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30 11:05 (금)
[칼럼]제왕학의 달인 세종, 역사에서 답을 찾다
[칼럼]제왕학의 달인 세종, 역사에서 답을 찾다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5.06.28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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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독서, 지도자의 독서<1>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세종은 ‘주자학의 나라’ 조선에서 주자학에 얽매이지 않은 유일한 군주일 것이다. 그렇다고 주자학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에 앞서는 그의 통치가 가치있었다는 말이다. 그 가치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요즘 식으로 말하면 ‘실용’이다. 실용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주자학 등의 ‘이념’이 아니라 ‘역사’ 속 사례다.

그래서 세종은 ‘역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대군 시절부터 경학(經學)과 사서(史書)를 가리지 않고 읽었지만 유독 역사책은 손에서 놓지 않을 만큼 귀히 여겼다고 한다. 이유는 실용의 사례를 보다 많이 찾기 위해서였다.

세종의 정치적 목표는 ‘백성’에 맞춰져 있었다. 요즘처럼 깊은 가뭄에 논바닥마저 바짝 갈라지면, 세종은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食爲民天)’라고 말하며, 관료와 목민관에게 ‘밥’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시켰다. 그리고 자신도 가뭄과 홍수를 이겨낼 방법과 권농의 방법을 ‘역사’속에서 찾아내고자 했다.

◆제왕학 교과서 《자치통감》과 《대학연의》
그런 세종은 목민관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북송의 사마광이 펴낸 《자치통감》을 꼽았다. 《자치통감》은 중국 전국시대부터 송나라 이전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의 중국은 16개의 왕조가 흥망성쇠한 시기이다. 흥망의 이유와 근거가 서로 다르고 성쇠의 발단과 전개 또한 차이가 있는 역사가 빠짐없이 기록된 책이다. 그러다보니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사건은 2만 건을 훌쩍 넘어서며, 책의 규모도 294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국내 번역본도 총 3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고려 말경. 그것도 전권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축약본 《자치통감강목》이었다. 따라서 2만건이 넘는 방대한 레퍼런스를 보고 싶었던 세종은 전권을 명나라에 요청했고, 이를 전국의 목민관들이 읽어 통치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자치통감훈의》를 편찬토록 한다. 집현전 학사들의 1차 원고를 안질이 걸린 상태에서도 직접 교정을 본 세종은 이 책의 편찬 및 배포를 위해 전국의 종이를 모두 소비시켰다고 한다.

세종에게 또 한권의 결정적 책은 북송의 진덕수가 지은 《대학연의》였다. 즉위한 지 두 달 만에 열린 첫 경연(임금이 학문이나 기술을 강론·연마하고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는 일)의 교재로 선택했을 정도로 세종은 이 책을 애지중지했다. 물론 이 책은 조선의 태조, 태종, 숙종, 정조 등도 통치의 기본 텍스트로 활용하기 위해 경연을 했던 책이기도 하다.

《대학연의》의 구성은 경학과 역사 모두를 아우르며, 통치에 필요한 950여개의 핵심 사례를 진덕수가 설명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자치통감》의 2만 여개의 레퍼런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필수적인 사례를 모은 만큼 세종에게는 참고할 내용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세종은 이 책을 100번 이상 읽었다고 전해진다.

세종이 아낀 《자치통감》과 《대학연의》의 공통점은 제왕학의 교과서라는 점이다. 그는 역사서와 제왕학 책을 통해 정치의 요체를 읽어냈던 것이다. 성리학의 경전은 수시치인(修己治人), 즉 자기를 먼저 갈고 닦고, 그리고 다스린다는 유교적 통치이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이념적 요소와 철학적 담론으로는 국가의 흥망과 백성의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세종은 일찍 간파하고 역사와 제왕학 교과서에 심취한 것이다.

◆시대를 움직이는 힘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그 시대를 움직이는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든, 쉬지 않고 덮쳐오는 도전과 응전을 통해서든,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역사책을 들추고 있다. 세종은 새로 건립된 조선의 부국과 백성의 살림살이를 위해, 그리고 국가의 흥망의 원인을 가려 실수 없는 통치를 하기위해 역사를 읽었고, 현대의 성공적인 정치 지도자들도 같은 목적으로 역사책에 빠져 살았다.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해군의 전사를 책으로 엮어낼 만큼 역사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독서가가 지도자는 아니지만 모든 지도자는 반드시 독서가여야 한다”고 말했던 해리 트루먼은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지만 두꺼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한 권씩 펼쳐 읽을 정도로 책을 가까이 하면서 지식을 채워갔다고 한다. 특히 그는 역사와 위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으며 그 속에서 흥망성쇠의 본질과 현안에 대한 위인들의 대응을 관심 있게 읽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영국의 디즈레일리와 처칠, 그리고 프랑스의 드골도 역사에서 본질적인 답을 구하기 위해 역사의 여신을 찾아 나선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역사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아 현안에 대응하는 실용적 필요 외에 시대를 관통하며 흐르는 정신을 찾고자 했다. 그 정신의 근저에서 느껴지는 변화의 흐름을 찾아야만 놓치지 않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위해 여론의 흐름을 자주 묻는다. 그런데 대중의 뜻이 응축된 여론의 추세대로 움직였다고 해서 성공하는 정부나 국가, 그리고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여론의 바닥에 흐름은 미세한 떨림을 읽어내야만 변화의 경계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세종이 《자치통감》과 《대학연의》, 사마천의 《사기》 등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변화의 시점을 알리는 아주 작은 전조들이었다. 현대의 정치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철학자 프리더 라욱스만은 “미래를 꿈꾸는 자만이 거기서 오는 미약한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세한 떨림은 오감을 열고 세상을 맞아야 가능하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려야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 그것이 통치, 그리고 경영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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