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직원, 고객 돈 수억원 가로채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내부통제 ‘허술’
당국, 임원진에 대한 제재 수위 손 본다
잇단 사건·사고로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은행권에서 또다시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기업은행에서 수억원대의 고객 돈을 빼돌린 정황이 포착돼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다.
빈번한 금융사고에 현재 은행 내에서는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가 도모되고 있으나, 책임 관련 법적 기준 모호 등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이에 당국이 준비 중인 경영진 ‘책임지도맵’ 시행과 제도개선안 입법화 등 규율 마련에 관심이 쏠린다.
기업銀 수억원 횡령 또 발생
지난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 등 은행권에서 고객 돈을 횡령하는 금융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최근 6년간 은행에서 발생한 횡령 규모는 1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치로 지난해에만 확인된 액수와 건수는 각각 722억여원, 15건에 달한다. 기업은행에서의 횡령은 2017년부터 작년까지 10건이 발생했다.
기은은 최근 자체 점검 과정에서 서울 종로구 한 영업점 창구직원 A씨가 지난해 회삿돈을 빼돌린 것을 확인하고, 이를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현재 은행이 확인한 횡령액은 약 2억원이지만, 일부에서는 횡령액이 5억원에 육박하는 등 더 많은 액수를 빼돌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파악한 규모는 1억9000만원이다”며 “(5억원 규모라고 알려진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진행 중인 조사에 대해선 은행에 공유되고 있지 않아 구체적 내용은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고객이 해외로 송금하는 돈을 수차례에 걸쳐 본인 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은행으로부터 사건 내용을 보고 받고 지난 20일부터 본점을 대상으로 현장 검사에 나선 상태다.
금감원은 횡령 사고와 함께 기업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 작동 여부 등에 대해 약 1주일간 진상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기은은 앞서 지난해 11월 내부자 신고제도 미흡과 준법감시인 지원 인력 부족 등 내부통제 부실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은행 ‘내부통제 한계’…개선 나선 당국
지난해 은행권에서는 거액의 횡령 및 이상 외환거래 사태가 빚어지면서 사고 방지에 만전을 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금융업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영업이기 때문에 사고가 잦을 경우 금융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횡령 사고액 규모가 컸던 우리은행에서는 지난해 준법감시실을 내부통제기획팀, 법규준수모니터링팀, 영업조직모니터링팀, 본부조직모니터링팀으로 개편하는 등 내부통제 점검 지원을 강화했다.
또 신한은행은 내부통제 관리 체계 혁신을 추진하는 컨트롤타워와 준법경영부를 신설한 바 있다.
기업은행 역시 수탁부 내 수탁점검팀을 신설해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했다. 또 특별대책팀을 편성하는 등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은행권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금융사고가 꾸준히 발생하면서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재 금융사들은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내부통제체계를 구축·운영하고 있는데 현행법에선 내부통제와 관련해 ‘금융회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내부통제 마련의 주체를 회사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어떤 권한을 수행하는지,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어떠한 활동을 수행하는지 등에 대해 법적 근거가 모호한 실정인 것.
업계에서는 내부통제에 대한 강화책을 마련해도 개인의 일탈을 100% 막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고 대부분이 개인적 일탈에서 시작되는 게 많다”며 “조직개편이나 제도를 마련하는 등 노력을 해왔는데, 내부통제 시스템을 아무리 개선하고 보완을 해도 개인이 작정하고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것을 막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당국은 횡령 등 금융사고 발생에 대해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에 대한 제재 수위를 올린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내달 중 ‘책임지도 제도’를 시행할 것을 밝힌 상태다. 임원 별로 횡령·배임을 비롯한 각종 금융사고 발생 방지와 관련된 책임 범위, 업무를 사전에 만들어서 책무를 명확히 나눈다는 내용이다.
또 금융위는 중대 금융사고에 대한 대표이사의 책임을 묻는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도 올 1분기 발표할 계획에 있다.
이에 따라 불법행위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금융사의 내부통제 작동이 보다 실효성을 나타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다만 이에 대해 은행권에서는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게 현실적으로 합당한지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책임소재가 위에 있을수록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고 관심은 가질 수 있겠지만 말단에서 발생한 일들, 각 영업점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은행장 등이 직접적으로 챙기기가 사실상 어렵다”며 “직원들의 잘못에 대해 무조건 경영진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바라봤다.
대한금융신문 기획취재팀 김슬기 기자 seulgi114441@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