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원의 쉽게 푸는 자본시장 44
최근 자본시장에서 발생한 몇몇 분쟁 사례와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들을 살펴보면, 복잡하거나 위험도가 높은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금융투자회사의 설명의무와 투자자 보호의무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상품의 구조가 다층적이거나 투자 불확실성이 큰 경우에는, 투자자의 이해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설명이 금융투자업자에게 요구된다는 법원의 확고한 입장을 엿볼 수 있다.
다층적 파생상품과 '전문투자자'에 대한 보호
첫 번째 사례는 KB증권이 판매한 특정금전신탁 상품 'KB able DLS'와 관련하여 중소기업 K사와 F사가 제기한 부당이득 반환소송(서울남부지법 2022가합110651)이다. 이 상품은 DLS를 통해 다른 펀드와 채권을 연결하는 다층적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해외 무역금융대출채권에 간접 투자되는 형태였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대출 회수가 지연·부실화되면서 투자금 손실이 발생하자, 투자자들은 KB증권이 상품의 복잡한 구조와 원금 전액 손실 가능성 등 핵심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은 KB증권이 투자자들에게 보험금 지급 요건이나 면책 사유 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고, 상품 설명서에 원금이 보장되는 것처럼 오인할 수 있는 표현을 기재하여 투자자들이 위험을 제대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하였다. 금융투자업자 스스로도 위험 인식을 오인하였을 정도이니, 투자자의 오인 가능성은 더욱 컸다고 본 것이다.
특히 이 판결에서 주목할 부분은 원고 중 코스닥 상장법인인 K사가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에 해당하였다는 사실이다. 자본시장법은 일반투자자 보호를 강화하지만, 법원은 이 사건에서 전문투자자인 원고들의 주의의무 위반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KB증권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이는 법인 투자자로서 일정한 금융 지식과 자료 접근성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복잡한 금융투자상품을 발행·설계하는 금융투자업자와 동일한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에는 투자 불확실성이 높은 상품에 대해 금융투자회사의 설명의무와 투자자 보호의무가 면제될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즉, 자기책임의 원칙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금융투자업자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하여 불완전 판매를 하였다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판결이었다.
해외 고위험 펀드 상품 설계와 운용 과정에 대한 책임
이러한 금융투자업자의 엄중한 책임은 비단 판매 과정뿐만 아니라 상품의 설계 및 발행 과정에까지 미친다. 다음으로 살펴볼 사례는 4800억 원대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독일 헤리티지 펀드와 관련하여, 서울남부지방법원이 현대차증권이 JB자산운용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JB자산운용의 배상 책임을 90%까지 인정한 판결이다.
이 펀드는 독일 내 건물을 매입, 리모델링하는 사업에 브릿지론 형태로 투자하는 고위험 해외 부동산 투자 상품이었으며, 현지 시행사의 파산으로 환매가 중단되었다. 법원은 JB자산운용이 상품제안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소홀이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시행사의 신용 한도가 극히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안서에는 재무건전성이 우수하다고 기재되었고, 실제 수수료 역시 투자자들이 인지할 수 없는 '이면 수수료'를 포함하여 훨씬 높았음이 드러났다.
법원은 상품제안서가 증권사의 위탁 판매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이 되는 문서임을 강조하며, JB자산운용이 기존 제안서를 받아 검토를 소홀히 한 채 교부했다고 보았다. 투자 원리금 상환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을 고려하여, 자산운용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이례적으로 90%라는 높은 비율로 산정하였다.
판결의 시사점: 발행-판매 전체 과정에서의 투자자 보호
이 두 판결은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이나 해외 부동산 투자와 같이 투자 불확실성이 높은 금융투자상품에 대해, 금융투자업자가 설계와 판매 단계 전반에서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를 부담해야 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핵심은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이다. 전문투자자라 할지라도 상품을 발행하고 운용하는 금융투자업자와 동일한 수준의 정보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투자 위험을 정확히 인지하고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금융투자상품의 발행·판매에 관여하는 모든 회사는 투자자가 위험을 정확히 인지하고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설명의무를 엄수하고 투자자 보호의무를 인정해야 한다. 이는 자본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고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전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