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선 공원 경계목, 농촌에선 생울타리
진안 은수사, 천연기념물 줄사철나무 군락

사철나무는 한반도의 중부 이남 지역에서 자생하는 사철 푸르른 나무다. 난대림 특유의 두껍고 윤기나는 잎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늦가을 사철나무의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이다. 다 익으면 네갈래로 벌어져 씨을 퍼뜨린다.
사철나무는 한반도의 중부 이남 지역에서 자생하는 사철 푸르른 나무다. 난대림 특유의 두껍고 윤기나는 잎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늦가을 사철나무의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이다. 다 익으면 네갈래로 벌어져 씨을 퍼뜨린다.

겨울에도 푸른 나무를 흔히 상록수라고 한다. 그 나무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나무를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사철나무’가 아닐까 싶다. 도시의 화단이나 공원의 띠녹지 공간에 가장 흔하게 있는 나무이니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무의 존재감은 그다지 강한 편은 아니다. 사철 푸른 잎을 보여준다는 것 말고 이 나무의 식생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별로 없다.

게다가 공원의 경계목 등의 목적으로 주로 식재되다 보니 회양목처럼 자연의 공간에서 사철나무를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사철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 지역에서 주로 자생한다.

나무의 잎은 잘 알듯이 두꺼우며 타원형으로 작은 달걀 크기이다. 잎의 표면에는 난대성 상록수의 특징처럼 윤기가 흐르고, 초여름이면 4장의 황백색 꽃잎을 가진 작은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꽃은 자세히 살펴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다. 꽃이 떨어지면 녹색의 작은 열매가 맺기 시작해 굵은 콩알 크기로 성장하며 붉은색으로 익어간다. 다 익은 열매는 보라색에 가깝다. 초겨울이 되면 열매는 넷으로 갈라지고 가운데에 있는 가느다란 실 끝에 빨간 씨앗을 퍼뜨린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꽃이지만, 이 꽃에 주목한 시인이 있다. 공광규 시인이다. 그는 ‘사철나무 아래 저녁’이라는 시에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을 사철나무의 자잘한 꽃잎에 주목했다.

그래서 시의 끝에 그는 “섬돌 위에 앉아 있는 다정한 구두 두 켤레에/사철나무가 점 점 점 꽃잎 자수를 놓고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

이에 반해 장정일 소설가는 ‘사철나무 그늘아래 쉴 때는’이라는 시를 통해 나무가 가져다주는 그늘을 예찬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가끔씩 사철나무 그늘아래 쉴 때는/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리지 않아”라고 쓰고 있다.

사철나무는 도시에서는 경계목, 농촌지역에서는 생울타리로 많이 심는다. 그래서 자연에서 자생하는 나무는 깊은 산에 들어가야 볼 수 있다. 사진은 충남 서산 간월도에 있는 간월암 사철나무로 수령은 250년 가량 됐다.
사철나무는 도시에서는 경계목, 농촌지역에서는 생울타리로 많이 심는다. 그래서 자연에서 자생하는 나무는 깊은 산에 들어가야 볼 수 있다. 사진은 충남 서산 간월도에 있는 간월암 사철나무로 수령은 250년 가량 됐다.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이 돼줄 사철나무. 그런데 이런 크기의 사철나무를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 키보다 조금 더 자라는 나무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런 나무의 특징을 잘 살려, 조경업자들은 공원과 정원의 경계를 가르는 목적으로 주로 심는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사철나무를 같은 목적으로 바라봤다. 돌담을 쌓기보다 생울타리로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당산목처럼 큰 나무가 돼 그늘을 줄 수는 없었지만, 작은 키의 생울타리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나무였다.

밖에서 안을 볼 수는 없지만, 안에서 밖은 잘 보였다고 한다. 양반가의 안채에서 외간 남자와 얼굴을 맞대지 않도록 문병(門屛)을 만들었는데, 이때 주로 사철나무를 썼다고 한다. 당시 사철나무의 흔적은 창덕궁을 그려 넣은 〈동궐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큰 키의 사철나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 자란 사철나무 고목은 자라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심지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철나무도 있다. 전북 진안 은수사에 있는 줄사철나무가 대표적이다.

은수사가 자리한 마이산 자락에는 줄사철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군락지까지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은수사 입구에서 몇 그루를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경북 청도군 명대리에 가면 300년 정도 된 사철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이 나무의 키는 5.5m 정도 된다. 하지만 이렇게 큰 나무를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충남 서산에 있는 간월암에도 사철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수령은 25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키는 3.5m 정도 된다. 나무의 줄기 가운데가 상해서 보형재를 넣어 수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줄기를 보면 해풍을 맞으며 자라온 이 나무의 이력을 읽어낼 수 있다.

사철나무는 사철 푸른 잎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나의 잎이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잎갈이를 통해 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특징 때문에 조선시대 혼례상에는 대나무와 사철나무를 올렸다. 물론 동백나무 가지를 올리는 곳도 있다. 사철나무의 꽃말은 ‘변함없다’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