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숙성으로 캠벨 한계 뛰어넘은 와이너리
화이트 와인까지 만들어 지난주 신제품 발표

▲ 충북 영동의 오드린와이너리의 박천명 대표는 3대째 포도원을 운영하면서 캠벨 얼리 중심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사진은 박 대표가 지난 가을 대전와인엑스포 행사장에서 아시아와인트로피 골드를 수상한 샤인와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 충북 영동의 오드린와이너리의 박천명 대표는 3대째 포도원을 운영하면서 캠벨 얼리 중심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사진은 박 대표가 지난 가을 대전와인엑스포 행사장에서 아시아와인트로피 골드를 수상한 샤인와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2025년 11월 15일 13: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만들고 있는 와인 11종 중 8종을 캠벨 얼리로 만드는 와이너리가 있다. 하나의 품종으로 종류를 달리해 와인을 만들어 봐야 두어 종인데, 이곳에선 8종까지 맛의 차이를 두며 양조하고 있다. 모두 와인 메이커의 상상력에서 비롯됐다. 캠벨 얼리의 고장, 충북 영동에 있는 오드린와이너리(대표 박천명)가 그 주인공이다.

캠벨 얼리. 농가형 와이너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우리는 이 포도를 술이 아닌 과일로 만나왔다. 그리고 샤인머스캣 광풍이 불기 전까지 이 포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품종이었다. 그래서 포도를 떠올리면 우리는 가장 먼저 캠벨 얼리의 포도 향을 생각한다.

박천명 대표가 아버지를 이어 포도원에 인생을 걸기로 하고 귀촌을 결심한 2010년 이후 캠벨 얼리는 그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1만 평 규모의 포도원에는 캠벨 얼리가 주로 자라고 있고, 2012년 농가형 와이너리를 만든 이후에도 그는 캠벨 얼리를 와인의 화두로 삼았다.

그 결과, 그가 만드는 두 개의 와인 브랜드에는 캠벨 얼리가 곳곳에 녹아 있다. 브랜드는 드라이한 버전의 ‘그랑티그르’와 스위트 와인을 담은 ‘베베마루’다. 그랑티그르에는 모두 5개의 와인이 속해 있다. 와인을 만들어 최소 5년 이상은 오크통과 스테인리스 숙성조에서 숙성한 프리미엄 라인이다.  

그랑티그르의 술맛은 캠벨 얼리의 가벼운 포도 맛과 결을 달리한다. 처음 시음한 사람은 캠벨 얼리에서 이 같은 풍미가 나온다는 것에 놀라워한다. 초창기 박 대표가 이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었을 때 보였던 반응과 180도 달라진 태도라고 한다. 당시엔 어떻게 이 포도로 와인을 만드느냐는 비아냥도 많이 들었고, 자칭 와인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비판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조소 섞인 평가를 웃어넘겼다. 그리고 이 땅의 떼루아를 잘 담아내고 있는 캠벨 얼리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장기 숙성에 나섰다. 한국와인의 경계선을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 오드린와이너리가 생산하고 있는 ‘그랑티그르’ 브랜드의 프리미엄 와인이다. 왼쪽부터 CE2002, MBA2002, M1988, H1988, S1974다. 모두 오크통과 스테인리스 숙성조에서 최소 5년 이상 숙성된 와인이다.
▲ 오드린와이너리가 생산하고 있는 ‘그랑티그르’ 브랜드의 프리미엄 와인이다. 왼쪽부터 CE2002, MBA2002, M1988, H1988, S1974다. 모두 오크통과 스테인리스 숙성조에서 최소 5년 이상 숙성된 와인이다.

그랑티그르 브랜드에 담은 5개의 와인은 다음과 같다. 캠벨 얼리 100%로 담은 ‘S9174’와 ‘CE 2002’, 캠벨 얼리와 다른 열매를 혼합, 양조한 ‘M1988(오미자)’과 ‘H1988(아로니아)’, 그리고 MBA로만 담은 ‘MBA 2002’다. 이렇게 5종의 와인은 모두 5년 이상 숙성하며 한국 레드 와인의 새역사를 쓰고 있다. 

이 중에서 박 대표가 애지중지하는 와인인 ‘그랑티그르 S1974’는 캠벨 얼리를 수확해 착즙한 후 이를 동결해서 수분을 날리는 방식으로 당도를 높여 양조한다. 흔히 동결 증류법이라고 말하는 방식으로 관련 기술은 특허로 등록돼 있다. 따라서 이 와인에서는 캠벨 얼리의 농축 미가 돋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참고로 1974년은 박천명 대표의 할아버지가 처음 영동에서 캠벨 얼리를 심고 포도원을 만든 해다. 출발을 의미하는 의미에서 박 대표는 시그니처 와인에 1974를 담았다.

그랑티그르 시리즈에서 박 대표가 가장 한국적이라고 평가하는 와인이 있다. 오미자와 같이 섞어서 양조한 ‘M1988’이다. 장기 숙성 과정에서 오미자의 개성이 더 살아나 온도에 따라 다양한 맛을 맛볼 수 있는 와인이다. 그래서 매콤하고 짠 우리 음식하고 잘 어울린다. 심지어 높은 온도에서는 매운맛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아로니아를 넣은 ‘H1988’은 아로니아의 타닌 성분을 담고 있어 바디감이 높은 와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스위트 버전인 베베마루에도 캠벨 얼리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아내를 위한’ ‘내를 위한’ ‘설레임’ ‘썸’ 4종을 발표했는데, 이 중 3종이 캠벨 얼리로 만들었다. ‘아내를 위한’은 캠벨 얼리를 스위트 버전으로 만든 와인이며, 설레임은 로제 스타일로 빚은 술이다. 설레임은 미출시 상품인 ‘설렘 CS’와 함께 2025년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서 골드를 수상하면서 주 질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캠벨 얼리로 만든 화이트 와인 ‘썸’을 발표했다. 썸의 술 색깔은 황금빛보다 호박색에 가깝다. 물론 처음부터 와인 제조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세 차례 정도 껍질 처리 문제로 실패를 경험했다. 침용 시간 관리를 잘못해 로제 와인이 된 것이다.

결국 일일이 껍질을 제거한 후 술을 빚어 3년 숙성한 2022년 빈티지에서 원하는 색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주 캠벨 얼리 최초의 화이트 와인을 처음 일반에게 공개했다.

오드린에는 ‘그랑티그르’와 ‘베베마루’에 속하지 않은 두 종의 와인이 있다. 샤인머스캣으로 만든 ‘샤인와인’과 캠벨 얼리로 만든 ‘월류봉’이다. 지난해 첫선을 보였고, ‘2025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서 두 와인 모두 골드를 수상했다. 샤인와인은 머스캣 특유의 향미를 지닌 와인이며, 월류봉은 “나는 포도야”라고 말하듯 직관적인 캠벨 얼리 향미를 지닌 와인이다. 

이 밖에도 박천명 대표는 감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를 감와인에 넣은 주정 강화 와인을 국내 최초로 내년에 발표할 예정이다. 참고로 감와인인 ‘베베마루 내를 위한’은 3년 이상 숙성한 와인으로 감의 산미를 제대로 담고 있다. 따라서 새로 발표할 주정 강화 감와인은 새콤달콤한 맛의 밸런스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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