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나는 ‘안목’ <4>

 
진정한 안목은 타자 배려해 화려함을 가리는 것
서양의 안목, 의심과 회의…동양은 긍정에서 출발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밧사니아는 금과 은, 그리고 납으로 된 상자를 앞에 두고 ‘반짝임’에 대해서 철저하게 의심하고 회의한다. 홍차와 향신료, 그리고 도자기 무역을 독점하면서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고, 유럽 각국의 귀족들에게 호화상품을 공급하면서 부를 축적했던 베니스의 무역상답게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하지 않는다.

냉혹하기 그지없는 시장을 보이는 그대로 믿을 경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시장의 특성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금과 은상자를 고른 고루한 귀족들과 달리 상인 밧사니아에게 초라한 색깔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마저 끌지 못했던 천덕꾸러기 납상자를 선택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포샤와의 결혼을 의미하는 그녀의 초상화가 들어 있었다.

이처럼 중세 이후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서구인들은 근대적 사유를 통해 서양인들만의 ‘안목’을 형성해간다. 그 출발점은 의심과 회의였다.

그러나 동양의 ‘안목’은 의심이나 회의와 같은 존재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긍정에서 출발한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가시긴 했지만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와 비록 아름다움의 대상은 아니지만 무늬를 갖고 있는 바위의 긍정성에서 우리 선조들은 ‘안목’을 찾고 있다. 짙은 회색 빛깔의 바위에 있는 무늬에서 서구적 관점의 ‘반짝임’을 발견할 수 없지만 우리 선조들은 묵직한 바위가 나름의 무늬를 갖고 있음을 반가워한다. 그 반가움의 실체는 바위를 포함한 모든 존재에 나름의 ‘반짝임’이 존재한다는 동양의 사유구조이다.

‘반짝임’ 자체의 진위를 따지기보다, 시선을 끌지 못하는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반짝임’을 인정한다는 점에서의 긍정성이다. 또한 ‘반짝임’이 과도한 경우, 반짝임의 소유주체가 인위적으로 화려함을 가린다는 뜻에서 타자에 대한 배려를 내포하고 있는 긍정성이기도 하다.

타자를 고려하며 외적 화려함보다 내적 충실함을 추구하는 동양적 가치를 담은 단어가 <시경>과 <중용>에 나오는 ‘의금상경(衣錦尙絅)’이다. 글의 뜻은 “비단 옷을 입고, 삼베옷을 걸쳐라”이다.

<시경>에는 ‘의금경의(衣錦絅衣) 상금경상(裳錦絅裳)’이라는 단어로 ‘고운 그대(碩人)’와 ‘의젓한 그대(?)’라는 시에서 각각 인용되고 있다. ‘석인’에서는 제나라 군주의 자식이고, 위나라 군주의 아내이며, 제나라 태자의 누이인 고운 그대가 비단 옷을 입고 그 위에 홑겹 옷을 덧입었다는 내용으로 ‘의금상경’이 쓰이고 있다.

이 시의 의미가 <중용>에 영향을 미쳐, 군자의 도와 연결돼 화려한 외모보다는 내적 가치의 충만이 진정한 가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군자가 화려한 무늬의 비단옷을 입고 다닐 수도 있지만, 행동을 삼가기 위해 그 위에 모시처럼 얇은 홑옷을 입어 무늬를 가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비단옷을 입지 못한 사람들(타자)을 배려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도 위엄을 유지하는 카리스마를 세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설명을 하고 있는 <중용>의 속뜻은 ‘신독(愼獨)’이다. 소인은 남을 속이고 나아가서는 자기마저 속이는 까닭에 내실이 없지만 군자는 내면의 충실함을 추구하므로 거짓 반짝임을 유도하지 않으므로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 그 기본 원칙이 바로 ‘신독’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반짝임’을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여기도록 학습돼 왔다. 하지만 시장은 반짝임이 꼭 금이나 은이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줬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의심하고 회의한다. 하지만 모시홑옷을 입어도 안에 입은 비단옷이 비치듯이 진정한 반짝임은 납상자 안에 있어도 ‘안목’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빛을 발하게 된다.

자신의 반짝임을 포장하기보다 포장하지 않은 자신의 내적 가치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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