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시장의 단순한 보조 자산의 기능을 넘어서 글로벌 디지털 금융의 핵심적 지불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향후에도 활용 범위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5년 5월 기준 2550억달러를 기록하였다. 이와 더불어 미국이 지니어스법 제정을 통하여 관련 제도와 규제 수단을 마련함에 따라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신뢰성이 제고되고 글로벌 영향력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디지털 경제 시대에 원화의 활용도를 높이고,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인한 통화 주권 약화 위험을 완화하며, 원화 디지털 자산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대와 우려
스테이블코인은 법화나 자산과의 교환 비율을 고정한 디지털 결제 수단을 의미한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의 높은 가격 변동성과는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여 신뢰할 수 있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 적합한 디지털 자산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각광받는 것은 기존 결제 수단에 비해 다양한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결제와 정산은 법화를 통한 거래에 비해 거래비용과 처리시간이 짧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은 프로그래밍이 가능하기 때문에 스마트 계약을 통한 금융거래의 자동 청산·결제에도 널리 활용된다. 이에 따라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기관간 거래의 주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부 가상자산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의 기능이 점차 확대되어 리테일 거래의 지불 수단, 다양한 부문의 지급결제 및 국경간 거래의 수단 등으로 진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국제기구와 중앙은행 등은 스테이블코인의 지불 수단으로의 불완전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자산 가치저장 수단으로 무결성 제약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투자자 보호와 관련한 위험, 불법 금융에 활용 등의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BIS는 스테이블코인이 적정한 규제를 받지 않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경우 통화정책을 교란시킬 수 있고,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변동성에 따른 코인런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 따른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체계
스테이블코인의 시장 규모 확대와 전통적 금융 시스템과의 상호 연결성 증대에 따라, 각국은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한 규제 수단을 도입하였다.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핵심은 규제 대상 스테이블코인을 적정하게 정의하고, 발행자에 대한 엄격한 요건을 도입한다. 또 준비자산의 요건과 운영방식을 설정하고, 투명성 제고를 위한 발행자 및 준비자산의 공시를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지니어스법은 결제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엄격한 금융 안전장치를 도입하였다. 동 법은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또는 정산을 위해 발행되고 미리 정해진 고정된 금액으로 환매 가능한 디지털 자산”으로 정의하였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동 법의 적격기준을 만족시키는 발행자로 한정하였고, 발행자의 활동은 주로 결제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상환, 관련 준비금 관리,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보관 또는 보관 서비스 제공, 그리고 이러한 핵심 기능을 직접 지원하는 기타 활동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결제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이자지불을 금지하는 조항을 도입하고, 모든 명목 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엄격한 준비금 요건을 의무화하였다. 이는 발행된 모든 스테이블코인이 완전히 담보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스테이블코인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발행자는 상환 정책을 공개하고 월별로 준비금 구성 및 평가에 대한 상세 정보를 공개하며 발행 기관의 CEO와 CFO는 이러한 준비금 보고서의 정확성을 인증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체계의 마련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안정성과 유동성을 높여서 지불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의 신뢰성을 높이는 효과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K-스테이블코인 도입시 고려 사항
국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도입을 찬성하는 쪽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금융질서에 근본적인 재편을 가져올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비용 절감, 거래 속도 향상, 국경 간 송금 효율성 증대 등 혁신적 이점을 제공하며 기존 금융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해소할 기회를 창출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도입이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저하시키고, 스테이블코인의 급격한 증가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위험을 전이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쪽도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순기능을 발휘하고 건전한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기반과 더불어 적정한 규제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일반 가상자산과 달리 발행인이 가치안정성과 환급가능성을 약속하고, 준거통화로 표시되는 금융자산을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며, 발행 및 환급 등의 과정에서 전통적 금융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이에 따라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검토에 있어 금융시장과 통화가치의 안정성, 외환시장, 지급결제 등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또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의, 발행자 요건, 준비자산의 구성 및 투명성에 대한 요건, 사용자 보호 및 규제체계를 포함한 광범위하고 정교한 근거 법률과 규제 프레임워크를 마련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의 지불 안정성과 가치저장 기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실물 자산과 동등한 가치로 교환을 보장하기 위한 준비자산 요건이 적정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준비자산의 요건 설정에 있어 국내 금융시장에 투자상품이 적절히 마련되어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단기 국고채가 발행되지 않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시 준비자산 요건을 마련하는데 제약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하다.
디지털 금융 발전에 있어 K-스테이블코인의 역할
현재까지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주로 기관간 디지털 자산시장의 결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히 가상자산 시장의 구성 요소를 넘어 전통 금융 시스템과 디지털 자산을 연결하는 교두보로서 확장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신뢰에 기반하여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성을 높이는 기능의 진화가 필요하다.
디지털 자산 시장은 비트코인과 같이 실물경제와의 연계성이 거의 없는 암호자산 거래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또한 실물경제 자산(Real World Asset: RWA) 토큰화의 경우에도 시장성이 낮은 자산을 위주로 실험적인 상품 도입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전통적인 금융자산을 토크화하고 스테이블코인을 토큰 결제와 연계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전통자산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투자자 기반을 확대하는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디지털금융의 게임체인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성 확장의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디지털 자산과 전통 금융시장과의 연계성을 확장하고 투자자의 효용과 저변을 확대하는 기능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의 우선적인 목적으로 설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