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문경주조 이후 전국에서 오미자 발효주 확산
오미자 ‘막걸리·과실주·수제맥주’ 등 주종 크게 늘어
다섯 가지 맛을 지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오미자’가 우리 술의 부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막걸리는 물론 과실주(와인)와 맥주의 부재료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오미자의 산미와 쌉쌀한 맛이 알코올 음료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미자를 부재료로 사용하는 양조장이 특정 지역에 밀집돼 있다. 경상북도 문경이다. 이는 오미자 자생지가 백두대간을 따라 분포하기 때문이다.
오미자는 해발 300~800m인 준고랭지 청정지역에서 잘 자란다. 백두대간에 속해 있는 문경은 77.8%가 산지여서 오미자 재배에 최적지다. 문경에서 처음 오미자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이라고 한다. 이때 시작한 문경의 오미자 농사는 2009년,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하기에 이른다. 2017년 4,300t가량을 수확할 정도로 확대일로에 있었으나.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따라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문경은 오미자의 주산지답게 모든 술도가에서 오미자 관련 술을 만들고 있다. 막걸리는 물론 과실주(와인)와 맥주, 증류주에 이르기까지 주종도 다양하다. 황산화와 관련한 건강한 이미지와 상큼한 산미를 술맛에 더하기 위해서다. 산미가 많고 당도가 낮아 발효 효율이 낮지만, 이를 능가하는 풍미가 오미자를 술의 부재료로 끌어올린 것이다.
오미자는 여름철에 즐기는 오미자화채처럼 오래전부터 즐겨왔던 계절식이다. 이번 글에선 오미자 발효주를 다루고자 한다. 여름 한정판부터 연중 생산 제품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오미자 발효주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문경주조의 오미자 술
문경주조(대표 홍승희)는 가장 먼저 오미자로 술을 만든 곳이다. 전국 오미자 생산량의 45%에 달하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오미자를 이용한 주류 개발에 나서게 되었다. 문경주조에서 오미자를 넣어 만드는 발효주는 ‘오희 스파클링’, ‘문경 오미자생막걸리’, ‘문희 오미자탁주’ 3종이다.
첫 작품은 2008년에 출시한 ‘문경 오미자생막걸리’. 오미자의 신선한 풍미를 막걸리에 담아서 젊은 층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술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색은 물론 맛까지 담은 이 막걸리는 ‘과실막걸리 붐’을 맨 앞에서 이끈 기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어 만든 막걸리는 프리미엄 오미자 막걸리였다. 전통 누룩을 넣고 3양주로 빚은 술이다. 발효가 끝난 술은 100일 동안 숙성했다. ‘문희 오미자 탁주(12%)’다. 2010년에 발표했으니, 프리미엄 막걸리 1세대에 속하는 술이다. 홍승희 대표는 지역 특산품을 가양주 방식으로 빚어 주품을 업그레이드하고자 이 술을 만들었다.
세 번째 만든 막걸리는 스타일의 변화를 줬다. 가볍게 마실 수 있도록 알코올 도수는 8.5%로 낮추고 탄산감을 살려 샴페인처럼 마실 수 있도록 개발했다. 이름은 ‘오희 스파클링’이다. 지게미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입국을 사용했다. 3양주를 빚어 3개월간 장기 저온 숙성한 ‘오희 스파클링’은 오미자의 맛과 적당한 산미, 그리고 탄산까지 담고 있어 젊은 층이 좋아하는 술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문경주조는 ‘오미자’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확인시켜준 양조장이다. 오미자의 새콤달콤한 관능적 특성을 보여줌으로써 오미자를 이용한 주류의 확산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홍 대표는 ‘문희 오미자 탁주’를 증류해 5~7년 동안 항아리와 오크통에서 숙성한 증류식 소주도 현재 생산하고 있다. 한마디로 오미자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문경주조의 역사는 오미자와 함께 써 내려가고 있다.
오미나라 ‘오미로제’ 시리즈
오미나라(대표 이종기)는 남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오미자를 와인으로 만든 곳이다. 불가능의 이유는 ‘높은 산도’였다. 하지만 이종기 대표는 보기 좋게 와인을 만들었다. 그것도 샴페인 방식의 스파클링 와인부터 스틸 와인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4종에 이른다.
