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이래 중양절, 국화로 만든 술과 차 즐겨
그윽한 국화향 담은 막걸리·약주·소주 등 나와 있어

▲ 국화의 계절이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민족은 국화를 완상해왔으며, 술과 차로 만들거나 화전을 부쳐 안주로 먹어왔다. 다음은 국화를 부재료로 사용해서 만든 술이다. 왼쪽부터 초이리 국화 10, 초이 국화 16, 회곡안동국화막걸리, 안동국화주 22, 안동국화주 32, 안동국화주 42, 겨울아이 동국이 8도, 겨울아이 동국이 13도, 자자헌주, 술아국화주다.
▲ 국화의 계절이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민족은 국화를 완상해왔으며, 술과 차로 만들거나 화전을 부쳐 안주로 먹어왔다. 다음은 국화를 부재료로 사용해서 만든 술이다. 왼쪽부터 초이리 국화 10, 초이 국화 16, 회곡안동국화막걸리, 안동국화주 22, 안동국화주 32, 안동국화주 42, 겨울아이 동국이 8도, 겨울아이 동국이 13도, 자자헌주, 술아국화주다.

봄이 진달래 화전 부쳐 두견주(진달래술)와 곁들이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국화꽃 고명 올린 화전과 국화주가 제철인 계절이다. 진달래로 봄맞이하는 음력 3월 3일은 ‘삼짇날’이라 부르며, 국화가 가을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음력 9월 9일은 ‘중양(重陽)절’이라고 한다. 올해는 지난달 26일이었다. 이때 먹는 음식을 절기식이라 부른다. 화전이나 두견주, 그리고 국화주와 국화전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삼짇날과 중양절은 봄과 가을의 계절적 변화를 수용하는 행사로써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중요한 날로 여겨왔다. 절기에 맞춰 음식과 술을 준비하고 일종의 축제처럼 작은 연회를 열었던 것만 보더라도 이 계절을 각별하게 대한 것을 알 수 있다. 공식적인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을 수 있다. 다음은 《삼국유사》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신라 경덕왕 때의 일이다. 재위 24년(765년) 3월 3일 경주의 귀정문 누각에서 신하들과 함께 있던 경덕왕이 허름한 가사를 입고 있는 한 승려를 보고 어디서 오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이에 충담이라는 승려는 “해마다 중삼일(3월 3일)과 중구일(9월 9일)에는 남산 삼화령의 미륵 세존에게 차를 올린다”며 차 공양 사연을 왕에게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경덕왕은 자신도 차를 마실 수 있겠냐고 청했고, 충담은 직접 차를 다려 바쳤다.

이와 함께 경주 안압지의 임해전이나 월상루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중구(重九)에 모여서 시와 노래를 즐겼다는 내용도 있다. 이때 국화주를 마셨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중양절이 중요한 절기가 된 까닭은 중국 후한 시절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액운을 파하기 위해 이날 붉은 주머니에 산수유 열매를 담아서 팔뚝에 걸고, 집을 피해 높은 산에 올라서 국화주를 마신다는 내용이 고사의 핵심이다. 이후 중양절이 되면 산에 오르는 ‘등고(登高)’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봄철 꽃놀이에 나서는 답청(踏靑)의 가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등고와 중양절 풍속은 조선 후기 각종 《세시기》에도 등장한다. 《열양세시기》(김매순 저)에는 “단풍과 국화의 계절에 남녀가 놀고 즐기는 것이 봄에 꽃과 버들을 즐기는 것과 같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동국세시기》(홍석모 저)에는 “한양 풍속에 남북의 산에 올라서 음식을 먹고 즐긴다”고 등고의 풍습을 적고 있다. 이때 주로 오르는 산은 지금도 등산객이 많이 찾는 남한산과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이다.

그런데 등고에 나선 사람들이 단풍만 눈에 담은 것은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 가을꽃의 대명사인 국화로 술과 차를 만들고, 화전을 부쳐 같이 즐겼던 것이다. 그 덕분에 조선시대, 궁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술을 올리거나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축하주로 국화주가 쓰였다고 한다. 또한 민간에선 국화주를 무병장수의 상징으로 여겨 귀하게 마셨다고 전해진다.

