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향기’로 MZ세대 주당 잡는 대전 술벙커
‘쌀·고구마소주’ 함께 생산하는 신흥증류소

세상에서 맛있다는 술은 모두 수입되는 세상이다. 당대의 사람들에게 술맛을 인정받아야 생존하는 세상인 것이다. 술의 국적은 더는 의미가 없다. 우리 농산물로 만들었다고 당연히 소비되는 세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우리 술의 미래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술 또는 술맛, 그리고 다른 술과 비교했을 때 차별화된 향미를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이번에는 술맛을 위해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 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의 서울양조장과 대전의 술 벙커가 만든 술이다. <편집자주>

▲ 대전의 신생 증류소 ‘술 벙커’의 권순호 팀장은 쌀 소주와 고구마 소주를 만들고 있다. 제품명은 ‘홀’ 소주와 ‘짝’ 소주다. 입국으로 당화시킨 술덧을 증류하여 항아리에서 쌀 소주는 1년, 고구마 소주는 6개월 숙성하고 있다. 
▲ 대전의 신생 증류소 ‘술 벙커’의 권순호 팀장은 쌀 소주와 고구마 소주를 만들고 있다. 제품명은 ‘홀’ 소주와 ‘짝’ 소주다. 입국으로 당화시킨 술덧을 증류하여 항아리에서 쌀 소주는 1년, 고구마 소주는 6개월 숙성하고 있다. 

2025년 09월 06일 13: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적은 양의 액체를 단숨에 남김없이 들이켜는 모습을 흔히 ‘홀짝’인다고 표현한다. 단어가 주는 어감은 조금씩 나눠 마시는 모양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홀짝’이며 마시기 좋은 술이 바로 증류주다. 적은 양을 잔에 따라 단숨에 마시는 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잔에서 올라오는 향기와 마시고 난 뒤 입에서 코로 넘어가는 향기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향기와 함께 술맛, 그리고 바디감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홀짝홀짝' 마신 술에는 장사가 없다. 증류주의 알코올 도수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년 전 우리 조상은 증류소주를 식사하면서 두어 잔 반주처럼 마셨다. 지금이야 알코올 도수가 낮은 희석식 소주가 대세를 이루고 있어 두어 잔에 그치지 않지만 말이다. 

▲ 술 벙커에서 생산하고 있는 ‘홀’ 소주와 ‘짝’ 소주다. ‘홀’ 소주는 입국 50%로 밑술을 만들고 ‘짝’ 소주는 20%로 만든다. 증류한 술은 알코올 도수 40~50%까지만 받아서 제품화하고 있다.
▲ 술 벙커에서 생산하고 있는 ‘홀’ 소주와 ‘짝’ 소주다. ‘홀’ 소주는 입국 50%로 밑술을 만들고 ‘짝’ 소주는 20%로 만든다. 증류한 술은 알코올 도수 40~50%까지만 받아서 제품화하고 있다.

지난해 ‘홀짝’이라는 브랜드의 증류식 소주가 출시됐다. 물론 술을 마시는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 ‘홀짝’이 아니라 홀수와 짝수를 의미하는 명사 ‘홀짝’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홀’은 쌀 소주, ‘짝’은 고구마 소주다. 알코올 도수는 46%. 제법 높은 도수의 술이다. 애주가들 사이에선 향기와 바디감 모두를 담은 술이라고 알려진 술이다. 그래서 ‘홀짝홀짝’ 마셨을 때 가장 소주의 향미를 잘 느낄 수 있는 술이기도 하다. 

‘홀짝’ 소주를 만드는 곳은 대전의 술 벙커(공동대표 최인호, 유기태)다. 대전 원막걸리에서 프리미엄 소주를 만들기 위해서 지난해 만든 증류소다. 이곳에서 ‘홀짝’ 소주를 만드는 양조인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십수 년을 ‘우리 술’에 천착한 권순호 팀장이다. 대학에서 기계 관련 학과를 전공한 권 팀장은 군 제대 이후 한국전통주연구소와 가양주 연구소 등 국내에 있는 주요한 양조아카데미를 섭렵했다. 지금까지 다닌 아카데미만 7곳 이상이다. 현재는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있다. 