첫 제품은 2011년에 발표한 ‘오미로제 결’(12%)이다. 전통 샴페인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이다. 술 한 병을 만드는 데 대략 30개월가량 걸린다. 이처럼 정성을 들여 만든 까닭은 국격에 어울리는 술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종기 대표는 정상회담이나 각종 국제 행사의 건배주로 내도 손색이 없는 술을 염두에 두고 오미자 와인 개발에 나선 것이다.
만드는 과정도 까다롭다. 오미자즙을 6개월 이상 1차 발효한 뒤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12개월을 보낸다. 그리고 숙성된 와인을 병입해서 다시 15개월 이상 2차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샴페인처럼 자연 탄산을 모으기 위해서 이 대표는 효모의 침전물을 모으고 제거하는 핵심 공정에 다시 3개월 이상의 시간을 사용했다. 이렇게 완성된 술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필두로 2022년 한미 정상회담 건배주가 되었다. 힘들게 만든 만큼 시장의 보답도 따라왔던 것이다.
2011년 이 대표는 ‘오미로제 결’과 함께 스틸 와인인 ‘오미로제 프리미어’(12%)도 발표했다. 6개월 이상 발효하고 12개월을 오크통에서 숙성한 이 술도 세계조정선수권대회(2013년) 및 세계 물포럼(2025년) 행사의 만찬주로 사용되었다. 프리미어의 인기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오미나라는 대중적인 버전의 스틸 와인을 계획한다. 숙성기간을 줄여 가성비 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술이다. 이름은 ‘오미로제 투게더’(12%)다.
지난 2020년에는 스파클링 와인의 대중적 버전도 출시했다. ‘오미로제 연’(8%)이 주인공이다. 샴페인 방식보다 비용이 저렴하게 드는 샤마트 방식을 채택한 술이다. 샤마트는 자연 탄산을 병이 아닌 내압 탱크에서 만드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2016년에는 오미자 증류주(브랜디)인 ‘고운달’을 출시했다. 백자와 오크통에서 각각 숙성한 이 술은 한국 증류주의 주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인트하우스 오미자와인’
세인트하우스는 해미읍성딸기와인(대표 선권수)의 대표 브랜드명이다. 선권수 대표는 한국형 과실 와인으로 오미자에 주목하고 지난 2018년부터 ‘오미자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오미자는 항산화와 피로 회복 등의 건강 지향적 이미지를 지닌 과실이다. 또한 여러 특징이 프리미엄 주류로의 확장도 가능한 열매다. 이같은 판단에 따라 선 대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오미자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선 대표가 만드는 오미자와인은 일반적인 과실주와 비슷하다. 우선 오미자즙을 낸 뒤 보당 과정을 거쳐 1차 발효에 들어간다. 대략 2주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발효가 끝나게 된다. 발효가 완료된 술은 장기 숙성에 들어간다. 이에 앞서 술에서 씨와 과육을 걸러내 맑은 술만 모은다. 1차 걸러진 술은 2년 동안 잠재운다. 숙성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맛이 부드러워진다는 것이 선 대표의 설명이다.
오미자는 산미와 함께 쌉쌀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과실이다. 그래서 선 대표는 오미자가 가진 베리류의 풍미와 약재적 성격을 와인에 잘 반영하는데 양조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인트하우스 오미자와인은 기름진 한식은 물론 치즈케이크와 같은 디저트와도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술도가 ‘오!미자씨’
문경의 두술도가(대표 김두수)가 2020년 출시한 ‘오!미자씨’는 오미자 막걸리를 전국구로 만들어준 술이다. 브랜드의 작명과 레이블이 지닌 경쾌함이 붉은 오미자 색과 잘 어우러진 결과다. 그 덕분에 여름 한정판으로 기획했던 ‘오!미자씨’는 2023년부터 연중 생산하는 두술도가의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김두수 대표는 오미자의 맛과 색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다가 현재의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수매한 오미자를 직접 즙을 낸 뒤 발효가 끝난 술덧을 제성할 때 섞고 있다. 그래야 오미자의 풍미가 술에 온전히 담긴다고 말한다. 생과가 지닌 신선하고 청량한 맛을 가장 잘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술은 이양주로 빚는다. 숙성은 계절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략 1~3개월가량 하고 있다.
