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 경제가 향후 수십년간 맞게 될 가장 엄중하고 구조적이며 비가역적인 위험요인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과 세계 최고 고령화 속도 앞에 산업현장은 건강한 노동력 부족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하락하며 가계는 기대수명만큼 미래소비에 대비하느라 현재소비를 제약하고 있다.

특히 ‘주식시장’은 국가경제의 미래 흐름을 미리 반영하는 경제의 축소판으로 인구구조의 장기적 영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장이다. 본지는 자본시장연구원 송홍선 선임연구원과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정광수 교수의 ‘인구구조 변화와 주식시장’ 연구를 기반으로 주식시장에서 인구구조의 경제적 영향력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우리나라의 저출산ㆍ고령화에 대한 정책 대안을 고심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미국 고령자, 은퇴 후에도 주식 처분 안해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미국과 일본의 금융자산 데이터를 살펴보면 눈에 띄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노인들이 은퇴를 하면 주식을 빠르게 처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은퇴 후에도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가계금융자산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근로소득이 높은 투자자는 노동에, 근로소득이 낮은 투자자는 위험자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으며 근로소득이 없는 은퇴기간은 근로소득 황금기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위험자산을 연구하고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자산 중 가장 대표적인 주식 보유 참여율을 살펴보면 미국 가계의 주식 참여율(간접투자 포함)은 2004년 조사 시점부터 45~54세 연령보다 55~64세 연령의 참여율이 더 높았다. 인구 고령화와 미국 노인의 노동시장 잔류 증가, 주식시장의 활황 등으로 주식 참여 연령대가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가장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직접투자 참여율이 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높아졌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연령별 주식시장 참여율은 35세 미만(7.2%), 35~44세(14.3%), 45~54세(14.7%), 55~64세(15.5%), 65~74세(18.4%), 75세 이상(15.3%)으로 75세가 넘어도 주식시장 참여율이 50대에 뒤지지 않았다. 금융자산 중 주식보유 비중도 1989년 이후 진행된 9차례의 조사 결과 75세 이후(16.0%)가 가장 높았고 65~74세(12.5%), 55~64세(8.3%) 순으로 나타났다.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 보유액 또한 은퇴 이후에 주식의 직접 보유액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직ㆍ간접 주식 보유액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65~74세 집단(평균 8만2000달러) 다음으로 75세 이상(평균 7만1000달러)으로 나타났다. 은퇴를 하면 주식을 빠르게 처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고령자들은 은퇴 후에도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일시금으로 인출 가능한 DC퇴직계정은 은퇴 이후 빠르게 줄어들지만 주식과 펀드는 은퇴 후에 오히려 비중이 늘어났다”며 “직접투자 주식만 고려하면 은퇴 이후 주식 보유도는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간접주식을 포함해야 은퇴 후 주식 보유가 차츰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고령화로 주식시장 급격한 하락은 없을 것

은퇴 이후 금융자산 인출은 연금, 펀드, 직접주식 순으로 일관된 인출 순서가 보였다.

미국 가계는 1989년 이래 9차례의 조사에서 일관되게 은퇴 이후 펀드, 연금 등 간접투자 주식을 먼저 인출하고 직접투자 주식을 가장 나중에 조금씩 인출하거나 상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주식 인출순서는 그 나라의 경제적 합리성에서 나온다. 미국의 401(k)는 59.5세부터 연금을 수령할 자격이 인정되는데 그 전에 인출하면 가산세가 부과된다. 70.5세까지는 인출이 강제가 아닌 선택이며 근로소득이 있을 경우 70.5세 후에도 추가불입이 허용된다. 이 같은 인출제도를 고려하면 55~64세에 연금자산 비중이 줄기 시작해 70세가 넘으면 빠르게 감소하는 것은 미국의 퇴직연금제도와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상속세제 또한 금융자산이 많은 고령 가계의 유산동기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미국은 주식을 현물로 상속할 경우 매우 높은 수준의 상속세를 면제받을 수 있으며 평생 보유한 주식에 대해 자본이득세도 부담하지 않는다. 미국 가계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상속자산은 상속세와 자본이득세가 장기보유와 상속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은퇴를 했다고 해서 직접투자 주식과 펀드를 빠르게 처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인구구조의 변화에 기반한 최근의 통계분석에 따르면 주식가격붕괴가설이 전망하는 것처럼 급격한 주식가격 하락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은 30~40대에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다 은퇴 후 하락하지만 은퇴 가계의 금융자산 인출은 생애주기 가설이 암시하는 것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또 주식자산의 보유가 매우 불평등한 지금의 경제에서는 은퇴 베이비부머의 급격한 주식자산 처분과 그에 따른 주식가격 급락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고소득자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은퇴소득을 얻고 있기 때문에 은퇴 후에 주식을 처분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처분 규모도 전체 보유가치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저소득자들은 은퇴와 관계없이 처분할 주식 자산이 없다.

자본시장연구원 손홍선 연구원과 존스홉킨스대 정광수 교수는 “인구구조의 차이는 생산성 차이, 산업구조 차이 등을 야기하며 궁극적으로 국가 간 자본이동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유럽과 일본에서 미국으로의 자본이동은 인구고령화를 앞둔 유럽과 일본의 높은 은퇴자산 축적 동기를 반영할 것”이라며 “2050년까지 미국 금융자산에 대한 중국의 수요는 은퇴로 인한 미국 가계의 자산 처분을 흡수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베이비부머의 은퇴자산 처분에 따른 주식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완충할 수 있는 수요 기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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