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계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투자의 첫걸음이라는 뜻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 김성훈 연구원은 국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이 안전성과 수익성 모두를 버린 실패한 투자방식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낭떠러지’ 국민연금…국내투자에 자산 80% 올인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전체 운용자산 중 77.9%를 국내에 투자하고 있다. 넓은 해외시장을 버리고 비좁은 국내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실물과 금융 모두 세계경제의 2%에 불과하며 국내 금융시장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위험분산이 아닌 위험집중의 원칙에 따라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면 국민연금까지 흔들리게 자산을 배분해 놓은 셈이다.

안정성뿐만 아닌 수익성 면에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이 국내에만 투자해 안전성을 해쳤다면 수익성이라도 높여야 하지만 채권에 절반이 넘는 기금을 몰아 넣어 수익성까지 버리고 있다.

기금운용자산 중 주식과 채권의 조합비율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위험 회피도를 반영하는데 한국의 국민연금은 채권보유 비중이 60%에 달해 전세계 주요 6대 연기금 중 가장 위험을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의 채권 비중은 17%, 캐나다 국민연금은 26%,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37%, 네덜란드 공적연금은 39% 등으로 모두 채권보유 비중이 40%를 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공적연금 조차도 52%로 우리나라보다는 낮다.

채권은 주식에 비해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만 반대 급부로 수익률 또한 낮다. 채권 비중이 높으면 높을수록 평균적인 수익률은 떨어지게 돼 있다. 당연히 한국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세계 주요 연기금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투자수익만으로 재단 운영하는 노벨 재단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방식과 비교되는 예로 스웨덴의 노벨 재단을 꼽을 수 있다. 시장원리에 따른 현대적 투자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스웨덴의 노벨 재단은 첫 수상자를 배출했던 1901년 이후 올해도 800만 스웨덴크로네(한화 약 11억4000만원)의 상금을 분야별로 전달했다.

알프레드 노벨이 1895년 기부한 돈은 당시 액면가 3100만 스웨덴크로네로 만약 이 돈의 원금으로 상금을 계속 줬다면 이미 바닥이 났어야 할 금액이다. 노벨 재단이 하는 여러 가지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을 고려하면 더 빨리 소진됐어야 하지만 노벨 재단은 여전히 독립적이고 건재하다. 실제로 1977년까지 노벨 재단의 자산관리는 엉성했다. 불과 1년만에 보유한 투자자산의 실질가치는 알프레드 노벨의 최초 기부액에 비해 42%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노벨 재단의 보유 자산은 명목가치가 1억7000만 크로네에서 39억 크로네로 2300% 수준으로 상승했으며 실질가치로 따져도 443% 수준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노벨 재단의 전체 운용기금의 수익률은 16.5%에 이른다. 노벨 재단이 운용하는 기금 포트폴리오 구성을 보면 주식 55%, 채권 12%, 대체자산(부동산과 헷징상품) 33%를 보유하고 있다.

원금을 까먹지 않고 투자 수익만으로 상금을 주고 재단을 운영하며 기타 사업들을 모두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같은 기간 5.2%에 그쳤으며 국내주식 부문에서만 지난해 마이너스 5.5%로 큰 손실을 기록했다.

김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계획을 보면 ‘국민’의 연금이니 정부가 빚을 내는 것을 도와주고 국내 기업의 주가를 보호해주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명시돼 있다”며 “공공성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오히려 공공의 이익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익률 1%만 높여도 연금 고갈 수년씩 늦춰
한국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는 현재 500조원으로 세계 5위에 해당되는 초대형 연금이다.

국내 연금 구조상 받는 사람보다 내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그 규모는 당분간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 5년 후엔 850조원을 넘어서고 2043년에는 25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보니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일 때마다 연금 고갈 시기는 수년씩 늦춰지고 우리의 미래는 더 풍족해지며 미래 세대의 어깨는 더 가벼워진다.

김성훈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기금의 재원은 함께 노후를 대비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 속에 국민 한명 한명의 저축에서 나온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며 “그 설립의 뜻과 엄청난 규모를 생각하면 수익과 안전추구 원칙 이외에 어떠한 주장도 끼어들어서는 안되며 그것이 진짜 공공성을 되찾는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2015~2019년 중기자산배분계획에 여전히 전체 기금의 70%를 국내에 할당하고 채권 중심으로 기금을 운용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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