국화주와 국화전

조선시대 고조리서 등에 자주 등장하는 중국의 백과사전 중에 《거가필용》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다음처럼 국화주를 담는다고 적고 있다.

“9월 감국이 흐드러지면 향이 좋고 맛이 단 노란 꽃잎을 따서 햇볕에 말려 청주 한 말에 국화꽃 두 냥을 명주 주머니에 넣어 건 다음 항아리를 밀봉한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후 주머니를 빼서 술을 마시면 된다.” 

이처럼 국화꽃을 넣은 주머니를 항아리에 매달아서 꽃 향을 담은 사례도 있고, 술덧 안에 꽃을 넣어 술을 빚는 때도 있다. 또한 국화꽃으로 차를 내려 물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방법으로 꽃을 다룬 것은 국화꽃의 향기를 적당하게 담고자 함이다. 자칫 과하면 술에 쓴맛이 생기기 때문이다.

국화주와 페어링했던 국화전에 관한 기록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이규경 저)에 나온다. 늦가을 감국을 채취하여 꽃술과 꽃받침을 제거한 뒤 물을 뿌려 적시고 쌀가루를 묻혀 전을 부쳤다는 것이다. 허균은 당시 이런 풍속과 관련, 《도문대작》에서 봄에는 두견화전(진달래전)과 이화전(배꽃전), 여름에는 장미전, 가을에는 국화전을 먹었다고 소개했다. 

국화주 석 잔

조선시대 선비들은 중양절,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신 기록을 주로 남겼다. 그중 조선 성조 대의 문인이자 정치인인 김종직만큼 로맨틱한 시는 없을 듯하다. 백승종 작가의 《조선, 아내열전》에 따르면, 김종직은 아내를 ‘진짜 훌륭한 선비’라고 칭찬한 인물이다. 김종직은 중양절을 기록한 시에서 국화주 석 잔을 거푸 건네준 부인을 ‘참으로 단정한 선비(眞佳士)’라고 표현했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해 인수대비 한 씨의 생신날, 그는 몸이 아파서 집에 머물렀다. 중양절이었지만, 궁에 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부인이 국화주를 구해와 석 잔을 권했다. 흉년이 들어 술이 귀한데도 향기 좋은 국화주를 맛보여준 아내를 상찬한 것이다.

김종직은 이 술을 맛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고 적고 있다. 백승종 작가는 이 모습에서 둘의 관계를 도반이라고 분석했다. 유교 이념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닐까 싶다. 부러우신가. 그렇다면 좋은 국화주를 구해 김종직의 마음이 되어 보면 어떨까. 국화꽃 향이 분위기를 더욱 띄워줄 것이다.

고려시대의 문장가인 이규보도 국화주에 관한 시를 남겼다. 그중 하나가 김종직처럼 중구일에 병이나 산에 오르지 못하고, 술도 마시지 못했다는 내용의 시다. 이 시에서 이규보도 아내가 건네준 술에 기뻐하며 “어찌 높은데 올라 흠뻑 취해야만 하나”라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를 읽고 있자니 단풍철이 되면, 국화주 한 병 챙겨서 산을 찾아야 할 듯하다. 그 목적이 액땜에 있지 않아도 말이다. 때마침 좋은 국화주가 시중에 여럿 출시돼 있다. 다음은 인터넷쇼핑몰과 우리술보틀숍 등에서 구할 수 있는 국화주들이다.

경기 여주 술아원의 ‘술아국화주‘
경기 여주 술아원의 ‘술아국화주‘

여주 술아원 ‘술아국화주’

과하주는 젊은 MZ세대들의 입맛에 맞는 술이지만, 역사 속에 묻혀 있어서 소비자들은 잊고 있던 술이다. 그래서 술아원(대표 강진희)은 과하주를 되살리기로 하고 2014년 ‘술아과하주’를 출시했다.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계절에 맞춰 4종의 술을 기획했다. 봄은 매화, 여름은 연꽃, 가을은 국화 그리고 겨울은 순곡 과하주다. 선택의 기회를 늘려서 최대한 대중적 접근성을 높인 것이다.

