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험 사각지대①] 근재보험

<편집자주> 보험 본연의 역할은 상호부조를 통한 안전망 구축이다. 특히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거대 재해에서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보상을 지급할 수 있는 장치는 보험뿐이다. 국가에서도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을 위해 법적으로 기업이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을 정해놓고 있지만, 산업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대한금융신문은 우리나라에서 보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각지대를 살펴본다.

2022년 2월 28일 15:36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 벌어진 HDC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는 건물 16개층(23~38층)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건설현장의 거대 재해다. 하청 노동자 6명이 사망했고 1명이 다쳤다. 사망 원인은 사고 직후 붕괴잔해에 깔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광주서 벌어진 학동 4구역 재개발 철거 현장 붕괴 참사에서는 철거 중인 건물이 지나가던 시내버스를 덮치며 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같은 해 평택 냉동창고 건설 중 발생한 화재에서는 건물 2층에 투입됐던 소방관 3명이 순직하는 참사가 빚어지기도 했다.

대형 참사로 인한 건설 근로자 피해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장섭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건설업에서 발생한 재해자와 사망자는 각각 2만6799명, 485명이다. 이는 전체 산업재해 재해자·사망자(10만8379명, 882명)의 24.7%, 55.0%에 달하는 수치다.

건설업의 사망자 숫자가 전체 산업재해의 절반에 달한다는 통계는 건설업 노동자가 처한 환경을 대변해준다. 직전년도 건설업 종사자의 사망자수 또한 428명일 정도로 사망자수는 매해 달라지지 않고 있다.

건설 중 사고로 인한 근로자 피해는 의무보험인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을 통해 1차적 구제가 가능하다. 다만 산재보험으로는 근로자 본인에 대한 충분한 보상도 부족하다. 제3자의 인명이나 재산 피해에 대해서도 기업이 무조건 보험에 가입해야 할 필요가 없다보니 피해보상마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가장 최근 발생한 광주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의무보험인 산업재해보험(산재보험) 외에는 별도의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만약 건설공사보험에 가입했다면 제3자에 대한 피해뿐만 아니라 영업상 손실이나 공사기간 지연 등에 따른 피해도 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근로자재해보험(이하 근재보험)의 가입도 없었다.

근재보험의 가입여부는 건설업 근로자에 대한 폭 넓은 피해구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건설사의 의무가입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표적 보험이다. 근재보험은 사업주의 과실로 인한 사고에서 산재보험을 초과하는 치료비의 비급여 부분과 위자료(민사 소송비용 포함), 각종 소송비용을 보상한다. 

무엇보다 근재보험의 의무화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건설현장 근로자에 대한 완전한 보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건설현장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가 발생할 경우 산재보험은 급여치료비와 70%의 휴업급여 등만 수령 가능하다. 만약 근재보험까지 가입했다면 비급여치료비와 함께 나머지 30%의 휴업급여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근재보험 가입률은 산재보험 대비 16.8% 수준에 그치는 상황이다.

법적으로 의무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 아니다보니 가입을 꺼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많은 건설 현장 사고 피해자 가족이 건설사와의 장기간 소송·합의를 통해 피해를 배상받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부 발주 공사의 경우 공사 규모 200억원 이상의 건설 공사에는 건설공사보험을 의무 가입해야한다. 하지만 민간 공사에는 제약이 없다. 심지어 근재보험은 최소한의 법적 강제장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건설공사 규모나 발주처에 따라 의무보험 가입 여부가 달라지다보니 건설 노동자의 피해구제에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건설사고 발생 시 손해배상을 기업의 배상능력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기업의 경영환경에 따라 손해배상은 천차만별”이라며 “산재보험으로는 피해구제가 미흡하다. 근재보험과 건설공사보험 의무 가입은 건설현장 내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전기, 통신, 소방 등 외주 근로자에게도 피해보상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6월에는 근재보험 의무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김교홍 의원을 통해 발의됐지만, 법안 심의가 지연되고 있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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