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협회, 연내 평가방식 개편 나서

손해보험업계가 배타적사용권 신청을 남발하는 관행에 자정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무리하게 담보를 쪼개 신청 개수를 늘리거나, 재보험사의 상품을 단순 구매한 뒤 독창적 상품을 개발했다는 사례가 발생하자 심의 프로세스를 변경하기로 한 것이다. 

배타적사용권이란 보험협회 내 신상품심의위원회가 신상품 개발이익 보호를 위해 부여하는 한시적 특허권이다. 보험사는 배타적사용권 심의 결과에 따라 3개월에서 1년간 독점적인 판매권한이 부여된다.

손해보험 신상품 개발이익 보호에 관한 협정 개정(안).

 


상호협정 개정타사 의견도 청취


손해보험협회는 연내 ‘손해보험 신상품 개발이익 보호에 관한 협정 세부처리지침’을 손질할 계획이다. 이 지침은 손보사가 신청하는 배타적사용권의 평가 방식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본지는 지난 7일자 <손해보험 배타적사용권 무더기 남발…‘그들만의 잔치’ 됐다> 기사를 통해 손해보험사들이 배타적사용권 심의 신청을 남발하는 관행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올해 1~9월 손보협회 신상품심의위원회는 총 19건의 신청 중 1건을 제외한 18건의 상품에 배타적사용권을 부여했다. 같은 기간 손보사들이 새로운 위험담보나 제도·서비스를 개발했다며 위원회에 내건 심의 담보수는 54개(손해보험협회 기준)에 달했다. 최근 4년간 배타적사용권 심의 대상이 된 담보는 2018년 24개, 2019년 14개, 지난해 40개 등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일명 ‘담보 쪼개기’ 관행에서 비롯됐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상 질병코드를 기준으로 기존에 타사에서도 보장하던 질병의 내용을 조금 바꾸거나, 중증 질병에서 경증 질병으로 보장을 확대하는 식으로 신청 숫자를 늘린 것이다. 

재보험사가 주도적으로 개발했거나, 공동 개발한 상품을 보험사의 자체개발 역량으로 둔갑시키는 일부 사례도 생겨났다. 보험사 상품개발부서 내 핵심성과평과(KPI) 지표에 배타적사용권 획득 개수가 포함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협회는 심의위원간 향후 운영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배타적사용권 관련 상호협정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위원회 내부에서도 진단비 중심의 담보 쪼개기로 배타적사용권 신청건수가 증가하는 행태에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타적사용권 심의기준이 되는 4가지(독창성, 진보성, 유용성, 노력도) 중 노력도 항목에 ‘재보험사 등 제3자가 신청사의 신상품 개발을 실질적으로 고안·기획하거나 주도하는 경우 등을 감안해 신청사의 노력도를 평가한다’는 내용도 추가할 예정이다.

재보험사 등 제3자가 보험사의 신상품을 주도적으로 개발한 경우를 감안해 보험사의 신상품 개발 노력을 평가하겠다는 의미다. 또 배타적사용권 신청 시 위원회 외에도 타 보험사의 의견을 청취하는 양식을 추가해 평가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손해보험사 배타적사용권 획득 현황.
손해보험사 배타적사용권 획득 현황.

삼성화재에 쏠리는 시선


이 가운데 최근 삼성화재가 배타적사용권 획득에 실패한 담보에 대한 재심의에 나서면서 심의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재심의는 다음달 1일 열리는 신상품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재심의를 신청한 담보 4개는 △특정귀어지럼증 △특정눈염증 △특정안면마비 △조기 난소 기능부전 진단비 등이다. 이번 재심의의 쟁점은 질병코드를 세분화해 만든 상품이 배타적사용권 획득이 가능한 수준의 ‘신 위험률’로 볼 수 있느냐가 될 전망이다. 

당초 이 담보들이 심의에 통과하지 못했던 건 독창성과 유용성이 부족하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타사에서 이미 수술비 담보 등으로 보장하는 질병을 진단비로 단순 변경하는 상품개발 방식이라는 평가였다.

이전 심의에서 A사는 “질병코드를 세분화해 특정 위험단위로 만든 것”이라며 “산출방법도 보험사가 약 10여년간 사용 중인 위험률 산출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B사는 “단일 질병코드 세분화로 담보의 종류가 불필요하게 많아져 고객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봤다.

진단비 세분화에 대해 삼성화재는 “기존에 판매되지 않은 최초 진단비”라며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질병이며, 경증 치료를 통해 중증으로 악화를 방지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라며 재심의를 신청한 상황이다.

위원회 구성에도 관심이 모인다. 올해 위원회 구성에는 2개 손보사의 상품담당임원이 참석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삼성화재 출신이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삼성화재는 배타적사용권 획득 수를 KPI에 포함시킨다”라며 “자사 출신이 심의위원으로 앉은 데다 성과평가에도 영향을 미치다보니 재심의에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삼성화재는 총 8개 담보에 배타적사용권을 신청, ‘특정가자면역질환’ 및 ‘여성 특정암 림프부종’ 진단비 2종과 ‘암 진단후 생식세포 동결보존비’ 등 3가지 담보에 배타적사용권 3개월을 부여받았다.

위 담보와 ‘중증난치질환 산정특례 진단비’ 1개 담보를 제외한 4가지를 재평가 받겠다는 게 삼성화재의 의중이다. 중증난치질환 산정특례 진단비의 경우 이전에 교보생명이 비슷한 담보로 6개월의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했다는 점을 심의위원회가 지적, 이를 수용했다.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