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통김치 원형, 윤미월 명인 손길에서 부활
일본서 한식 세계화 나서며 ‘김치전도사’ 자처

우리나라에는 200여 가지의 김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이 많은 김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다. 고작해야 김장김치 또는 배추김치를 김치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더 보탠다면 깍두기와 물김치 정도. 그리고 여름에 주로 먹는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가며 손가락을 꼽더라도 열 손가락을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김장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김치 종주국이지만, 정작 소비하는 김치 문화는 점점 왜소해지고 있다. 이달 초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 식품명인체험홍보관(관장 조윤주)에서 두 사람의 김치 식품명인을 만났다. 두 명인의 공통점은 보존 가치가 높은 김치로 식품명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잊혀질 가능성이 있는 김치에 관한 이야기와 두 명인의 김치 담는 법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주>


‘숭침채’ 윤미월 명인


▲ 일본 도쿄의 미슐랭가이드 투스타 ‘윤가‘의 오너 셰프이자 ’숭침채‘ 김치를 담는 윤미월 식품명인이 직접 시연한 숭침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일본 도쿄의 미슐랭가이드 투스타 ‘윤가‘의 오너 셰프이자 ’숭침채‘ 김치를 담는 윤미월 식품명인이 직접 시연한 숭침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미월 식품명인은 일본 도쿄의 미슐랭가이드 투스타를 받은 ‘윤가’의 오너 셰프이자, 경남 밀양과 충남 서산 두곳에서 김치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이다. 그리고 ‘숭침채(菘沈菜)’라는 김치를 담는 식품명인(2015년, 제66호)이기도 하다. ‘숭침채’라는 김치 이름이 무척 낯설다. 배추 숭(菘), 잠길 침(沈), 나물 채(菜)로 ‘배추가 육수에 잠긴 김치’라는 뜻을 담고 있다. 1800년대 말엽 발간된 것으로 추정하는 고조리서 《시의전서》(저자 미상)에 처음 등장하는 이름이다. 지금은 ‘배추통김치’라고 풀어 적고 있다.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윤미월 명인은 집안에서 먹었던 김치와 《시의전서》 속 숭침채가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물산이 풍부한 지역답게 윤 명인의 집안에선 산과 바다, 들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넣고 다양한 김치를 만들었다. 그 김치 중 하나가 숭침채와 유사했던 것이다. 
숭침채의 재료는 화려하다. 전복과 낙지가 들어가고 생밤과 배, 대추도 들어간다. 김치 속에 해산물을 넣고 숙성시키는 것이 마치 김치와 해(醢)를 합쳐놓은 것 같다고 윤 명인은 말한다. 해는 동해 쪽에서 주로 먹는 음식으로 생선류를 약간의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음식이다. 명태식해와 가자미식해가 유명하다.

이처럼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서 만드는 김치이다 보니 귀족들의 김치라는 소리를 듣는다. 지금이야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지만, 조선시대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 윤미월 명인이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진행된 체험행사에서 배추통김치의 원형인 숭침채 제조법을 설명하고 있다.
▲ 윤미월 명인이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진행된 체험행사에서 배추통김치의 원형인 숭침채 제조법을 설명하고 있다.

숭침채의 또 하나의 특징은 문헌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배추통김치의 원형이라는 점이다. 보통 때 먹는 배추김치는 배추를 일정한 크기로 썰어서 담는다. 이런 김치를 막김치라고 한다. 이에 반해 숭침채는 통배추를 그대로 절여서 김치를 만든다. 요즘이야 김장김치를 담으며 익숙해진 제조법이지만, 김치 제조사적 측면에서 보면 통배추는 《시의전서》에서 처음 모습을 나타낸다. 이에 따라 농림식품부에선 원형을 유지한 숭침채 부문에 윤미월 씨를 식품명인으로 지정한 것이다.

윤 명인의 숭침채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숭침채의 일본 판매 가격은 1kg에 4만 원 정도.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처럼 윤 명인의 김치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한식에 관한 일본인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에게 한식은 더 이상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선택적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믿고 소비하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이란다. 그리고 한식의 높아진 위상이 김치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숭침채 만드는 법


이처럼 일본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숭침채는 어떻게 담는 것일까. 우선 1년 이상 숙성한 황석어젓의 살을 발라내어 먹기 좋은 크기로 저민다. 뼈와 머리는 물 550cc에 넣고 끓어오르면 20분 정도 더 끓인 후 체에 걸러 육수를 준비한다. 이 육수가 숭침채 맛의 핵심 비결이다.

다음은 각종 재료의 손질법이다. 밤은 식감이 좋게 채를 썰고, 청각은 오래 건조한 것을 골라 2~3cm 정도로 자른다. 파는 흰 부분만 사용해 채를 썰고, 배도 껍질을 벗기고 채를 썬다. 파의 흰 부분만을 쓰는 것은 단맛과 향이 흰 부분에 많기 때문이다. 파란 부분은 쌉쌀한 맛을 가지고 있고 식감도 해친다. 미나리는 잎을 제거하고 줄기만 3cm 크기로 썬다. 미나리의 잎을 쓰지 않는 것은 쓴맛을 가지고 있어서다. 

전복과 낙지는 깨끗이 씻은 뒤 손질을 한다. 전복의 경우 내장을 정리해야 하고 낙지와 함께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소금을 약간 뿌려 하루 정도 재운다.

이제 손질한 황석어젓 살과 전복, 낙지, 배와 대파, 청각과 미나리, 밤, 간 마늘, 간 생강,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을 만든다. 버무린 양념도 하루 동안 숙성한다. 숙성을 마친 양념은 되직한 질감을 갖는다.

보통 김치를 담을 때 무는 채를 썰어서 사용하지만, 숭침채에선 채를 쓰지 않는다. 무를 1.5~2cm 정도 두께로 자르고, 4등분해서 양념과 버무린다. 일반적으로 섞박지로 알고 있는 무의 크기다.

배추는 2.7~2.8kg 무게가 적당하다. 배추의 흰 부분에 칼집을 내주고 소금을 푼 물에 담근다. 소금도 간수를 빼서 사용한다. 윤 명인은 3년 정도 간수를 뺀 소금을 쓰고 있다. 배추 절이는 시간은 겨울의 경우 12시간 정도다. 절인 배추는 준비한 양념과 부재료를 넣어서 김치를 담으면 된다. 배추는 물이 생기면 곰팡이가 생기므로 배추의 안쪽까지 한 장씩 들쳐서 꼼꼼히 양념을 발라주어야 한다. 절인 배추의 겉잎을 5장 정도 따로 떼어 김치를 덮는 용도로 사용한다. 

완성된 김치는 3~4일가량 숙성하다가 화룡점정을 해줘야 한다. 앞서 준비했던 살을 발라낸 뒤 남은 황석어의 머리와 뼈를 우린 육수를 숙성 중인 김치에 넣어준다.

그래야 제대로 된 숭침채가 된다. 지난 3일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의 체험 때는 시간 관계상 재료를 모두 합쳐서 만들었지만, 원 제조법은 숙성한 뒤 육수를 넣어야 한다.

숭침채는 앞서 설명했듯 장기 보관하며 먹는 김치다. 윤 명인은 최소 3개월 정도 건드리지 말고 김치냉장고에서 숙성시킬 것을 권한다. 그래야 감칠맛 나는 숭침채 본연의 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윤미월 명인은 자신의 이름을 딴 한식 브랜드를 이달부터 일본 패밀리마트에 넣는다고 한다. 패밀리마트는 일본 전역에 1만6,500여 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다. 또한 북경에도 도쿄의 ‘윤가’같은 한식당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