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자본의 암초, 해약환급금준비금②]
<기본자본의 암초, 해약환급금준비금① 이어서>
올 상반기 생명·손해보험 각 10개사에서 작년 말 대비 늘어난 해약환급금준비금 및 이익잉여금 적립 속도를 계산할 경우 생명보험 10개사는 3.1년, 손해보험 10개사는 6.9년이면 이익잉여금 한도를 초과하게 된다. 일회성 요인 및 비상위험준비금을 고려하지 않은 계산이지만 보험사가 느끼는 위기감은 이보다 빠르고 크다.
벌써 이익잉여금 한도를 초과하거나, 턱 끝까지 찬 보험사도 속속 나오고 있다. 결국 이익잉여금을 많이 쌓은 회사일수록 당장 배당이나 손금산입서 문제가 없다 보니 ‘표정 관리’를 할 뿐 제도 개편을 바라는 시각은 다르지 않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액이 위험수위에 오른 회사는 적립액이 늘어나는 속도와 이익잉여금 내 비중 두 가지로 판단해 볼 수 있다.
한화생명 제일 빠르고, 농협생명 한도 돌파
생보사 중 해약환급금준비금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보험사로는 한화생명이 꼽힌다. 올 상반기 기준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액은 4조6721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22.3%(1조409억원), 지난 2023년 말 대비 46.4%(2조1673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익잉여금 규모는 각각 2.2%(1520억원), 10.4%(7315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속도가 이익잉여금 증가 속도의 작게는 3배에서 크게는 10배까지 벌어진 것이다. 두 적립액의 증가 속도가 올 상반기 수준으로 지속된다면 약 2.5년 후 해약환급금준비금은 이익잉여금을 추월하게 된다.
NH농협생명은 올 상반기 해약환급금준비금 규모가 이익잉여금 한도를 넘어선 첫 회사다. 올 상반기 이미 미처분이익잉여금(이익잉여금서 각종 법정준비금을 차감한 금액)과 해약환급금준비금 신규 적립액이 1345억원으로 같다. 즉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이익잉여금 한도까지 쓴 탓에 다른 준비금은 전혀 적립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올 상반기 기준 해약환급금준비금이 이익잉여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회사는 DB생명으로 무려 98.5%다. 이미 한도를 채운 NH농협생명(86.2%)을 제외하면 동양생명(70.1%)이 곧 이익잉여금 한도 초과로 기본자본이 차감될 위험수위 보험사로 꼽힌다.
뒤이어 한화생명·라이나생명(66.4%), 신한라이프생명(61.1%), 미래에셋생명(53.3%) 등의 적립액이 이익잉여금의 절반을 뛰어넘었다.
롯데·농협 등 잉여금 적을수록 ‘빨간불’
손보사 중 적립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삼성화재다. 지난 2023년 말 대비 올 상반기 무려 63.0%(2조12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익잉여금은 9.6%(1조2837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단, 이익잉여금 내 해약환급금준비금 비중은 아직 23.7%에 불과하다. 속도는 빠르나, 시간이 많이 남은 셈이다.
그 다음은 메리츠화재다. 같은 기간 해약환급금준비금이 53.8%(1조2028억원) 증가할 동안 이익잉여금은 23.4%(1조3858억원) 느는 데 그쳤다. 이익잉여금 내 해약환급금준비금 비중은 37.7%로 아직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손보사에서 위험수위에 오른 건 중소형사다. 특히 실질적인 이익잉여금 한도는 생보사 대비 더 적다. 이익잉여금서 준비금을 처분하는 순서가 비상위험준비금이 더 앞서기 때문이다. 이에 비상위험준비금을 빼야 실질적인 이익잉여금 한도가 계산된다.
올 상반기 기준 ‘실질 이익잉여금’ 한도 대비 해약환급금준비금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롯데손해보험으로 99.6%에 이른다. NH농협손해보험도 98.4%로 한도를 거의 채웠다. 하반기부터 비약적인 순이익 증가가 없다면, 기본자본이 보완자본으로 분류되는 속도가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손해보험(81.6%)도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속도에 따라 위험수위로 평가된다. 현대해상(66.7%), KB손해보험(63.4%), 라이나손해보험(61.7%) 등도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는 보험사의 배당, 법인세, 자본건전성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다. 단순히 적립 비율을 낮추는 수준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위기”라며 “대주주는 보험영업이 잘돼 이익이 늘어나도 배당을 기대하기보단 증자를 통해 당장 깎이는 기본자본부터 채워야 하는데, 이조차 언제까지가 될지 모른다. 현 상황에서 느긋한 건 해약환급금준비금으로 당장 법인세 절감 효과를 보는 이익잉여금이 충분한 회사 뿐”이라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