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6 21:15 (일)
[칼럼]타자와의 공존 없는 조직에는 미래 없다
[칼럼]타자와의 공존 없는 조직에는 미래 없다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5.05.10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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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2>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독일의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신을 절대적 타자’라고 정의했다.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의미에서 절대타자로 정의했던 이유는 인간의 생각으로 도저히 측정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집을 찾아오는 낯선 손님에게 환대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 전통은 아브라함 종교(유대, 기독, 이슬람)에서도 나타난다. 방랑자를 홀대하지 않고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제우스가 손님의 모습으로 변신했다고 생각했고, 아브라함 종교에서도 방랑자의 모습은 신의 모습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아직 법률에 의한 제도적 통치가 완비되지 않았던 그 당시에 자신의 부족이 아닌 타 부족, 즉 타자를 적으로 관주하였던 것은 자연율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무참히 벌어지는 살인,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의 전쟁은 자신의 부족까지 멸살시키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인류는 축의 시대(B.C. 5~7세기)를 맞아 전환점을 찾는다. 당시 전 지구적 차원에서 등장했던 현인(공자를 포함한 제자백가, 유대교 선지자들, 소크라테스 등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타자를 적으로 간주하던 자연율 대신 인간의 존엄을 살리자는 황금률을 설파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당시 등장한 종교나 지식인 학파의 계율 및 논리 중 가장 소중히 여긴 정언이었다.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 나름 현명한 대안을 찾은 것이다.

◆타자는 나의 거울
우리는 하루하루를 ‘당연함’과 ‘익숙함’ 속에서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자신과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퇴근 후에는 동료 내지 선후배와 술을 한잔 하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 내지 가족과 근사한 저녁을 먹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이러한 일상은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하다.

그런데 이러한 ‘당연함’과 ‘익숙함’은 타자를 만나는 순간, 즉 나 아닌 다른 사람이나 내가 속한 조직이 아닌 다른 조직을 접하면서 낯설게 되고 부자유스럽게 된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낯섦을 싫어한다.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오면 피하거나 극복하고자 한다. 낯섦에 의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으려 나서게 된다.

그리고 타자는 우리의 부족함을 확인시켜주고 잘못된 길을 갈 경우에는 새로운 길도 보여준다. 부족함에 대한 자기 성찰과 새로운 길에 대한 점검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좌표를 재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타자는 나에게 거울로 다가오고 나는 또 다른 사람에게 거울로 비쳐진다.

◆역사 속의 공존의 대상 ‘타자’
타자가 있기에 자신을 볼 수 있었던 인간은, 자기 성찰 이후 공존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특히 경제적 이득 앞에서 타자와의 공존은 법이나 질서 보다 앞섰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중세 말. 이탈리아의 자치도시들은 이스탄불과의 교역을 계속하고자 한다. 유럽 전역에 원하는 동남아시아의 향신료와 중국산 실크, 그리고 도자기 등. 경제적 이익이 모여 있는 관문이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황청은 이슬람과의 교약을 금한다는 칙령을 발표한다.

그러나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 칙령을 무시한다. 교황의 종교적 권위보다 유럽 각국의 왕족과 귀족들이 원하는 향신료 및 도자기에 대한 욕망이 더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적 이익을 나눌 공존의 대상으로 ‘타자’ 이스탄불을 바라보았다.

동아시아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조선시절 동아시아의 정치적 관계는 ‘조공책봉’ 관계였다. 조선이나 베트남, 일본,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에게 조공을 하고 중국은 책봉하여 중화질서를 유지하는 구조였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조공책봉’의 질서 속에서 막대한 규모의 공적무역을 했고 이 과정에서 책봉국들은 경제적 실리를 얻었다. 그러나 공무역은 한정된 기간에만 허락되었기 때문에 조선과 중국, 일본의 상인들은 법적으로 금지된 밀무역을 공공연하게 한다. 타자와의 공존이 제공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고전은 타자와 만나는 공간
“나의 자리에 너를 넣고, 기업의 자리에 고객을 놓고, 상품의 자리에 욕망을 넣어라”

한 광고인의 이야기이다.

트위터 팔로워 수가 고작 10명인 사람이 SNS 마케팅을 결정하고, 홍대 앞에 가본적도 없는 임원이 20대 클러버(Cluber)를 말하고 강북 출신이 강남 마케팅을 펼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보고 한 말이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철저하게 타자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타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마케팅이든 영업이든 조직 관리든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닌 모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면서 이끄는 것이 현대 사회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문학작품이든 음악, 미술 작품이든 우리에게 다양한 타자를 만나게 해준다. 그 타자를 만나면서 나를 뒤돌아보고, 갈 길을 정리하기도 한다. 나와 다른 타자와의 ‘공감’능력을 키우는 공간이 바로 ‘고전’이라는 매체다. 특히 현재의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능력은 ‘고전’에서 비롯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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