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일 동안 발효 숙성해서 만든 청주 '설화'
영하 10℃ 침전 여과시켜 귀한 '연둣빛’ 관능'

세상에서 맛있다는 술은 모두 수입되는 세상이다. 당대의 사람들에게 술맛을 인정받아야 생존하는 세상인 것이다. 술의 국적은 더는 의미가 없다. 우리 농산물로 만들었다고 당연히 소비되는 세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우리 술의 미래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술 또는 술맛, 그리고 다른 술과 비교했을 때 차별화된 향미를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이번에는 술맛을 위해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 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의 서울양조장과 대전의 술 벙커가 만든 술이다. <편집자주>

▲ 서울양조장에서 5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다. 이름은 ‘설화백’과 ‘설화금’이다. 쌀 흩임누룩인 ‘설화곡’으로 120일간 발효 숙성했으며, 마지막 한 달은 영하 10도의 초저온 조건에서 침전 및 여과한 술이다. 사진은 류인수 가양주연구소 소장이 설화백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면이다.
▲ 서울양조장에서 5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다. 이름은 ‘설화백’과 ‘설화금’이다. 쌀 흩임누룩인 ‘설화곡’으로 120일간 발효 숙성했으며, 마지막 한 달은 영하 10도의 초저온 조건에서 침전 및 여과한 술이다. 사진은 류인수 가양주연구소 소장이 설화백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면이다.

2025년 09월 06일 13: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적당한 산미와 감미가 잘 어우러진 술이다. 입안에서 질감도 가볍다. 알코올 도수도 적당했다. 상쾌한 산미는 여름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행사 내용을 모르고 시음했다면 화이트와인과 구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서울양조장(겸 한국가양주연구소, 소장 류인수)에서 가진 청주 ‘설화’ 시리즈 발표회에서 맛본 ‘설화백’(알코올 도수 10%)의 시음 평이다. 

‘청주’는 맑은 술이다. 쌀과 누룩으로 빚어 술이 익으면, 술 거르는 도구인 ‘용수’를 항아리 안에 넣고 맑은 술만 취해서 만드는 술이다. 귀하게 만든 술이어서 청주는 제사에 사용했고, 귀한 손님을 맞는 데 쓰였다.

하지만 우리는 ‘청주’를 ‘청주’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다.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이 술을 ‘약주’라고 불러야 했다. 주세법에 정의된 규정 때문이다. 류인수 소장은 ‘설화’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줄곧 ‘청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주세법에 따른 주종은 ‘약주’지만, 우리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는 마음에 ‘청주’를 강조한 것이다. 이 글에선 류 소장의 표현을 받아들여 ‘청주’로 통일해서 사용했다.

▲ 서울양조장의 신제품 ‘설화’ 시리즈는 오양주로 빚었다. 덧술의 횟수가 많을수록 단맛은 섬세해진다고 한다. 당이 작게 잘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초저온에서 숙성된 ‘설화’ 시리즈는 연한 연두빛을 띠고 있다.
▲ 서울양조장의 신제품 ‘설화’ 시리즈는 오양주로 빚었다. 덧술의 횟수가 많을수록 단맛은 섬세해진다고 한다. 당이 작게 잘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초저온에서 숙성된 ‘설화’ 시리즈는 연한 연두빛을 띠고 있다.

청주 ‘설화’는 서울양조장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상품이다. 가장 단순한 재료(쌀과 누룩, 물)로 가장 풍부한 맛을 내고 싶었다는 것이 류 소장의 기획 의도다. 특히 ‘한국의 술’ 그리고 ‘명주’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고 한다. 당화 발효제는 5년 전 출시한 막걸리(서울)부터 사용했던 ‘설화곡’이다. 설화곡은 쌀 흩임누룩으로 쌀 위에 핀 흰곰팡이 모양이 마치 눈꽃처럼 보인다고 해서 류 소장이 이름 붙인 자가 제조 누룩이다.

이 누룩으로 네 번의 덧술을 해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술을 ‘오양주’라고 부른다. 덧술의 횟수가 많아지면 발효 숙성 기간도 비례해서 길어진다. 모두 120일 정도 걸렸다. 이유는 설화곡의 부족한 효모의 개체 수를 초기 덧술 과정에서 확보하기 위해서다. 효모가 빨리 증식되어야 당화와 발효과정이 균형 있게 이뤄져 안정적인 발효가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류 소장은 “오양주의 단맛과 이양주의 단맛이 다르다”며 “덧술을 많이 할수록 더 미세하고 가벼운 단맛을 맛볼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즉 덧술의 횟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당분이 작게 잘라져 섬세한 단맛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단맛이 강조된 일반적인 청주는 무겁고 눅진한 질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질감과 향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맛의 청주를 만들기 위해 류 소장은 오양주 제조법을 선택했다. 

이번에 발표한 술은 알코올 도수 10%의 '설화백'과 13%의 '설화금' 두 종류다. '설화백'은 의도적으로 도수를 낮춘 술이다.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보통 청주의 알코올 도수는 13~15%다. 낮은 도수의 술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겐 음용 감이 그다지 편하지 않다. 류 소장은 청주의 대중화 차원에서 접근성에 초점을 맞추고 ‘설화백’을 개발했다. 그렇다고 향미가 부족하지도 않다. ‘설화금’과 같은 제조공정을 거쳐 생산하고 있어, 산미와 감미의 조화는 물론 섬세한 과일향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알코올 타격감이 없는 ‘설화백’은 안주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술만 단독 마셔도 부담이 없다는 말이다. 식전주로 잘 어울리는 술맛이다. 물론 산미가 있어서 생선회나 기름진 안주와도 잘 어울리지만 말이다. 

사실 술은 알코올 도수가 낮을수록 완성도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이유는 알코올이 주는 향미가 있기 때문이다. 낮은 도수의 술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기술로 부족한 맛을 채우지 못한다면 만들 수 없는 술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저온발효 등의 기술로 채운 것이다. 

이에 반해 ‘설화금’은 알코올 감이 먼저 느껴진다. 알코올 도수 3% 차이지만, 입안에 남는 느낌은 다르다. 산미와 감미도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안주와 곁들이면 술맛이 더 살아나는 술이다. 육회나 기름진 생선회가 잘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설화 시리즈의 관능적 특징 중 하나는 연둣빛의 술 색깔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연두색을 지닌 황금색이다. 고조리서에 나오는 ‘녹파주’와 ‘벽향주’의 술 빛깔이 이와 같을 것이다. 녹파주와 벽향주는 술의 색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류인수 소장은 연둣빛을 우리 술이 지닌 색 중 최고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색을 내기 위해 120일의 긴 여정을 선택했다고 한다. 2개월의 저온발효, 1개월의 냉장 숙성, 그리고 또 1개월의 초저온 침전 여과 과정을 거쳐 생산한다. 저온발효 시의 온도는 약 20℃ 정도다. 마지막 단계의 침전 여과는 영하 10℃에서 이뤄진다.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낮은 온도에서 만들어진 술은 없었을 듯싶다. 류인수 소장은 연둣빛의 술 색깔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다고 설명한다. ‘설화’ 시리즈의 가격은 ‘설화백’이 1만9500원, ‘설화금’이 2만9500원이다. 가성비를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책정한 가격이다. 120일의 생산과정, 하얀색의 유리병 등을 고려한다면 파격적인 결정이다. ‘설화’시리즈의 소비기한은 1년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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