강진희 대표는 술아과하주를 누룩으로 발효한 술덧에 주정을 넣어 발효를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흔히 말하는 ‘주정강화와인’과 같은 방법이다. 발효 기간은 15일이다. 발효가 끝나면 섭씨 2℃ 정도의 저온에서 180일 이상 숙성한다. 증류주와 발효주의 완벽한 밸런스를 위해 긴 숙성 기간을 선택한 것이다.

술아국화주의 향미적 특징은 카라멜 향과 매실 향이 은은한 가운데 묵직하게 국화 향이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처럼 짙은 국화 향을 얻기 위해 강 대표는 저온 숙성 중에 국화꽃을 침출한다. 그래야 찹쌀의 풍미와 결합해서 술아국화주만의 술맛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술은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의 온도에서 와인잔으로 마실 것을 추천한다. 안주는 샐러드와 국물요리, 그리고 쿠키와 다크초콜렛 등 핑거푸드와도 잘 어울린다.

경북 안동 회곡양조장의 ’회곡안동국화막걸리’와 ’안동국화주’ 시리즈
경북 안동 회곡양조장의 ’회곡안동국화막걸리’와 ’안동국화주’ 시리즈

회곡양조장 ‘안동국화주와 막걸리’

안동에 있는 회곡양조장(대표 권용복)은 123년의 역사를 지녔다. 4대에 걸쳐 양조업을 하고 있는 이 양조장의 출발은 국화막걸리라고 말할 수 있다. 권용복 대표의 할아버지인 권기환 선생의 일기집인 ‘우봉시고집’에 다음의 글이 남아 있다. 

“가을의 정취를 담아 빚어 음력 9월에 마신 우리 집 감국탁주가 가향(佳香)의 으뜸이다.”

즉 1900년대에 이미 감국으로 막걸리를 빚어 마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권용복 대표는 가문의 술인 ‘감국탁주’를 되살리고 싶었다. 막걸리는 유통 기술 등을 고려해 뒤로 미루고 먼저 일반증류주인 ‘안동 국화주’를 선보였다. 그리고 올해 ‘회곡안동국화막걸리’라는 이름으로 감국탁주를 되살렸다.

안동국화주는 누룩과 입국을 혼합해서 당화 발효했으며 이단 단금 방식으로 술덧을 만들었다. 발효 기간은 대략 보름 정도다. 이렇게 발효된 술덧은 감압 증류한 뒤 1년 이상 스테인리스 숙성조에서 숙성돼 병입된다. 

안동국화주는 소비자가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알코올 도수를 22%, 32%, 42% 세 종류로 만들었다. 국화꽃 향과 맛을 은은하게 맛볼 수 있는 술이라고 권 대표는 말한다. 같이 곁들이기 좋은 안주는 견과류와 한우, 삼겹살 등이다. 

이와 함께 올해 발표한 회곡안동국화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12도의 묵직한 막걸리다. 누룩과 입국을 같이 사용해서 발효하는데, 총 18일이 걸린다. 두 번의 덧술을 하는 삼양주 방식이며 발효가 끝난 술은 스테인리스 숙성조에서 3일간 추가 숙성한다. 이 술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막걸리여서 작은 잔에 따라 조금씩 음용하는 것이 좋고 생선요리와 육류, 파전과 잘 어울린다고 권 대표는 설명한다. 

대전 석이원주조의 ‘자자헌주’
대전 석이원주조의 ‘자자헌주’

대전 석이원주조 ‘자자헌주’

깔끔한 술맛은 선비를 닮았다. 알코올 도수 17%의 약주다. 자연의 향기와 맛을 담기 위해 석이원주조(대표 이상권)에서 2019년 발표한 술이다. 약초에 밝은 이상권 대표는 자연에서 얻은 국화로 그윽한 술맛을 지닌 약주를 기획했다. 국화 중에서도 임금님에게 진상했던 ‘어자국’을 직접 재배해서 술에 넣었다. 

전통 누룩을 이용해 술을 빚으며 두 번의 덧술을 한 삼양주 방식으로 양조했다. 발효 기간은 30일. 발효가 끝난 술은 저온 냉장고에서 옹기에 담아 100일 숙성한다. 저온에서 오래 숙성돼 알코올 도수가 높음에도 부드러운 술맛을 준다. 숙성의 미덕인 셈이다.

