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원의 쉽게 푸는 자본시장 16
두산그룹 사업재편 논의
최근 시장에서 두산그룹의 사업구조재편이 뜨거운 이슈다. 두산그룹은 핵심 사업을 '클린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 및 첨단소재' 3개로 정하고 계열사들을 사업 성격에 맞게 지배구조를 재편하려는 계획이다.
핵심은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존속법인)와 신설 투자법인으로 인적분할해서 신설 투자법인이 두산밥캣의 지분을 소유하게 한 후, 두산로보틱스가 위 신설 투자법인과 합병하고,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의 주주들과 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통해 두산밥캣의 주식을 취득하면서 두산로보틱스의 주식을 발행해주어 두산밥캣을 완전자회사로 두는 것이다.
사업재편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일반 주주가치
두산그룹이 추진하는 사업구조재편은 결과적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지배하던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의 지배로 바뀌게 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에 직접 매각하는 방안도 위와 같은 결과가 가능하지만, 이 경우 두산로보틱스는 공개매수를 통해 두산밥캣의 일반주주들로부터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 그러면 두산밥캣의 일반주주들은 공개매수 절차에서 프리미엄을 붙여 주식을 팔게 되기 때문에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게 되고 인수비용이 높아지게 된다.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인적분할 및 합병, 주식의 포괄적 교환 방안이 두산로보틱스로 하여금 더 낮은 비용으로 두산밥캣의 지배권을 갖게 해 더 이익이 되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일반주주 이익 vs 기업집단 전체 이익
한편에서는 현재 두산 사태를 일반주주와 지배주주의 이해상충이라는 대립적 구조로 바라보며, 분할·합병을 추진하는 기업의 경영진이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일반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분할·합병 등 기업구조개편은 상법이 정하는 이사회, 주주총회 등의 절차를 준수하고 자본시장법 등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합병가액과 비율을 산정하는 절차를 준수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법하다는 확립된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8. 1. 10. 선고 2007다64136 판결)를 고려하면, 일반주주들이 문제 삼기 어렵다. 따라서 일반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 주장이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회사들 사이의 「기업집단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념이 존재하며 우리 법원도 그것을 정당한 이익으로 인정하고 있다. 기업 경영진이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 경우에는 해당 경영진이 개별 기업에 대한 관계에서 신임관계를 저버렸다거나 손해를 야기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5도12633 판결).
현재와 같은 상황을 일반주주와 지배주주의 대립적 관계로 보고 기업의 경영진은 어떤 경우에도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흑백논리로 접근할 경우 기업집단 전체의 이익이라는 것은 도외시될 우려도 있다.
규제기관 직접규제 vs 시장형 규율
금융감독원은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이익이 부당하게 저해되지 않도록 두산그룹이 제출한 분할 합병에 관한 증권신고서를 면밀히 검토하고, 정정신고를 요구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이 주주가치를 저해할 수 있는 지배구조 재편에 대해 감시를 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규제기관의 직접규제는 절차적 적법성 논란이 있고 어느 정도 수준이면 허용되는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어 자의적인 규제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규제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시장불안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와 대비되는 시장형 규율은 일반 소액주주든, 기관투자자든, 지배주주에 가까운 주주든 지배구조 재편 방안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면 찬성할 것이고,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반대하여 관철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논리를 전제로 한다.
일반 소액주주들은 결집하여 의견을 관철하기 어렵겠지만, 연기금, 펀드 등 기관투자자는 분할·합병 추진 대상회사에 주주관여를 통해 적극적인 입장표명을 하고, 분할합병안에 대한 찬성·반대 의사표시를 통해 시장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다.
기관투자자들이 자신들에게 돈을 맡긴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처럼 투자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이 된다면, 대다수의 일반 주주가치를 저해하는 분할합병안은 자연스레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펀드 수익률에만 주력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경영권에 개입한다.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추궁을 하거나 경영투명성 요구 등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하는데, 행동주의 펀드와 같은 건전한 시장감시자들을 육성하는 방안이 시장친화적인 규제 수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