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품종에 특화한 ‘여포와인농장’
술맛 위해 수확시기·품종별 블렌딩하며 양조

<편집자주> 해를 거듭할수록 영동 와인의 맛과 향이 깊어지고 있다. 20년의 짧은 역사지만,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충북 영동군이 와인과 연결된 것은 2005년. 당시 영동군은 국내 유일의 포도·와인 산업특구로 지정됐다.

내세울 만큼 역사가 쌓이지는 않았지만, 영동 와인은 최근 발전의 징표를 여러 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국내외 주류품평회에서의 수상과 의미 있는 매출을 기록하는 와이너리 숫자의 증가가 그 증거다.

또한 10여 개의 양조장은 각자의 특징을 브랜드 이미지로 만들면서 고정 고객층을 늘려가고 있다. 국산 품종의 한계와 짧은 역사라는 핸디캡을 극복한 결과다. 오늘은 영동 와인의 역사를 같이 써오면서 두 곳의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들게 된 여인성 대표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여 대표는 2007년 ‘여포와인농장’을 설립, 부인 김민제 씨와 함께 와인을 만들어왔으며, 지난해부터는 영동군의 신활력플러스 사업으로 시작한 ‘YD영동와인’의 초대 대표이사를 맡게 된 농업인이자 와인 메이커다. 두 곳의 와이너리에서 서로 다른 와인을 만들고 있는 영동 와인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

▲ 여인성 김민제 대표 부부는 지난 2007년, 농가형 와이너리 면허를 개설하고 2010년부터 상업양조를 하고 있다. 대표 부부는 포도원을 실험실처럼 운영하며 다양한 품종을 재배했다. 그리고 결론으로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를 채택하고 와인을 빚고 있다. 사진은 이 품종을 들고 부부가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다.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이하 알렉산드리아)’라는 청포도 품종이 있다. 요즘 생산량이 많아져 인기가 한풀 꺾였지만 얼마 전까진 비싼 가격에 팔리던 ‘샤인 머스캣’의 할머니뻘 되는 포도다. 북아프리카가 원산지이며 ‘청포도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향기가 뛰어난 품종이다. 산미가 부족하고 재배하기가 까다로워 농가형 와이너리에서 크게 주목하진 않았지만, 여포와인농장(대표 김민제)의 여인성 메이커는 이 품종에 천착했다. 한국와인의 가능성을 찾는 오랜 여정 끝 결정이다.

“포도 농사를 30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최근 갖게 된 생각은 와인 양조 기술만큼 원료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유럽의 노블 품종만이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 메이커의 속뜻은 그렇지 않다. 이 땅의 떼루아와 기후 속에서 잘 자라는 포도를 재배해서 술을 빚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산 와인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여 메이커는 그의 포도원과 양조장을 실험실처럼 운영해왔다. 한가지 포도를 심어서 술을 빚되 수확시기를 달리해 술맛을 비교했다. 해당 품종이 낼 수 있는 최선의 맛을 찾기 위해 그 술을 수없이 블렌딩하기도 했다. 또한 유럽의 노블 품종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카베르네 소비뇽 등 여러 품종을 심어 재배 실험을 매해 펼쳤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여 메이커는 품종에 따라 최적의 ‘떼루아’가 있다는 것을 농사 지을 때마다 실감해야 했다.

여름 장마를 견뎌야 하는 이 땅은 서양의 노블 품종이 살아남기 힘든 곳이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지만, 얼마 못 가서 여물지 않고, 물러지는 포도를 볼 때마다 그는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블 품종 실험을 끝냈다. 도전 정신만으로 이 땅의 떼루아가 보듬지 못하는 품종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는 청포도의 여왕이다. 풍부한 향기 덕분에 얻은 별명이다. 여포와인농장은 이 품종을 중심에 두고 화이트와인 생산에 집중할 계획이다. 사진은 ‘여포의 꿈 화이트’ 제품 사진이다.
▲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는 청포도의 여왕이다. 풍부한 향기 덕분에 얻은 별명이다. 여포와인농장은 이 품종을 중심에 두고 화이트와인 생산에 집중할 계획이다. 사진은 ‘여포의 꿈 화이트’ 제품 사진이다.

여 메이커는 오랜 임상 실험을 토대로 앞서 말한 알렉산드리아 품종에 주목했다. 그리고 여포와인농장의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주력 품종으로 삼았다. 와인의 이름은 그의 별명을 딴 ‘여포의 꿈 화이트’로 정했다. 이 와인은 우리술품평회에서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았고, 지난 2023년에는 이탈리아 주류품평회 ‘치타 델 비노’의 골드를 수상했다.

그는 수확시기를 달리해 양조하는 방법을 이 포도에도 적용했다. 일찍 수확한 포도는 산미를 지녔으므로 청량한 맛을 만들고, 완숙한 포도는 풍부한 알렉산드리아의 향을 지닌 화이트 와인이 된다. 현재는 각각 빚은 원주를 블렌딩해서 상품을 만들지만, 향후 여 메이커는 각각의 포도주를 상품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수확시기를 한참 지난 포도로는 디저트 와인처럼 귀한 단맛을 지닌 와인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기후 변화’가 있다. 여름 장마가 짧아지고 가을 장마가 길어지는 현상을 읽은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수확시기(늦여름) 강수량이 예전보다 적다는 점에 주목했다. 유럽의 알렉산드리아 와인 산지와 비슷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새로 구한 포도원 1,700평에도 알렉산드리아를 주로 심었다. 그렇다고 재배하는 포도가 모두 이 품종인 것은 아니다. 청수와 청향 등의 청포도 3~4종과 슈트벤, 버팔로, 아그네스 등의 품종 등 모두 10여 가지의 포도를 심었다.

현재 여포와인농장에선 4가지 와인을 만들고 있다. 앞서 말한 여포의 꿈 화이트 외에 ‘여포의 꿈 레드 스위트·드라이’와 김민제 대표의 별칭인 ‘초선’을 붙인 ‘초선의 꿈 로제와인’이다. 각 제품은 모두 품종을 달리해서 양조하고 있다. 같은 레드 와인도 품종에 차이가 있다. 품종 특성을 최대한 와인에 담으려는 메이커의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여포의 꿈 레드 스위트는 캠벨 얼리와 산머루, 레드 드라이는 여기에 MBA를 보탰다. 스위트는 산도가 많은 캠벨 얼리와 산머루만을 사용해도 단맛 덕분에 발란스가 유지되지만, 드라이는 자칫 산미가 도드라질 수 있어 MBA를 넣어 균형을 잡아준 것이다. 초선의 꿈은 로제와인을 만들기 위해 적포도와 청포도를 절반씩 사용했다. 적포도는 캠벨 얼리, 청포도는 청수와 알렉산드리아, 샤인머스캣을 섞었다. 청포도 품종들이 각기 지닌 향미를 로제 와인에 담고자 함이다.

와인의 브랜드에서 알 수 있듯 여포와인농장는 ‘꿈’에서 시작됐다. 여전히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와이너리다. 2010년, 여 메이커가 벤처농업대학을 다닐 때 강의 중에 한 교수가 말한 “꿈은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면 이뤄지는 기적의 단어”라는 문장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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