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7주년 기획]

미국·EU·일본, 금융회사 업무영역 유연화
세계 추세 따라야 vs 부작용 보완책부터

미국은 지난 1933년 금융회사의 겸업화와 대형화를 막는 ‘글래스 스티걸법’ 제정 이후 은산분리 원칙을 유지하고 있는데, 은행이 산업자본(사업회사 주식)을 일절 보유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지배 목적이 아닌 한 사업회사의 의결권 주식을 5%(비의결권주식의 경우 25%)까지 가질 수 있고, 지난 1999년 은행과 증권 등 비은행금융업의 겸업을 허용하는 GLB법이 도입되면서 벤처기업 주식을 100%까지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또 사업회사는 지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은행 주식을 25%까지 가질 수 있다. 25%를 초과해 보유하면 은행지주회사로 간주돼 검사·감독 규제 대상이 되고, 10% 이상의 은행 주식을 보유할 경우에는 그 취지를 감독 당국에 보고하고 승인받아야 한다.

미국은 금융회사의 부수업무에 대해서도 유연한 편이다. 부수업무 허용 여부를 감독권한을 가진 통화감독청(OCC)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여러 요소를 고려해 결정하는데, 이렇게 되면 금융업종과 비금융업종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에 있어 당국의 탄력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EU(유럽연합) 제2차 은행 지침을 따르는 유럽 국가 대부분은 은행의 사업회사 주식 100% 보유가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다만 사업회사에 대해 투자기업 자본금이나 의결권의 10% 이상 또는 기업경영상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적격 보유·투자)은 가질 수 없다.

사업회사의 은행 주식 100% 보유도 허용하는데, 감독 당국은 주요주주(은행 주식 10% 이상 보유·은행 경영에 현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 있는 주주)의 적격성을 심사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10% 초과 소유를 불허하는 권한을 갖는다.

독일은 EU 권고 지침을 따르며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브라질 등에선 금산분리 관련 규제를 두고 있지 않다.

엄격한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했던 일본도 빗장을 풀어가는 분위기다. 지난 2016년부터 은행법을 지속 개정하며 5%까지 제한을 뒀던 벤처기업 등에 대한 출자 규제 요건을 완화하는 등 은행 업무 범위를 디지털·물류·유통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또 은행과 보험사의 부수업무에 업무고도화 및 지역발전을 추가하고 고유업무와 기능적인 친근성과 리스크 동질성이 인정되는지, 고유업무 수행 중에 정당하게 발생한 잉여능력의 활용에 이바지하는지 등의 감독 지침을 기반으로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업권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디지털화·빅블러 흐름을 맞춰가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금산분리 규제 완화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문턱을 낮춤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각에서 금산분리 원칙이 낡았다며 세계적 금융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이를 완화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금산분리가 지켜지지 않고 금융사가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했을 때의 부작용도 경험한 바 있다”고 짚었다.

이 의원은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가 민생경제에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며 “금산분리 원칙이 완화될 경우 발생하는 부작용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금신분리 원칙에 있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할 할 정책적 방향을 논의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산분리 완화로 자칫 기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음을 우려하며 이를 보완하는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산분리 규제에 있어서 금융업의 분류를 통계청장이 고시하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른 ‘금융 및 보험업’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금산분리 규제의 취지와 목적에 맞는 금융업 분류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고 교수는 “현재 본인신용정보관리회사(마이데이터 회사)를 제외하고는 금융기술기업이 규정돼있지 않은데, 금융기술기업을 금융업종으로 보느냐, 비금융업종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IT기업이라 하더라도 금융에 관련된 업무를 하는 경우에는 금융업종으로 분류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산분리 완화가 금융소비자를 위한 혁신인가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과거사례에 비추어 금산분리 완화는 금융소비자들의 요구보다는 금융회사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책으로 보는게 맞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규제 완화 기조에 따라 발생한 국민은행 알뜰폰, 사모펀드 사태 등 소비자 피해들을 해결않고 금융사 편의성을 확대하는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펼친다면 개인정보 유출, 기업의 무분별한 이익 극대화 등 문제가 더욱 커질수 있다”며 “금융소비자 보호정책을 세분화해 추진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안소윤 기자 asy2626@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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