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6 20:50 (목)
‘사회적 거리두기’의 직장 사회학
‘사회적 거리두기’의 직장 사회학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2.22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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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말처럼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야 기회온다
잔혹한 인사철, 물먹었어도 권력의지 놓지 않아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이달부터 우리나라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일상은 여전히 ‘거리두기’의 연속이다.  

3차 대확산을 막고자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자영업자들에겐 극약처방과도 같은 2.5단계의 거리두기를 실시했지만, 확진자 숫자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외려 설 연휴 기간 중 가족 친지 간의 만남 등으로 지난달 수준을 넘어서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는 양상이다.  

‘거리두기’.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접한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거리두기는 타자와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멀리하기 위해 취하는 태도다. 스스로 원해서 거리를 둘 수도 있고, 개인 차원이 아닌 조직, 크게는 국가가 목적을 갖고 강제적으로 거리를 두도록 만들기도 한다.  

스스로 원하는 경우는 종교적 목적이거나 의도적으로 사회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감정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방법일 것이다.

묵언수행을 하는 종교인이거나 마키아벨리나 파스칼처럼 자신에게 침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유폐를 선택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강제적인 거리두기는 특정 집단만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차별에 나서거나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처럼 최상위의 도덕률을 위배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이나 민족에 대한 차별, 그리고 사회질서의 안정과 안녕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발포된 각종 법률적 억압도구가 그럴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역사 속에서 간헐적으로 ‘거리두기’를 하면서 진화해왔다.

이태 전까지의 친밀한 사회적 관계 때문에 오늘의 거리두기가 낯설기 그지없지만,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된 거리두기는 어쩌면 우리의 질서 중 일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진작부터 거리두기를 설파하며 ‘거리두기의 파토스’를 강조한 철학자가 한 명 있다. 최근 들어 뜨겁게 조명받고 있는 니체가 그렇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도덕의 기원을 주인과 노예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주인의 도덕은 좋고 나쁨을 가치평가의 잣대로 삼는다고 말하고, 노예의 도덕은 형이상학적 의미의 선과 악을 가치평가의 기준으로 상정한다고 말한다.

니체가 말하는 거리두기는 주인들이 좋고 나쁨을 이유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감정을 의미한다.

더 고귀하고 숭고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 대해 갖는 우월한 감정. 바로 이것이 도덕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차별을 당하는 노예 계층은 여기에 순종하거나 아예 이를 전복하려는 도덕을 갖게 된다는 것이 니체의 설명이다.

힘으로 이겨낼 수 없다고 판단한 노예들은 순종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막장까지 갔다고 생각한 노예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에 매진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나오는 또 하나의 개념이 ‘르상티망’이다. 프랑스어로 ‘원한’이라는 뜻의 르상티망.

가질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증오나 피해를 보고도 직접 복수할 능력이 없어 무력감에 빠져 나타내는 한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르상티망은 ‘권력의지’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주총과 정기 인사철이 목전이다. 어떤 사람은 승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번에도 물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르상티망의 상태에 빠지면, 미궁에 빠진 듯 답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권력의지를 상실한 순종은 답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복은 어떠할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 르상티망의 상태로부터도 거리두기에 나서자. 기회는 다시 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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