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효종대왕 영릉 재실에 위치, 키는 4.7m
더딘 성장으로 줄기 한 뼘 되는데 500년 걸려

▲ 경기도 여주에 있는 효종대왕 영릉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양목이 한 그루 있다. 300년 된 나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회양목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의 키는 약 4.7m 정도된다.
▲ 경기도 여주에 있는 효종대왕 영릉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양목이 한 그루 있다. 300년 된 나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회양목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의 키는 약 4.7m 정도된다.

관악산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점은 서울 근교 산 중에 자생하는 회양목이 참 많다는 점이다. 북한산에선 인근 공원 지역의 띠녹지 말고는 회양목을 만날 수 없는데, 관악산은 과천향교나 서울대, 그리고 삼성산 무너미 고개에서 오르는 학바위 능선 등 다양한 코스에서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회양목을 만날 수 있다.

작고 두꺼운 타원형의 잎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 회양목은 사철 푸른 나무다. 하지만 일상에서 보는 회양목은 구획을 구분하기 위한 경계목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발길을 정리해주는 역할이다. 도로의 경계나 공원의 구획을 정리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동선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도시 조경 담당자들은 경계목과 띠녹지를 활용해서 도시의 작은 질서를 유지한다.

이런 목적의 나무로 가장 적합한 나무는 작고 아담한 크기의 나무다. 더불어 성장 속도가 빠르지 않은 나무여야 한다. 관리에 많은 시간이 드는 나무를 심으면 오히려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회양목은 그런 점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다. 철에 한두 번 웃자란 가지만 정리하면 네모반듯한 경계의 외형도 잘 유지된다. 게다가 성장은 무척 더디다. 거의 자라지 않는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회양목은 느리게 자라는 나무다. 나무의 지름이 한 뼘 정도 되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약 500년 정도라고 한다. 상상이 안 되는 시간이다.

그런데 회양목의 존재감은 사실 거의 없다. 경계가 되어 나의 발걸음을 잡아주고, 도움을 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양목을 하찮게 느끼거나 아예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4~5월에 꽃이 피지만, 그 꽃은 여느 봄꽃처럼 색이나 향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7~9월에 익어가는 열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먹거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니 나무의 존재감은 더욱 희미해진다. 단단한 재질을 이용해서 도장을 만들 때라면 모를까 이제는 도장 문화마저 사라지고 있으니 회양목을 찾을 일은 더욱 없어지고 있다.

▲ 효종대왕 영릉의 재실은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전쟁 및 격변기를 잘 버텨준 덕분이다. 재실의 담장 사이에 있는 느티나무는 500년된 나무로 공간감을 잘 살리면서 재실을 건축한 것을 알 수 있다.
▲ 효종대왕 영릉의 재실은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전쟁 및 격변기를 잘 버텨준 덕분이다. 재실의 담장 사이에 있는 느티나무는 500년된 나무로 공간감을 잘 살리면서 재실을 건축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경기도 여주에 있는 효종대왕의 릉(영릉)에 있는 회양목을 보게 된다면 그 생각은 바뀌게 될 것이다. 이 나무는 영릉을 조성할 때 재실(齋室)을 만들면서 조경용으로 심은 것이다. 현존하는 조선의 왕릉 중에서 재실을 가장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공간이다.

재실은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제관의 휴식은 물론 제수 장만과 제기 보관 등을 위해 왕릉의 부속건물로 지은 것이다. 그런데 영릉의 재실은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유는 다른 왕릉의 재실이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다가 20세기 후반에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공간을 나누고 있는 500년 묵은 느티나무도 볼 수 있고, 또 300년 된 회양목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영릉의 회양목은 높이가 4.7m다. 그리고 두 갈래로 올라온 나무의 줄기 둘레는 각각 30cm와 43cm 정도다. 줄기의 직경이 한 뼘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현재 자라고 있는 회양목 중 가장 큰 나무다. 그래서 이 나무 앞에 서면 느낌이 다르다. 산에서 자생하는 회양목은 다른 나무들과 치열한 자리싸움을 하면서 성장한다. 그래서 나무다운 수형을 유지하면서 자라기가 무척 힘들다. 그러나 영릉의 회양목은 번듯하다. 나무의 크기는 물론 경계목으로 심은 회양목과도 수형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는 내용이 하나 있다. 원래 회양목은 선비들이 거처하는 사랑채나 서원에 조경수로 심었다는 사실이다. 정원에서 나무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 이외에 회양목은 다른 목적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회양목은 도장을 만드는데 주로 쓰였다. 단단한 나무 재질은 여러 쓰임새를 가지고 있었다. 나무 활자를 만들어 인쇄에도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선비들의 거처 주위에 이 나무가 있었다. 서책과 떼래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이니 당연했을 것이다. 우리가 보고 읽는 옛 문헌 중에는 이 나무의 덕을 보고 있는 것들이 제법 많을 듯하다. 이러한 사연만으로도 나무의 존재감은 달리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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