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0일 13:29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상업단지의 번화가엔 없는 게 없다. 이 단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증권사 건물이다. 여러 증권사의 출장소가 한데 모여 있는 건물이니만큼 거대하다. 금속성인 광택을 지니고 하늘 높이 예리하게 솟아 있는 걸 그 꼭대기까지 쳐다볼라치면 아뜩하면서 현기증이 난다.”
소설가 박완서의 단편 ‘낙토의 아이들’은 증권사를 이렇게 묘사한다. 소설이 1978년에 발표됐고 그 배경이 개발 시기의 강남인 걸 감안하면, 오래전부터 증권사는 가능성의 땅에서 성장을 추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50여년이 지난 오늘날 증권사의 핵심적 지평은 해외, 정확히는 ‘미국’이다.
증권사가 해외주식에 집중하는 까닭은 자명하다. 수익성이 확실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권사의 전체 수수료 수익은 12조9457억원이다. 이 중 수탁 수수료 수익(6조2658억원)이 투자은행(IB) 수수료 수익(3조7422억원)을 크게 앞선다.
더욱 주목할 점은 거래규모의 극명한 대조다. 지난해 국내주식 거래대금은 직전 연도 대비 140조원가량 감소한 반면 해외주식 거래대금은 직전 연도 규모보다 335조원 늘었다. 증권사들이 해외주식 서비스 고도화에 앞다퉈 열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외주식 사업 강화를 영리를 꾀하는 기업 본성으로만 해석하긴 어렵다. 이미 국내 투자자는 해외 증시 변동성에 만성화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전해지는 불확실성이 일상적인 투자 환경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국내 증시의 공동화 현상도 우려된다. 해외 증시에 쏠린 투자자 관심이 돌이킬 수 없이 굳어지면 우리 기업의 자금조달 환경은 영영 메마를지 모른다.
코스피 5000을 향한 새 정부의 의지는 증권사의 독창적인 시도에 발판이 되고 있다. 수수료를 내리거나 앱 기능 몇 개 더하는 차원을 넘어 국내 주식을 매혹적으로 느끼게 하는 킬러 콘텐츠가 나오면 좋겠다. IB 사업에선 쪼개기 상장 등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기업과 절연할 결단을 요청하고 싶다. 1%의 부자만이 아닌 99%의 개미를 열광케 하는 자산관리(WM) 서비스는 어떨까.
문제는 균형이다. 양적 성장을 도모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성장에 수반되는 가능성이 태평양 건너편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증권업계가 국내외 시장을 함께 키워 나가는 비즈니스 모델을 공고히 할 때 비로소 건강한 성장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현실로 만드는 건 증권업계의 상상력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