권순호 팀장의 ‘홀짝’ 소주의 특징은 향기와 바디감이다. 권 팀장은 “쌀 증류주는 입국을 사용할 때 가장 향기 밸런스가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술은 입국을 당화제로 사용한다. 입국을 쓰는 다른 증류소와 차이가 있다면 사용량이다. 그는 쌀 소주의 경우 쌀량 대비 50%의 입국을 사용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향미를 내기 위해 입국 사용량을 늘려 잡았다. 이 정도로 입국을 사용하는 곳은 술 벙커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입국은 다양한 유기산을 갖고 있다. 이 유기산이 증류주 향기의 근원 중 하나다. 권 팀장은 여기에 주목했다. 이와 함께 소량의 정제 효소를 사용한다. 잔당을 남기지 않고 발효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가 사용하는 효모(N9 효모)의 발효력을 고려한 제조법이다. N9 효모는 발효력이 강하다. 또한 18~19%의 알코올 도수에서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내 알코올성도 높다. 따라서 효모의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입국과 정제 효소를 같이 사용하는 것이다.

증류 기술도 남다른 선택을 했다. 여타의 증류소처럼 술 벙커도 상압 방식의 다단식 동 증류기를 사용한다. 칼럼은 4단이다. 그런데 권 팀장은 2단까지만 열고 증류한다. 칼럼을 모두 열고 증류하면 주질이 부드러워지는 만큼 술 향기도 같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각 처리 과정도 줄여서 증류 원액의 환류 과정을 최소화했다. 술의 바디감을 주기 위한 선택이다. 대신 권 팀장은 증류기 내부에 황화합물을 포집할 수 있는 ‘카탈라이저’를 설치했다. 여러 겹의 구리 망을 증류기 내부에 넣어서 증류 원액이 최대한 구리 성분과 만날 수 있도록 직접 증류기를 튜닝한 것이다.

권 팀장은 자신의 증류법을 사용하면 좋은 향기는 제대로 모을 수 있고 불편한 향기는 카탈라이저를 통해 최대한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소주 원액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증류 본류의 알코올 도수는 40~50% 수준에 끊고 있다. 이렇게 증류한 쌀 소주 ‘홀’은 1년간 항아리에서 숙성한 뒤 병입된다. 고구마 소주인 ‘짝’은 ‘홀’과 달리 20%의 입국으로 밑술을 만든다. 고구마 향기가 술의 중심이므로 입국 사용량을 쌀 소주보다 적게 잡은 것이다. 숙성기간도 쌀 소주보다 짧은 6개월이다. 술 향기는 ‘홀’ 소주가 꽃 향과 과일 향이라면, ‘짝’ 소주는 장미꽃과 열대과일 향이다. 

이처럼 쌀과 고구마 소주 두 종의 증류주를 만드는 까닭은 증류기 사용 효율성을 고려한 선택이다. 처음에는 쌀 소주만 계획했는데, 양조장의 술이 다양해야 더 많은 소비자가 찾는다는 판단 아래 고구마를 추가했다.

고구마는 수확 철에만 소주를 만들 수 있다. 고구마 상태가 주품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 팀장은 9월부터 3월까지 매주 고구마를 논산 농협에서 공급받아 술을 만든다. 그리고 나머지 기간은 쌀 소주 생산에 매진한다.권순호 팀장은 홀짝 소주 본연의 향미를 맛보고 싶다면 상온에서 보관한 소주를 스트레이트로 마실 것을 권장한다. 소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도수가 부담스럽다면 얼음을 넣어 온더록으로 마시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같이 곁들일 수 있는 안주는 소주 본연의 향과 맛을 해치지 않는 담백한 생선회나 고소하고 기름진 육회를 추천했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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