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전복, 낙지와 배추 등 채소로 만든 섞박지
화려한 재료 쓰는 만큼 세상에 없는 김치맛 유명
우리나라에는 200여 가지의 김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이 많은 김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다. 고작해야 김장김치 또는 배추김치를 김치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더 보탠다면 깍두기와 물김치 정도. 그리고 여름에 주로 먹는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가며 손가락을 꼽더라도 열 손가락을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김장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김치 종주국이지만, 정작 소비하는 김치 문화는 점점 왜소해지고 있다. 이달 초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 식품명인체험홍보관(관장 조윤주)에서 두 사람의 김치 식품명인을 만났다. 두 명인의 공통점은 보존 가치가 높은 김치로 식품명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잊혀질 가능성이 있는 김치에 관한 이야기와 두 명인의 김치 담는 법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주>
‘해물섞박지’ 이하연 명인
‘섞박지’를 설렁탕이나 곰탕집에서 나오는 큰 크기로 자른 무김치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섞박지는 젓갈과 채소를 섞어 담은 김치를 뜻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요즘 김치는 다 젓갈과 채소(특히 배추)를 섞어 담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김치를 담을 때 젓갈을 넣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는 각종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 절인 김치였다. 그러다 고추가 들어오면서 고춧가루와 젓갈류를 넣고 김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즉 요즘 우리가 먹고 있는 김치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섞박지’라는 이름의 김치도 이때 고조리서에 등장한다.
대한민국김치협회장을 역임한 이하연 식품명인의 명인 지정 김치는 ‘해물섞박지’다. 1809년에 나온 《규합총서》(빙허각 이씨)의 ‘어육침채’를 재현한 김치다. 식품명인 지정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보존 가치’인데 ‘해물섞박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명인의 설명에 따르면 해물섞박지는 신선한 소라와 낙지, 전복 등의 고급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김치다. 이 명인은 군산과 강경이 가까운 전북 익산(웅포) 출신이다. 자연스럽게 젓갈 문화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됐다. 이 명인이 처음 《규합총서》를 접하면서 ‘어육침채’를 봤을 때, 어머니의 김치가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젓갈류와 해산물이 주인공인 김치였기 때문이다.
이후 이 명인은 어육침채를 수십 번 담았다. 어머니 김치와의 유사성도 있지만, 지금은 좀처럼 담지 않아 사라질 수도 있는 김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담은 김치를 전통음식 관련 행사에 출품했는데, 전문가들로부터 ‘맛이 희한하다’는 평가는 받았다. 여기에서 ‘희한하다’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맛을 의미한다. 이렇게 사라져가던 김치를 재현한 덕분에 2014년 식품명인으로 지정되었다.
해물섞박지 만드는 법
해물섞박지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만큼 만드는 방법도 복잡하다. 우선 필요한 재료는 배추, 무, 가지, 동과, 오이, 전복, 소라, 굴, 낙지, 생새우 등이다. 배추는 한 통을 4등분하고 소금에 절여 씻은 다음 물기를 빼주고 무도 절반을 자른 뒤 4등분한다. 동과는 껍질을 깎은 뒤 무와 비슷한 크기로 썰어 소금에 절인다.
전복과 소라, 낙지는 각각 손질한 뒤 감초 물에 살짝 데쳐서 잘게 썰어 준비한다. 굴은 겨울에만 쓰는데 손질만 하면 된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과 생강, 새우젓, 소금 등의 양념을 섞어 준비한 김칫소에 손질한 해산물을 넣고 버무린다. 여기에 2cm 크기로 썰어둔 쪽파와 갓, 미나리도 같이 넣는다. 간은 새우액젓과 소금으로 맞춘다.
이제 절인 배추에 김칫소를 넣고 버무려둔다. 다 버무렸으면 황석어젓 국물과 양념 재료와 다시마 등을 넣어 만든 국물 재료를 준비한 뒤 베 보자기로 걸러 놓는다. 또한 배를 비롯한 각종 채소도 손질을 끝내고 준비한 용기에 넣는다. 순서는 소를 넣은 배추와 무, 그리고 오이, 가지, 동과 순이다. 마지막으로 배추 겉잎으로 덮은 다음 거른 국물을 붓고 통대추, 고추, 배를 넣고 마무리하면 된다.
저장 방법은 상온에서 하루 정도 익힌 다음 냉장고에 10일 정도 숙성시키면 된다.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
오이와 열무는 대표적인 여름 김치 소재다. 오이는 5시간 정도 절이는데, 중간에 위아래를 뒤집어준다. 물기를 뺀 후 앞뒤 꼭지를 자르고 오이 가운데 칼집을 내준다. 오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부재료는 부추다. 부추는 시든 잎을 떼어내고 흐르는 물에 씻어 1cm 크기로 썬다. 홍고추는 색을 위해 넣는데 반을 갈라 씨를 제거하고 채 썰어둔다.
양념 재료와 젓갈을 섞은 뒤 고춧가루가 불 때까지 20분 정도 두었다가 부추를 넣어 버무리면 된다. 오이에 낸 칼집 사이에 양념소를 채우면 완성된다. 숙성은 1주일 정도 하면 된다.
열무김치는 오이보다 많은 재료를 사용한다. 우선 열무와 얼갈이를 손질한다. 시든 잎을 떼어낸 다음 뿌리는 다 자르지 않고 칼끝으로 지저분한 밑동만 긁어낸다. 깨끗이 씻은 후 5~6cm 크기로 잘라 소금물에 절인다. 중간에 한 번 뒤집어주는데 자주 만지면 풋내가 날 수 있다.
쪽파는 지저분한 겉잎을 떼고 흐르는 물에 씻어 건져내고 마른 고추는 꼭지를 떼고 가위로 자른 다음 씨를 제거한 뒤 물에 씻는다. 다시마 물 2컵 정도를 부어 20~30분 정도 담가둔다.
젖산 발효를 도와줄 밀가루 풀을 쑨다. 다시마 물 500ml에 밀가루 2큰술을 넣고 끓여 식히면 된다. 풀이 다 되면 앞서 준비한 고추와 통마늘, 통생강, 배를 같이 넣고 믹서에 간다. 씻어놓은 쪽파는 5~6cm로 잘라주고 어슷하게 썬 홍고추와 청양고추도 넣어준다. 이제 준비한 양념을 묻히듯이 살살 열무 얼갈이와 함께 섞어 버무리면 완성이다. 완성된 김치는 하루 정도 상온에 둔 뒤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