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023년 4월 20일 16:24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재무적투자자(FI)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상대로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며 주당 40만원대 풋옵션을 행사한 건 지난 2018년 일이다. 현재까지 신 회장이 사인한 계약서의 무효 여부를 두고 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후 5년여가 흐른 현재, 보험시장은 급변했다. 신한·KB금융지주는 각 계열사에 외국계 보험사를 병합시키며 ‘빅3’(삼성·한화·교보) 마지막 주자인 교보생명의 자리를 호시탐탐 넘보고 있다. 

올해부터는 새로운 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됐다. 기존 회계기준이랑 다른 점은 당장의 재무제표에서 장기적인 회사의 이익창출능력을 보여준다. 

IFRS17 도입으로 나타난 지난해 실적은 3대 생명보험사로 불린 교보생명의 위기를 알렸다. 보험사의 내재가치를 보여주는 보험계약마진(CSM)서 신한라이프에 ‘빅3’ 자리를 내준 거다. 

CSM은 이제껏 가늠하기 어려웠던 교보생명의 실질을 알 수 있는 첫 성적표가 됐다. 비상장사인 교보생명은 그간 보험사 내재가치 평가의 척도였던 신계약가치(VNB)와 보유계약가치(VIF) 등을 발표하지 않았다. 

총자산이익률(ROA)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보험사의 실질을 대변하지 못한다. 산업 특성상 자산에서 보험계약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다. 결국 보험사가 보유한 부채에서 예상할 수 있는 장래이익의 크기가 회사의 실질이 된다. 현행회계에서는 CSM이다.

교보생명의 실제 성적은 추후 실적 발표를 통해 밝혀진다. 하지만 현재 나온 CSM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향후 CSM이 널뛴다면 보유계약의 미래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회사라는 방증이 된다. 상장을 추진하는 보험사의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마진율 높은 상품을 얼마나 팔았는지 나타내는 보험계약효율(CSM/보험계약부채)이 신한라이프뿐만 아니라 NH농협생명보다 낮았다는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교보생명은 채무만 77조원에 달하는 상품을 팔고도, 마진이 남는 계약을 4조원 대(5.9%) 밖에 보유하지 못했다. 비슷한 부채규모인 한화생명(11.3%)의 반 토막이다.

지난 5년간 전속설계사만 고집하던 영업방식은 바뀐 회계제도상 높은 마진율을 가진 보장성보험 판매 위축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모자란 매출을 고금리 저축성보험으로 채우느라 부채의 질도 악화됐다. 이제 경쟁사에서는 지양하는 방식이다.

주주간 싸움에 골몰하다 시대의 변화를 방관했다. 덕분에 신성장동력 확보와 전통 보험사업 개선이라는 신 회장의 ‘양손잡이 경영’은 보험영업 측면에서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교보생명은 바뀐 회계제도가 준 첫 성적표를 엄중히 받아들일 때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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