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보는 ‘역사’ <4>

 
감성의 연쇄반응 일으키는 연결고리와
겉보다 밑에 있는 깊은 의견 읽어낼 힘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가 보내는 모든 순간은 역사적 순간들이다. 평범한 일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혁명적 순간으로 진화할 경우도 있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날이 그저 그런 날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순간들이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역사로 기록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난 2016년 6월 24일은 전쟁의 불씨를 지피지 않으면서 하나의 유럽을 유지하고, 공존하기 위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지 유럽인 전체에게 질문을 던진 날이다. 전 세계가 브렉시트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 향후 유럽연합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읽어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500년 전, 유럽을 전란의 도가니에 휩싸이게 한 사건이 있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의 만성교회 정문에 95개 항의 요구 조건이 담긴 대자보가 걸렸다. 작센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루터, 또는 루더로 불리던 수도사가 붙인 한 장의 대자보가 가톨릭교회를 분열시키고 세상을 전란으로 물고 간 것이다.

당시 이 격문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학술지에 도발적인 논문 한 편을 발표한 것과 비슷한 행위였다. 그런데 이 격문 한 장이 유럽 대륙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열시키고 심지어 대륙 전체를 전쟁의 참화로 내몰 것이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불과 40년 전에 실용화되기 시작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삽시간에 혁명을 전파했다. 루터의 글을 읽은 친구들은 인쇄본을 만들어 독일 전역으로 보냈으며, 심지어 가톨릭에 염증을 느꼈던 네덜란드와 스위스 등의 지역에도 들불 번지듯 전달되었다.

루터가 이 글을 쓴 것은 혁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속죄라는 거룩한 행위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을 따름”이었다. 진정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죄를 없애는 면허장을 교회에서 판매하는 것 자체에 문제제기를 했을 뿐이었다. 토마스 아 캠피스가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서 말한 경건함과 ‘성경’ 중심의 사고가 루터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은 혁명을 운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브렉시트를 보자. 영국독립당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공약이 실수였다고 말하고 있다.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공약을 영국민들을 현혹한 것이다. 그 결과 유럽연합의 보조금으로 연명하던 지방도시들은 탈퇴에 찬성하여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역사는 이처럼 ‘감성’에 의해 아이러니하게 움직인다. 잔물결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채만 한 쓰나미로 다가오는 사건 대부분은 기저에 ‘감성’이 깔려 있다. 그 감성이 도화선이 되어 하찮게 시작된 사건을 혁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감성의 흐름을 읽어내야 할 것인가? 디지털과 모바일이 주도하면서 플랫폼 자체를 새롭게 만들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공간에서 혁명적 변화의 근거를 어디서 읽어내야 할 것인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숙제는 브렉시트가 아니라 브렉시트로 이어지는 역사적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루터의 95개조 격문이 아니라 격문 한 장이 유럽을 들끓게 한 감성의 연쇄반응이다.

법학자 프리더 라욱스만은 <세상을 바꾼 어리석은 생각들>에서 “미래를 꿈꾸는 자만이 거기서 오는 미약한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꿈’은 정신을 통해 미래로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행위이다.

리처드 에번스는 자신이 펴낸 <역사, 시민이 묻고 역사가 답하고 저널리스트가 논한다>라는 책에서 영국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미약한 신호를 잡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여론 밑에 있는 좀 더 깊은 의견을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일찍이 벌린이 ‘역사의 발굽소리’라 부른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1940년의 처칠>이라는 책에서 “정치적 천재는 역사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지나가는 기수의 옷자락을 잡으려 도약한다”고 쓴 바 있다. 여기서 벌린이 말한 천재는 비스마르크다.

그만큼 매순간 꿈꾸면서 시간을 기다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순간 그는 역사의 옷자락을 거머쥐었다. 그 결과는 꿈꾸면서 기다렸던 노력 만큼이었다.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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