이 나무의 북방한계선이다.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처음 봤던 후박나무다. 완도에서 자라던 나무를 수목원에 옮겨 심은 것이다. 수목원 1호 나무라고 한다. 전북 부안 정도가 이 나무의 북방한계선이다.

필자는 후박나무를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에서 처음 만났다. 천리포 바닷가가 보이는 언덕배기에 어깨 넓게 수형을 펼친 나무였다. 이 나무의 북방한계선을 전북 부안쯤으로 보고 있는데, 같은 바닷가지만 북쪽에 자리한 수목원에서, 그것도 제법 크게 자란 후박나무를 본 것은 분명히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표지판에 적힌 사연에 1970년에 옮겨 심은 완도산 후박나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이 나무를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갖기 전이라 후박나무를 보고도 제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다. 그러다 여수 향일암과 금오산을 오르면서 후박나무를 제대로 찾아내게 됐다. 처음에는 백양사가 있는 백암산에서 본 굴거리나무쯤으로 생각했는데, 이때쯤이면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검은 열매가 전혀 없고 손가락 길이만 한 붉은색 잎자루도 찾을 수 없어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결국 도감을 찾아가며 확인한 결과 몇 년 전 태안에서 보았던 후박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의 나무로 키는 15~20m까지 자란다. 꽃은 5~6월에 황록색으로 원추형 꽃차례로 핀다. 열매는 꽃이 핀 이듬해 7~9월에 검은색으로 콩알만 하게 열린다. 그런데 주변에서 보는 후박나무는 노거수가 거의 없다.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들은 훤칠한 키를 자랑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아마도 여러 쓰임새가 있어 제 생명을 다하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후박나무는 위장병을 다스리는 대표적인 약재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는 “배가 부르고 끓으면서 소리가 나는 것, 체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을 낫게 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설사와 이질, 구역질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후박나무의 껍질은 무르고 달콤한 수액이 나와, 채취한 수액을 졸이면 달콤한 ‘후박엿’이 된다. 하지만 나무가 급격히 줄자 후박나무 벌채를 금지해서 호박으로 엿의 재료가 바뀌었다고 한다. 울릉도 ‘호박엿’의 출발은 후박엿이었던 것이다. 그때 금지하지 않았다면 울릉도의 후박나무는 사라졌을 것이다.

여수 향일암 주변에는 후박나무 군락지가 여럿 보인다. 내륙지역의 참나무처럼 후박나무는 그대로 두면 우점종이 된다고 한다. 그만큼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철 상록의 숲을 만들어주는 큰 일꾼이기도 하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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