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호황 힘입은 ‘쥐꼬리 수익’ 불명예 탈출에도
안전자산→투자자산 인식 변화에 고객 이탈 늘어

<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퇴직연금 시장 터줏대감임에도 초라한 성적표로 눈칫밥을 먹던 은행들이 최근 수익률 상승세에도, 안도하지 못하고 있다. 더 높은 수익률을 쫓아 타 업권으로 이탈하는 가입자들이 늘어난 데 따른 위기감 때문이다.

29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국내 주요 5개 시중은행의 평균 수익률이 꾸준한 개선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5개 시중은행의 지난 1분기 확정급여형(DB) 평균 수익률은 1.67%로 전년 동기(1.56%)보다 0.11%포인트 늘었으며, 특히 가입자가 직접 운용할 수 있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IRP)의 상승세가 가팔랐다.

DC형 평균 수익률은 지난해 1분기 0.87%에서 올해 1분기 3.81%로 2.94%포인트 늘었고 IRP형의 경우 지난해 1분기 –0.47%에서 3분기 2.00%로 마이너스를 탈출, 올해 1분기엔 5.24%를 기록하며 1년 새 5.71%포인트 올랐다.

은행별로 보면 올해 DC형 수익률은 신한은행이 4.50%로 가장 높았고 국민(3.99%), 하나(3.69%), 우리(3.68%), 농협(3.19%)이 뒤를 이었다. IRP형는 하나은행이 6.07%로 선두에 섰으며 신한(5.96%), 국민(5.77%), 우리(4.56%), 농협(3.86%) 순이었다.

은행들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늘어난 건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한 DC형과 IRP형의 원리금비보장 잔액 비중이 늘어난 덕이 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 호황과 함께 금융사들의 적극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과거 안정성에 주안점을 뒀던 퇴직연금 투자가 점차 수익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한 것.

5대 시중은행의 올해 1분기 기준 원리금비보장 DC형 운용액은 4조4145억원, IRP형 운용액은 6조2692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보다 50.84%(▲1조4879억원), 69.57%(▲2조5723억원) 급증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과거 은행의 퇴직연금 예치는 안전성을 추구하는 가입자가 대다수라 원리금보장상품 위주로 운용됐는데, 최근 유례없는 국내 증시 호황에 공격적 투자성향의 가입자들이 덩달아 늘면서 은행에도 원리금비보장 포트폴리오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치열한 퇴직연금 유치 경쟁 분위기와 그동안 부진한 수익률로 추락했던 운용 능력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수익이 나지 않으면 퇴직연금 운용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포한 은행들도 있었는데, 수익률 개선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다만 은행들은 퇴직연금 시장에 대한 경계감을 여전히 낮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며 보다 공격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갖춘 증권사로 퇴직연금을 운용사를 변경하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IRP 적립금 중 은행 비중은 68.5%, 증권사는 23.6%로 은행의 시장내 입지가 여전히 월등하지만, 1분기 적립금의 전년 동기대비 증가율은 은행 39%, 증권사 61%로 증권사가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나가는 모습이다.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은행들은 고가의 경품을 내건 이벤트를 앞다퉈 진행하고 그동안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 세제혜택, 상품제시 등 맞춤형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증권사로 이탈하는 퇴직연금 가입자들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이 안전자산에서 투자자산으로 인식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운용사 선택에 수익률을 중시하는 고객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장기간 지속된 금융사 간 출혈경쟁으로 더 이상의 수수료 인하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종 이벤트로 고객 유치에 애쓰고 있지만 일시적 방편일 뿐"이라며 "포트폴리오 사후관리 강화, 투자처에 대한 안전성 확보 시스템 등 고객의 장기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강구책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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