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장수 CEO 부동산PF 개척
수익 창출 차별·위기관리 탁월

2023년 3월 27일 07: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코스피가 2400선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다. 작년만 해도 3000선을 넘어서며 전성기를 맞았던 국내 증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며 한발 후퇴했다. 이런 시기에 승리하기 위해선 축구 감독의 날카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자본 시장에서 득점 기회를 노리는 증권사의 전략을 축구 전술에 빗대 본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명으로 꼽히는 명장이다. 27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며 전성기를 되찾고, 당시 잉글랜드 리그의 부활을 이끄는데 앞장섰다.

그의 전술적인 역량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 영국 축구가 박스안 많은 숫자를 두면서 롱볼의 방식으로 플레이하던 시절 퍼거슨은 탁월한 선수 기용으로 역습이 날카로운 4-4-2 전술을 펼쳤다. 전술 뿐 아니라 퍼거슨은 특히 사람을 다루는 능력에 대해 정평이 나있다.

CEO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국내 증권업계에도 퍼거슨을 떠오르게 하는 대표가 있다. 13년간 메리츠증권을 이끈 최희문 대표이사 부회장이 그렇다. 지난 2010년 대표이사에 임명된 최희문 대표는 오는 2025년까지 팀을 이끌게 된다.

앞서 소개한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자면 차별화된 전략과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꼽을 수 있다. 개인이 팀을 얼마만큼 탈바꿈할 수 있는 지도 보여준다. 이익 극대화가 목표라는 측면에서 지난 시즌 우승자는 단연 메리츠증권이다. 그간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대형사들이 독차지해왔던 우승 카르텔이 깨진 순간이다.

최 대표의 취임 전만 해도 중위권에 머물던 메리츠증권은 어떻게 강팀 반열에 올랐을까. 종합금융업(종금업) 강점을 살려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영역에서 수익을 끌어올리고 조직을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브로커리지 부문에 힘을 보태기 보다 '실리축구'에 집중했다.

메리츠증권은 작년 증시 불황과 부동산PF 우려 등 업계 위기를 거슬러 유일하게 '1조 클럽'에 가입했다.

최 대표는 업계에서 선제적으로 부동산PF 사업을 시작해 주요 수익원으로 만들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영향으로 국내 주택·부동산 시장이 무너지고,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이 부동산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을 당시였다.

이외에도 종금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을 통해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건설사를 상대로 여신 공여를 하면서 높은 수익을 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최 부회장은 취임했던 2010년 당시 중소형 증권사에 머무르던 회사를 자기자본 기준 업계 6위권으로 키워냈다.

최 대표의 경영 키워드를 뽑으면 성과주의에 기반한 인재 등용을 꼽을 수 있다. 마치 퍼거슨 감독이 스콜스, 네빌, 긱스, 베컴 등 '퍼기의 아이들'을 육성하고 야프 스탐, 네마냐 비디치 등 플레이어 영입에도 특출났던 것처럼 말이다.

메리츠증권의 전술은 현재로선 성공적이다. 돈을 벌고 성과에 맞춰 나누니 인재도 따라왔다. 특히 부동산 PF 분야의 인재들이 메리츠증권에 모여들고 있다. 업계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제공하며 고급 인력을 유치하는 공격적인 인재 스카우트 전략에 나섰다. 이렇다 보니 작년 IB부문에서만 4558억원의 영업수익을 거두며 업계 1등을 차지했다.

동시에 수비 역량도 끌어올렸다. 메리츠증권은 부동산발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 연초부터 미리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부동산 PF 관련 대출 자산과 우발 부채를 축소함과 동시에 트레이딩·파생상품·자산관리 쪽으로도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다.

이같은 변화는 내부 조직에서부터 시작됐다. 최희문 체제에서 메리츠증권의 평가와 보상은 모두 합리성에 근거한다. 이러한 조직시스템을 신뢰한 전문인력들이 모여들고 구성원들이 직급, 직위, 소속과 관계없이 실용적인 소통을 진행한다. 이 점에선 '라커룸 헤어드라이기(선수들에게 불 같이 화를 내는 것)'라고 알려진 퍼거슨과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

앞으로 메리츠증권을 살펴볼 관전 포인트도 감독이다. 벌써부터 최희문 대표의 공백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그가 한 팀을 오랜 기간 이끌며 많은 것들을 바꿔왔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유일한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린 건 새로운 왕조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한금융신문 유정화 기자 uzhwa@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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