‘오!미자씨’는 차갑게 냉장한 술을 안주 없이 식전주로 마실 때 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안주를 먹기 위해 마시는 일반적인 주류와 달리 음식을 먹고 난 뒤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하는 역할 또한 이 술이 지닌 특별함이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요새로제’와 ‘베리 딜리셔스’
사과발효주인 ‘사이더’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충북 충주의 댄싱사이더(대표 이대로)가 오미자 사이더를 처음 만든 것은 지난 2020년의 일이다. 제품명은 ‘요새로제’(6.4%)다. 가볍게 마시는 캐주얼 음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식사하면서 마실 수 있는 다이닝 에디션으로 기획한 제품이다. 사이즈도 750mL로 키웠다. 사과와 함께 오미자와 라즈베리를 넣었다. 신의 한 수와 같은 선택이었다. 동양적 향미의 오미자와 서양적인 라즈베리가 만드는 복합적인 풍미가 성공요인이었다.
특히 기름진 한식류와 잘 어울려 전통주점에서의 매출이 빠르게 성장했다. 요새로제의 성공은 생경했던 사이더를 우리 술의 한 장르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성과로 이어졌다. 지금도 회사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베스트셀러 행진을 멈추지 않는 제품이기도 하다. 특히 주품(술맛)까지 인정받아 지난 2024년 ‘아시아 사이더 챔피언십’에서 은상을 받는 등 여러 품평회에서 상을 받았다.
댄싱사이더는 지난해 또 하나의 오미자 제품을 출시했다. 오미자를 포함해 4종의 베리류를 넣은 ‘베리 딜리셔스’(4.5%)다. 일상에서 편하게 혼술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이 제품은 시판 중인 라거 맥주만큼 가벼운 알코올 도수로 만들어졌다.
베리 딜리셔스는 오미자의 친숙한 향미와 함께 사이더의 깔끔하고 청량한 맛을 같이 지니고 있어 달큰한 맛을 즐기는 소비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고 댄싱사이더 관계자는 말한다.
OBC ‘베텔게우스’
파주의 수제맥주 양조장 오리지널비어컴퍼니(대표 박승원)가 여름 한정판으로 만들고 있는 사워 맥주 ‘베텔게우스’. 올해로 3년째 생산하고 있는 이 맥주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이달 들어 데일리샷에 출시하자마자 이틀 만에 준비한 수량을 완판했다고 한다.
‘배텔게우스’는 별자리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맥주다. 오리온자리의 붉은색 별 ‘배텔게우스’가 영감의 주인공이다. 여름 맥주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오미자와 히비스커스를 통해 붉은색 맥주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베텔게우스는 산미와 붉은색이 특징이다. 산미는 유산균을 이용해 발효 전 맥즙의 pH를 낮춰서 만들고, 산미와 곁들일 풍미는 오미자와 히비스커스, 오렌지 필을 넣어 끌어냈다. 이와 함께 숙성과정에서 드라이 호핑 방식으로 시트라 홉을 넣어 시트러스 향미까지 추가하면 맥주는 완성된다.
이렇게 만든 베텔게우스는 직관적인 오미자 향과 맛, 그리고 밝은 체리 색의 외관과 분홍빛의 거품에서 연상되는 붉은 베리류의 새콤달콤한 맛을 갖고 있다.
태평양조 ‘어떤술오미자’
새로운 스타일의 술이다. 맥주처럼 만들었지만, 맥주는 아니다. 100% 쌀로 만들었지만, 막걸리나 약주도 아니다. 쌀을 먼저 당화하고 여기에 약주 효모를 넣어 발효시켰다. 막걸리의 풍미가 느껴질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게다가 홉도 살짝 넣었다. 하지만 와일드 맥주를 만들 때 넣는 홉을 넣었기 때문에 홉의 향은 느껴지지 않는다.
맥주 양조장인 경북 문경의 태평양조(대표 양준석)가 만든 술이다. 술 이름은 ‘어떤술오미자’(7%)다. ‘어떤술’이라는 작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술을 구분할 수 있는 정확한 주종은 없다. 법률상 분류는 기타주류지만 말이다. 하지만 맥주의 탄산감과 오미자의 상큼한 산미, 그리고 쌀의 전분에서 만들어진 알코올이 어우러졌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스파클링 쌀술’이다.
양 대표는 맥주를 만드는 기술에 지역의 쌀을 결합했다. 그리고 술의 풍미를 높이기 위해 오미자를 보탠 것이다. 현재 어떤술은 3가지 버전이 준비돼 있다. 오늘 소개한 ‘어떤술오미자’와 방아잎을 넣은 ‘어떤술방아’가 이달에 출시됐다. 그리고 쌀 100%로 만들고 알코올 도수 11%의 스파클링 쌀술도 준비돼 있다. 이름이 붙여지는 대로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