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5 15:55 (일)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는 찔레꽃 제철 맞아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는 찔레꽃 제철 맞아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5.31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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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철 비 내리지 않으면, 농부 가슴 태우는 ‘찔레꽃가뭄’
우리 근현대사에 아픈 추억 함께 담고 있는 생명력 긴 나무
모내기가 한창인 5월 말이나 6월 초, 양지 바른 곳에 뿌리를 내린 찔레나무에선 꽃을 피운다. 장미의 조상 쯤으로 여겨지는 찔레나무는 가을이면 굵은 콩알 크기의 빨간 열매를 맺는데, 새들의 먹이가 되며, 사람들에겐 부스럼과 종기 등의 상처를 다스리는 약이 돼 주었다.
모내기가 한창인 5월 말이나 6월 초, 양지 바른 곳에 뿌리를 내린 찔레나무에선 꽃을 피운다. 장미의 조상 쯤으로 여겨지는 찔레나무는 가을이면 굵은 콩알 크기의 빨간 열매를 맺는데, 새들의 먹이가 되며, 사람들에겐 부스럼과 종기 등의 상처를 다스리는 약이 돼 주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요즘 비가 잦다. 모내기 철에 반가운 비다.

쉬는 주말에 자주 내려 휴일 바깥 활동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겐 얄밉기 짝이 없겠지만, 농사일에 비는 천군만마와 같으니 이해하자.

그런데 이 시기에 이렇게 안성맞춤으로 향시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다.

전국 주요 저수지의 최저 수위와 평균 저수량 통계를 인용하며 봄 가뭄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마주해왔다. 그럴 때 쓰는 말이 ‘찔레꽃가뭄’이다.

회화나무와 자귀나무 등 늦게 이파리가 돋아나는 나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무가 초록에서 녹색으로 짙어가는 5월이 되면, 하얀색 찔레꽃이 지천인 계절이 된다.

아까시나무도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려 진한 향을 진동하며 튀밥 같은 꽃을 터뜨릴 무렵 찔레꽃도 보란 듯이 다섯 장의 꽃잎을 펼쳐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햇볕을 좋아해 양지 녘이면 바로 뿌리를 내리는 찔레나무는 그래서 볕이 안 드는 숲속의 음침한 곳에선 만날 수 없다.

숲이라 해도 가장자리, 다른 나무들이 해를 가리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이 찔레꽃을 마주할 수 있다.

바로 이 시절 이야기다. 이때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를 못 하게 된다.

늦게나마 비가 오면 다행이지만, 철을 놓치면 농부의 마음은 처참하다 못해 비극으로 내몰리게 된다. 연명을 위해 구황 작물이라도 심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 것이다.

요즘이야 이런 일이 없지만,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엔 다들 이렇게 살았다.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이 땅의 농부들은 누구보다도 간절히 비를 바랐다. 그 덕에 붙여진 이름 ‘찔레꽃가뭄’은 어쩌면 수십 년 전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을 담아낸 말일는지도 모른다.

어디 ‘찔레꽃’을 가뭄에만 빗댔겠는가. “찔레꽃이 입하(立夏) 전에 피면 비가 많이 내린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가뭄을 떨치고 싶은 간절함이 역설적으로 일찍 핀 찔레꽃에 투영돼 생긴 속담일 것이다.

그런데 어떡하랴. 당시 보릿고개는 천형처럼 이 땅에 내려앉았으니 말이다.

찔레꽃은 우리 민족의 슬픔과 애환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꽃이다. 식량이 떨어졌던 보릿고개를 견디게 해 준 것이 찔레순이었으며, 가난한 시절 시골 어린이들이 간식처럼 따먹은 것이 찔레꽃이었다.
찔레꽃은 우리 민족의 슬픔과 애환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꽃이다. 식량이 떨어졌던 보릿고개를 견디게 해 준 것이 찔레순이었으며, 가난한 시절 시골 어린이들이 간식처럼 따먹은 것이 찔레꽃이었다.

그래서 보리 수확 전에 쌀이 떨어지면 먹을거리를 찾아 온산을 뒤져야 했고, 그렇게 찾은 것 중 하나가 찔레 순이었다.

그 덕에 생긴 속담에 “찔레꽃 필 무렵에는 딸 집에도 안 간다”는 말이 있다. 춘궁기 사돈 손님도 부담스러웠을 정도로 우리 삶이 팍팍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이처럼 찔레꽃은 생존의 문제 그 자체였고, 그래서 너무나도 민중적이었다.

이런 정서는 시와 노래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으로 시작하는 가수 이연실의 〈찔레꽃〉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을 먹거리였다. 그리고 이 노래는 1930년 일제강점기에 〈신소년〉에 이원수 작가가 발표한 〈찔레꽃〉을 원형으로 삼고 있는데, 이 시에서도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남모르게 가만히 먹어왔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배고픈 현실을 타개하려는 20세기 초중반의 절박함은 찔레꽃에 집단무의식처럼 녹아있다.

지금은 찔레꽃에서 배고픔을 연상할 세대는 별로 없다. 양지바른 곳에 피운 하얀 꽃 정도로 기억하고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작은 열매를 새들이 먹이로 삼는다는 정도로 이 나무를 바라본다.

물론 젊은 세대에서 이 나무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겠지만 말이다. 그나마 기억한다면 가수 장사익이 피 토하듯 부른 노래 〈찔레꽃〉일 것이다.

하지만 이 나무와 꽃, 그리고 약으로도 쓰였던 열매는 한반도를 살아간 많은 사람과 여러 인연으로 마주한 대상이다.

이연실의 노래가 됐든, 장사익의 노래가 됐든 찔레나무는 우리와 감성을 교감하며 살아온 나무다. 비록 그 내용이 처연할지라도 말이다. 그만큼 우리 근현대사가 슬프고 먹먹한 사건으로 가득했다는 방증이니 어쩌겠는가.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핀 찔레꽃을 만나면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라고 노래한 장사익의 절규를 상기해보자.

그리고 찔레꽃을 따 먹어보자. 요즘 입맛으로 단맛을 찾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꽃에 담긴 우리들의 부모님 이야기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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