술맛의 다양성을 위해 이 대표는 어자국과 함께 솔잎을 사용했다. 이에 따라 은은한 솔잎 향과 국화의 쌉쌀함이 잘 어우러진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특히 국화 향을 돋우기 위해 저온 숙성 과정에 한 번 더 국화를 넣어 준다. 이렇게 만든 자자헌주는 차게 해서 작은 술잔에 마시는 것이 좋다. 온도가 차가우면 알코올 도수를 덜 느끼게 되므로 국화 향 중심의 깔끔한 술맛을 볼 수 있다. 곁들일 음식은 스테이크와 같은 구운 육류와 불고기전골, 매운 볶음류이며 생선회하고도 잘 어울린다. 

경기 양평맑은술도가의 ’겨울아이 동국이 8도‘와 ’겨울아이 동국이 13도’
경기 양평맑은술도가의 ’겨울아이 동국이 8도‘와 ’겨울아이 동국이 13도’

양평맑은술도가 ‘겨울아이 동국이’

양평으로 귀촌해 술도가를 운영하는 박수진 대표는 양조장의 첫 제품으로 ‘겨울아이 동국이’를 출시했다. 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양조학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인 2021년의 일이다. 당시 박 대표는 직접 농사지은 국화로 친환경 양평의 이미지를 술에 넣으려고 국화를 선택했다. 타켓층은 젊은 MZ세대와 외국인들이다. 그래서 질감도 농후한 것을 피하고 중간 정도의 바디감을 내는 술을 만들었다. 

겨울아이 동국이는 두 번의 덧술을 하는 삼양주이며 당화발효제는 쌀누룩과 밀누룩, 개량누룩을 혼합해서 사용한다. 발효는 보름 동안 하며 숙성은 스테인리스 숙성조에서 60일 동안 한다. 고급스러운 국화 향을 내기 위해 숙성 기간을 길게 잡은 것이다. 

이 술의 향미적 특징은 국화 이외에도 포도 향과 단 향이 난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이 술을 뚜껑을 개봉한 후 5분이 지난 다음 마실 것을 권한다. 이렇게 마시면 첫 잔보다는 둘째 잔이 더 그윽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온도가 올라갈 때마다 좀 더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추천 안주는 알코올 도수 8% 술은 생선회나 문어숙회이며, 13% 술은 스테이크류의 구운 육류가 잘 어울린다. 한식하고 즐기고 싶다면 기름 진 전이 좋고, 면류와 마신다면 파스타를 추천한다.

전북 익산 초이리브루어리의 ’초이리 국화 10‘과 ‘초이 국화 16’
전북 익산 초이리브루어리의 ’초이리 국화 10‘과 ‘초이 국화 16’

초이 국화 16과 초이리 국화 10

전북 익산의 신생양조장 초이리브루어리(대표 최상은)의 야심작이다. 익산시의 시화인 국화를 넣어서 익산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전통 누룩을 넣어서 이양주 방식으로 빚는데, 실제는 씨앗술부터 시작하므로 삼양주라고 할 수 있다. 발효 기간은 약주인 ‘초이 국화 16’은 저온에서 60일, 막걸리인 ‘초이리 국화 10’은 30일이다. 발효가 끝난 두 술은 다시 저온에서 60일을 보낸다. 최 대표는 국화주 특유의 씁쓸함이 드러나지 않게 만들려고 감국을 넣었다. 약주는 향미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12~13도의 저온발효를 원칙으로 삼았다. 이와 함께 공정마다 누룩을 제거해서 누룩취를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약주는 2022년에 출시했고, 막걸리는 이듬해인 2023년에 발표했다. 두 술은 모두 차갑게 음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약주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온도가 올라가면서 풍부해지는 향미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자. 최 대표는 진저에일과 섞어서 캐주얼하게 즐겨보는 것도 좋고, 막걸리는 반주로 즐길 것을 권했다. 약주의 페어링 음식은 맑은 탕과 소고기이며, 막걸리는 보쌈과 파전이 잘 어울린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