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복지수요가 증가하면서 세대간 형평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젊은 세대가 노인세대를 부양하는 ‘사회적 계약(Social Contract)’ 형태로 공적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근로세대가 은퇴세대를 부양하는 형태의 연금제도는 인구증가 시기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젊은층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시기에는 세대간 형평성과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받고 싶은 돈이 내는 돈보다 2.5배 많아

공적연금제도에서 세대간 상생문제는 세대간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부양구조, 즉 세대간 재분배의 문제로 정의할 수 있다. 세대간 재분배는 연금가입자가 현재 내는 돈으로는 조달할 수 없는 재정부담으로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몫이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경제 발전은 늦었지만 빠른 속도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공적연금의 재정안정성에 큰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경우 장기적으로 기금 고갈이 예상돼 기여나 급여구조 조정 등 재정안정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하지만 연금개혁 과정에서 나타날 현 세대와 미래세대의 이해관계 충돌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세대간 이해상충의 근본 원인은 상생을 유도할 수 있는 세대간 형평성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혜택을 받고 있는 계층이 미래세대의 부담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고 미래세대를 대변하려는 목소리가 높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공적연금의 세대간 재분배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의사를 설문조사한 결과 부담의향과 은퇴 후 요구수준의 격차는 상당히 크게 나타났다.

은퇴세대를 위한 재정부담 의사는 전 연령대에 걸쳐 비교적 균일하게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소득 대비 평균 0.32%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세대별 편차는 크지 않았다<표 참조>.

그러나 응답자가 은퇴했을 때 미래세대가 부담해주길 원하는 지원 수준은 소득의 0.80%로 자신의 지불의사보다 크게 높은 수치를 보였다. 대부분 미래세대로부터 자신의 부담의사보다 큰 지원을 기대하고 있었으며 그 격차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벌어졌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전병목 연구원은 “이러한 격차는 선거를 통한 재분배 결정이 현 고령층에 유리한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며 “납세자들의 부담의향을 넘어서는 재분배 결정은 장기적으로 연금제도 등 국가재정을 훼손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분배 부담의향과 요구희망 수준은 공적연금 가입유형에 따라서도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대체율을 보이는 직역연금 가입자는 본인의 부담의사와 은퇴 후 요구하는 지원수준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반면, 국민연금 가입자와 공적연금 미가입자는 각각 0.43%, 0.72%의 격차를 보였다. 이 같은 결과는 공적연금 미가입자의 공적연금 가입이 세대간 재분배 요구를 완화시켜 연금제도뿐만 아니라 전체 국가재정의 지속가능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부양의사 및 부담요구에 대한 공적연금 가입형태의 영향은 소득 등 다른 변수를 통제하면 통계적 유의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입형태와 관계없이 현 세대는 세대간 재분배를 요구하며 제도 내에서 실현 정도는 가입자들의 규모, 단결성, 정치적 영향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은퇴소득 중 공적연금의 비중을 높게 희망할수록 세대간 재분배 의사 및 요구 확률은 커졌으며 공적연금의 역할이 커지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더 높은 확률로 세대간 재분배를 원했다.

중앙정부 신뢰도 변수의 경우 신뢰도가 높을수록 고령층의 부양의사가 높아져 세대간 재분배에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미래세대의 부담요구에 미치는 영향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현 세대 주도의 연금개혁은 미래세대에 악영향

전 연구원은 미래세대 부담에 대한 사회적인 주의환기가 없다면 향후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소득이 높아져도 공적연금의 세대간 재분배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세대간 재분배 구조와 부양의사 및 부담요구에 대한 분석결과는 공적연금의 개혁방향에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

먼저 현재 공적연금의 세대간 재분배 규모의 격차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가입한 공적연금의 종류에 관계 없이 형평성 있는 규모를 유지해야 하며 공무원연금의 추가적인 급여개혁과 함께 국민연금 또한 기여율 인상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세대의 부담증가 유인도 제도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 의사를 반영한 정치적 과정에서 미래세대의 이익이 크게 훼손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제도 자체에서 세대간 재분배 기능을 제거하도록 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한편 공적연금의 세대간 재분배 축소는 전반적인 급여하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높지 않은 점을 감안해 정부가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의 역할을 강제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퇴직금의 퇴직연금 전환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기업 규모에 따른 점진적 퇴직연금 전환을 즉시 전환 후 점진적 기여율 인상 방식으로 조정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러한 방안은 호주의 ‘superannuation’ 연금의 확장방식과 동일한 방식이며 과거 국민연금 요율 인상 시에도 적용했던 방법이다.

전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경제사회변수가 재분배 의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낮아 현 세대가 결정하는 세대간 재분배 구조는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세대간 상생을 유도할 수 있는 공적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개인의 이해관계에 크게 영향을 받는 현세대 여론보다 미래세대를 체계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전문가적 분석결과를 활용하고 각 경제주체들과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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