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병원이라도 보험계약자 보험금청구권 정당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개설 자체가 불법인 사무장병원이라 해도 민영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15일 의료법위반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사기·사기방조) 등을 위반해 유죄를 선고받은 민모씨와 이모씨 2명에 대한 검사의 원심 상고를 기각했다.

1심 재판에서 이들은 의료법, 사기 및 사기방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사기 및 사기방조) 등을 위반한 혐의를 받은 바 있다. 그 결과 민모씨와 이모씨는 각각 징역 2년과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이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며 건보공단과 32개 보험사에 청구한 보험금은 총 64억원에 달한다. 건보공단 요양급여비 약 33억원, 민영보험사 보험금 약 31억원 수준이다.

지난 1월 열린 2심 재판에서 서울고등법원은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급여비용 33억원에 대해서만 사기를 인정하고 실손보험 및 자동차보험진료수가 31억원은 사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사 상고로 사건은 대법원에 올랐고, 쟁점은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진료수가의 사기죄 성립 여부가 됐지만 결국 불인정된 것이다.

대법원은 실손의료비 청구와 관련된 사기죄에 대해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수익자만이 보험사에 대해 실손의료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의료기관은 보험수익자의 청구에 응해 진료사실증명 등을 발급, 단순히 보험금 청구 절차를 도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료기관이 의료법 규정에 위반해 개설됐다는 사정은 실손의료비 지급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며 “이 사실만으로 사기죄에 해당하는 기망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자동차보험수가에 대해서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이에 따른 진료가 이뤄졌다면 민영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설령 불법으로 개설된 병원이라도 면허를 갖춘 의료인이 진료했다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반대로 대법원은 민모씨와 이모씨가 편취한 건보공단의 요양급여비용(급여) 약 33억원에 대해 사기죄를 인정했다. 건보공단은 의료법에 의해 개설된 의료기관만을 요양기관으로 건강보험제도 내에 편입시키기 때문에 불법 개설된 의료기관에는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결정이다.

보험업계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사무장병원 설립을 부추기는 결과가 됐다고 이야기한다. 사무장병원이 사익추구를 위해 허위 진단서를 끊거나 과다 입원을 시키는 등 명백한 보험사기 정황이 있음에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다.

사무장병원에 현혹돼 필요치 않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선량한 계약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만약 사무장병원의 보험금 수급이 통으로 사기혐의가 적용됐다면 더 이상 개별 보험계약자를 대상으로 한 보험사기 수색에 나서지 않아도 됐다.

한 보험사 SIU 관계자는 “건보공단 요양급여를 환수당하더라도 민영보험사의 보험금만 편취하면 상관없다는 식의 사무장병원 개설이 지속될 것”이라며 “사무장병원으로 누수된 보험금은 다수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의료법에서는 비의료인이 고용의사의 의사면허를 대여 받아 고용의사 명의로 개설 및 운영하는 일명 사무장병원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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