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험 사각지대②] 전기차 충전소

충전인프라 주유소만큼 늘린다는 정부
피해자 나와도 사업자 배상력에만 의존

<편집자주> 보험 본연의 역할은 상호부조를 통한 안전망 구축이다. 특히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거대 재해에서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보상을 지급할 수 있는 장치는 보험뿐이다. 국가에서도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을 위해 법적으로 기업이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을 정해놓고 있지만, 산업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대한금융신문은 우리나라에서 보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각지대를 살펴본다.

2022년 3월 3일 04:01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달 초 부산 동래구 소재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을 마치고 주차돼 있던 소형 화물 전기차에서 폭발과 함께 불이 났다. 화재는 50분 내로 진화됐지만 주변에 주차해둔 차량 4대와 충전소, 아파트 주차장 시설이 모두 불에 탔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기장군 소재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전기차 충전소에서 전기차와 충전기를 연결하는 커넥터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다. 이로 인해 충전소 커넥터와 차량 배터리가 파손됐다.

아파트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에서 불이 나면 누가 책임을 질까. 

차량 결함이라면 제조사의 책임이다. 하지만 충전 중 차량에서 발생한 화재의 경우 차주나 전기차 제조사간 분쟁으로 배상까지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충전기의 문제라면 시설을 소유·사용·관리하는 전기차 충전소가 배상 주체가 된다. 충전소가 영리행위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 동래구 충전소 사고가 대형 사고로 번졌다면 사업주의 배상능력에 따라 적절한 피해보상이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높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전기차 충전소 사고 시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책임질 보험 상품은 전무하다. 관계 법령인 친환경자동차법에서 전기차 충전소 운영 사업자의 보험 가입을 강제하지 않아서다.

만약 위 사례와 동일한 위치에 주유소나 LPG충전소가 있었다면 사업자가 가입한 보험을 통해 피해자 구제가 가능해진다. 

현재 주유소와 LPG충전소 사업자는 각각 재난안전법, 액화석유가스법에서 정하는 재난안전의무보험, 가스사고배상책임보험의 의무 가입 대상이다. 사람에 대해서는 각각 1억5000만원과 8000만원 한도, 물건에 대해서는 사고당 10억원과 3억원 한도에서 보상해준다. 수소충전소도 고압가스법에 따라 가스사고배상책임보험(대인 8000만원, 대물 3억원) 가입이 강제된다.

문제는 전기차 보급 및 충전인프라 확충을 담당하는 환경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그 어떤 곳도 피해자 보상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논의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국내에는 총 13만7000대의 전기차가 보급됐다. 전기차 충전소 사업자는 112개까지 늘어났고 급속충전기와 완속충전기는 각각 8000개소, 5만9000기가 설치돼 있다. 

전기차 충전소는 앞으로 급격하게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7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진행한 혁신성장 빅3 추진회의에서 정부는 급속 전기차 충전소를 오는 2025년까지 현재 주유소 수준인 1만2000기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완속충전기는 도보 5분거리 생활권 중심으로 50만기 이상 구축을 추진한다.

자세히는 고속도로 및 국도 휴게소, 주유소·LPG충전소, 아파트 주차장 등 생활편의시설에 밀접한 지역에 우선 설치된다. 화재 등 사고발생 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위치다. 

만약 주유소 내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의 화재가 주유소까지 번질 경우 쉽게 대형 사고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배상주체인 전기차 충전소 사업자는 사고가 나지 않길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 사업자의 배상력만으로는 재난사고 발생 시 원활한 피해구제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현재는 주유소나 LPG충전소에서 발생한 재난사고와 보상 형평성도 맞지 않는 상황”이라며 “충전소 사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충전사업자에 대한 배상책임보험 도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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