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부당거래 의혹에 강판
각사, 리스크 전문 소방수 투입

2024년 3월 25일 14: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각 증권사 선발투수(CEO)는 '고금리'라는 괴물타자를 상대해야 했다. 고금리는 '외국인 증시 이탈'이란 단타와 'PF'라는 장타를 휘두르곤 했다.

구단은 마운드에 올라설 투수 교체를 단행했다. 어떤 구원투수가 고금리의 맹타를 막아 낼지 살펴본다.


연이은 폭투는 선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20여년 전 메이저리그 최강 루키였던 투수 릭 앤키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전형적인 예다.

그는 2000년 애틀란타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1이닝에만 폭투 5개를 던진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기록이었다.

그때부터 앤키엘은 이유 없는 제구력 난조에 시달리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의 대표 사례가 됐다.

지난해 키움증권은 이런 연속 실투로 이슈 중심에 섰다.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던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그룹 회장직은 물론 증권 이사회 의장직을 사퇴했다.

황현순 키움증권 대표는 라덕연 사태 이후에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건까지 터지자 자진 사임을 결정했다.

키움증권 원년 멤버로 대표에 올라 연임에도 성공했으나, 리스크 발생에 따른 4000억원대 손실 사태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를 반영한 작년 키움증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4% 급감했다.

키움증권이 리스크 차단에 전사적 역량을 모으는 건 필연적인 현상이다. 회사는 엄주성 전략기획본부장 부사장에게 이 중책을 맡겼다.

엄 신임 대표는 취임 직후 리스크 관리 강화를 꾀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그는 감사운영본부에 감사기획팀을 새로 만들어 현업·리스크·감사 부문에서 '3중 통제 체계'를 조직했다. 자회사 리스크와 내부통제 등을 통합 관리하는 그룹위험관리팀도 신설했다.

또한 기존 전사 리스크관리 태스크포스(TF)를 '리테일비즈(Biz)분석팀'으로 승격시켰다. 엄 대표는 해당 팀이 리스크 관리를 '예술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엄 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리테일비즈분석팀이) 리스크를 실질적으로 덜면서도 서비스 제한이 되지 않게 주요 항목들을 세세하게 관리한다. 현재 (리스크) 유형을 찾아가면서 알고리즘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스크 관리를 도식적·기계적으로 접근하면 위험과 수익은 모순된다"며 "그걸 예술적으로 하면 둘 다 포용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2년 연속 업계 영업이익 1위를 차지한 메리츠증권 역시 실책 줄이기 숙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메리츠증권 수장이었던 최희문 대표(현 부회장)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나와 머리를 숙였다. 경영을 얄밉게 잘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2010년부터 4연임에 성공했던 그였다.

그러나 사모 전환사채(CB)·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을 둘러싼 불건전 영업행위와 이에 따른 당국 검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설상가상으로 이화그룹 계열 상장사 3곳의 거래 정지 전 주식을 매도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최 대표는 장원재 신임 대표에게 자리를 내준 뒤 일선에서 물러났다.

장 대표는 상품기획·자산운용 등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나 리스크 관리에도 정통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삼성증권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를 지낸 후, 2016년부터 메리츠화재 CRO 겸 위험관리책임자·메리츠금융지주 CRO 등을 역임했다.

장 대표 체제 메리츠증권은 기업금융(IB) 조직 3곳을 하나로 합쳤다. 본래 기업금융·부동산금융·PF 등으로 나뉘었던 각 본부를 통폐합해, 내부통제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두 대표의 리스크 통제력 입증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당국 수사는 잠재적 위기이자 도전이다.

'제구의 마술사' 그렉 매덕스의 말은 이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듯하다. "보통 투수들은 위기에서 세게 던지지만 나는 위기에서 더 정확하게 던지고자 한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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