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7주년 기획]

공정경쟁 막는 기울어진 구조에
도태된 규제 변화 필요성 대두

금산분리 규제 적용된 시점이 오래되다 보니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사가 디지털·빅블러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소비자의 기대에도 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금융규제혁신 회의에서 발표한 금산분리 규제 및 관련 애로사항에서 A은행의 사례를 들었다. A은행은 웹 페이지 및 애플리케이션의 UI·UX(이용자 인터페이스·사용자 경험) 개선을 위해 디자인 회사 인수를 희망했다.

하지만 은행법상 비금융 회사에 15% 이내의 지분투자만 가능하다는 규정 때문에 회사를 인수하지 못했다. 반면 빅테크나 핀테크는 비금융사 소유에 제한이 없다. 위의 예시에 대입해 보면 금융사는 디자인 회사와 사안마다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빅테크는 인수를 통해 보다 능동적인 대응이 가능한 것. 현재 금융과 산업자본 간 균형이 무너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금융사의 비금융사 소유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제1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정순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을 포함한 경제환경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는 상황에서 금융업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현행 금산분리는 효율성을 저해하고 규제와 시장의 충돌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일한 기술이 금융과 비금융에 혼재돼 사용되는 빅블러 시대에 금산분리를 금융업에 한정해 적용하는 체제는 금융과 비금융 간의 차별”이라며 “이종 산업의 융·복합을 통한 효율성 증대는 금산분리의 완화 근거로 타당하다”고 말했다.

리스크 전이와 이해상충 방지라는 금산분리의 대원칙은 유지하되 금융사가 자회사로 둘 수 있는 회사의 범위를 금융산업의 디지털화에 발맞춰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컨대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보험사의 자회사가 영위할 수 있는 사업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열거하는 포지티브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신용정보업, 손해사정업 등 이외에 명시되지 않은 사업을 영위하는 자회사 취득은 원천적으로 금지된 것.

지난 8월 개최된 금산분리의 법·경제적이슈와 정책방향 토론회에서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사가 자회사로 둘 수 있는 회사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소비자의 편익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회사라면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근거를 신설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만 위험관리 의무를 부여하는 등 은행의 건전성이 저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자본에 금융 진출을 인정해 준 인터넷전문은행법의 사례에 따라 소비자 편익 제고의 관점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재검토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난 2020년 국회는 인터넷전문은행법을 통과시키면서 은행법에 특례를 적용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융혁신을 촉진하고 금융소비자 편익을 증진하는 등의 목적을 두며, 이 경우 비금융사의 은행 주식 보유 한도를 기존 4%에서 34%까지 늘려주는 것이 골자다.

조영현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연구실장은 “글로벌적으로는 은행과 산업의 리스크 전이를 차단하는 은산분리 개념으로 적용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범위가 금산분리로 넓어지고, 소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현행 규제를 인터넷전문은행법의 사례에 따라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건전 경쟁, 금융혁신, 소비자 편익 등을 키워드로 인정된 인터넷은행처럼 취지가 합당하다면, 리스크 전이와 이해상충 방지라는 금산분리의 대목적을 지키는 선에서 소유 중심의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진혁 기자 pjh@kbanker.co.kr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