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첩약 폭탄에 호화 병실…한방병원의 유혹
②심평원 위탁하니 보험금 지출만 5배↑
③기능 상실한 분심위…의결건수 고작 ‘1건’
④국토부 방관에 답보…개선 의지도 ‘상실’

2022년 12월 9일 17:18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동차보험에서 한방진료비 급증을 야기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첩약과 약침이 지목된다. 최근 5년간 진료비 현황을 살펴보면 첩약 진료비는 지난 2016년 1237억원에서 2614억원으로 2배 늘었고, 약침은 280억원에서 1245억원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브레이크 없는 ‘첩약·약침’


한방의료계의 과잉 진료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건 첩약 처방일수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자동차보험에서 지급한 첩약의 처방일수는 10일이 75.9%<표1 참조>로 압도적인 비중을 보인다. 1~9일까지는 5%를 넘지 않고, 10일 이상도 2.6% 정도다.

즉, 한방병원이 유독 교통사고 환자에게 처방한 첩약은 7할 이상이 열흘치에 몰려있다는 의미다. 첩약 처방이 증상이나 부상의 정도와 관계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흡한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기준은 한방병원의 열흘치 첩약 처방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첩약은 대상 질병이나 용량에 대한 기준 없이 ‘증상이나 질병 정도에 따라 1회 처방 시 10일, 1일 2첩 이내에 한해 산정한다’라고만 정하고 있다. 이는 최대 열흘까지는 어떤 증상에 처방해도 문제없다는 해석으로 사용된다. 

약침도 다르지 않다. 약침의 진료수가 기준에서는 ‘사용된 약제는 시술부위를 불문하고 1회당 2000원으로 산정한다(중략)’ 등 비용에 대한 기준은 있지만, 횟수에 대한 기준은 없다. 이 수가기준대로면 환자에게 1회던 100회던 약침 시술을 해도 심사기관이 과잉진료라는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첩약이나 약침에 대한 수가기준에는) 과잉 시술로부터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돼 있다. 게다가 시술별로 유효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최대치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횟수 규정도 없다”라며 “정해진 수가기준에 따라 심사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는 한방진료비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한 이유”라고 말했다.


소관부처 무관심에 방치된 수가


자동차보험의 진료수가를 정하는 소관부처는 국토교통부다. 첩약, 약침에 대한 진료수가 개정 요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한방진료비 적정성 심사를 맡긴 지난 2013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2022년 현재 진료수가 개정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국토부는 지난 2013년 1월 첩약 수가를 기존 4870원에서 6690원(20첩 기준 13만3800원)으로, 탕전료는 1회당 6700원에서 1첩당 670원(20첩 기준 1만3400원)으로 각각 37.4%, 100% 인상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첩약 가격인상에 따른 처방일수 기준을 현실화하기 위해 국토부 산하의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분쟁심의위원회(이하 분심위)’를 개최했다. 당시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표준처방기준(1회 10일 이내, 경상환자는 1회 5일 이내)을 정해 의결했지만, 한의계 반대로 최종 무산됐다.

이후 첩약, 약침 진료수가와 관련된 논의는 2020년 말과 2021년 초 두 번의 분심위 안건에 오르기 전까지 8년여간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아왔다. 이 기간 동안 국토부는 심평원에 한방진료비 심사를 맡기면서 사실상 진료비 급증을 방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평원에 한방진료비 심사를 위탁한 건 과잉진료 방지를 위함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진료수가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심평원은 수가 기준대로 심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14년 2722억원이던 한방진료비는 지난해 1조3066억원으로 4.8배 급증한 결과만 낳았다.


연구용역도 무쓸모…“국토부 적극성 결여”


국토부는 지난 2021년 10월 첩약, 약침 처방에 대한 진료수가 개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선행하기로 결정했다. 수행기관은 한의약진흥원이고, 소요기간은 6개월이었다.

당시 이 내용은 국토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합동 제도개선 방안에 포함됐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2023년 1월 1일까지 연구용역을 통해 한방 진료수가 제도개선을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했는데, 연구용역 최종보고회가 진행된 건 올해 7월이다. 용역보고서에는 1회 첩약일수를 10일에서 7일로 줄이고, 약침처방 횟수도 최대 13회로 기준을 도출해냈다.

국토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지난달 7일 자동차보험 한방진료수가 개선 관련 회의를 개최했다. 손해보험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한방병원협회, 심평원 등이 모인 자리였지만 당시에도 연구용역 결과에 대한 한의계 반발로 협의 자체가 무산됐다는 후문이다.

결국 한방 진료수가 제도개선 시행일까지는 한달이 채 남지 않았지만, 개선안조차 도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개선안이 나온다 해도 분심위에 안건을 상정한 뒤 심의·의결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행정예고 및 규제심의 등까지 끝내려면 내년 1월 시행도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는 한방 과잉진료를 억제하겠다는 말 뿐, 미온적인 대처만 지속하며 급증하는 한방진료비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적극적인 개선 의지가 있었다면 심평원에 한방진료 심사를 맡겼을 때부터 이어진 정책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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