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소요유’ 인용 … 웅비하는 국내기업 위해 큰물 될 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물이 고여 쌓임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한 잔의 물을 움푹 파인 곳에 붓고 그 위에 풀잎을 띄우면 뜨지만, 잔을 올리면 바닥에 가라앉는다. 물은 얕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의 쌓임이 두텁지 않으면,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다. 그러므로 구만리 높이까지 올라가야만 바람이 그 아래 쌓이게 된다.

<장자> ‘소요유’편, 두 번째 이야기다.

지난 19일 중국 충칭시에서 열린 우리은행 충칭분점 오픈 행사에서 이광구 은행장은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며 “충칭시에 진출예정인 한국기업을 위해 큰물을 만들겠다”고 지점 개설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중국 서부지역 최대의 도시에서 전국시대의 철학자 ‘장자’를 인용한 것이다.

장자의 소요유편은 장대하고 변화무쌍한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구절이다. 북쪽 바다(北溟)에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바닥을 치고 떨쳐 일어나 붕(鵬)이라는 새로 변화해 남쪽 바다(南冥)를 향하는 이야기가 중심 주제이다.

그런데 이 ‘붕’이 하늘로 날기 위해선 바람이 필요한데, 그 날개를 띄울 수 있을 정도의 바람이 갖춰져야 한다. 붕이 날 수 있는 바람의 조건은 큰 배를 띄울 수 있는 큰물을 의미한다. 움푹 파인 곳에 한 잔의 물을 따르면 티끌처럼 작은 배는 띄울 수 있지만 물잔처럼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건은 바닥에 닿고 만다. 그러니 큰 배를 띄우려면 큰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광구 은행장은 이 대목을 장강이 유유히 흐르는 충칭시 분점(지점) 개소식에서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충칭시 분점은 우리은행의 중국내 점포 중 18번째 지점이다.

충칭시 분점은 이미 진출한 한국타이어, 앞으로 진출할 현대자동차, 이밖에 3000만명이 살고 있는 충칭시 등 중국 서부 지역 공략에 나설 한국 기업들의 항해를 도와 줄 수 있는 큰물이 되고, 이들 기업의 웅비까지 도와줄 바람이 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장소와 내용의 합일성
장소와 내용의 합일성이 뛰어나다. 메시지는 말한 장소와 시기, 그리고 배경 등이 함께 담기기 마련이다.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켜 정치적 이슈를 푸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장자의 소요유는 단어 그 자체의 축자적 의미가 큰 배와 큰 날개가 날 수 있는 물과 바람이다. 그리고 물고기가 새로 변신하고 남쪽을 향하는 것은 변화하는 인생에 대한 적극적 대응 정도의 의미일게다.

그러나 소요유의 뜻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물과 바람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적극적 의지와 끝없는 자기단련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변신은 발상의 전환과 기존의 가치에 대한 극복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은행의 ‘큰물론’은 끝없는 자기단련을 통한 우리은행의 성장과 중국의 서북지역에서 웅비를 준비하는 기업의 자기단련도 같이 의미한다. 다시 말해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해주기 위해선 은행이 먼저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행장은 “먼저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겠다”고 말한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선행을 말한다. 먼저 알아서 파악하고 준비해서 고객이 찾아왔을 때 바로 원하는 서비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행이 될 수 없다. 이미 진출한 국내기업들은 중국은행들과 금융거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우리은행 지점이 개설되었으니 거래를 시작하겠지만 준비가 미흡하면 굳이 거래선을 바꿀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행장이 말한 ‘먼저 찾아가는’이라는 형용구가 중요하다. 큰물이 되어주기 위해선 먼저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 과정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어야 한다.

‘붕’이 구만리 창공으로 오르는 과정이 바로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단번에 박차고 올라 바람을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연습을 거쳐 비로소 창공에 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쪽을 향하는 붕새
구만리까지 올라가 비로소 큰 날개를 지탱할 바람을 쌓은 ‘붕’은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장자가 말한 남쪽은 ‘밝음’ 또는 ‘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변신을 거듭하고 구만리 창공까지 박차고 오르기 위해 연습도 수없이 해야만 했던 ‘붕’은 무슨 상징일까? 답은 우리네 인간이다. 장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조건에 맞춰 스스로 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단계에 오르기 위해선 수많은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 우화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쪽, 즉 지혜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충칭에서 날아올라 남쪽을 향한다고 한다. 베트남의 현지법인, 미얀마의 MFI, 인도 구르가운 지점, 모두 남쪽 바다다. 우리은행의 남명(南冥)행은 지혜를 담은 날갯 짓으로 이어질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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