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2일 17: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언론이 뒤늦게 삼성전자의 위기를 말한다고 불평하는 투자자가 있다면 유튜브에서 ‘삼성, 잃어버린 10년’을 검색해 보길 권한다. 지난 3월 K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패권에서 멀어지고 위기에 봉착하는 과정을 치밀하고도 흥미롭게 변증했다.

방영 시점과 비슷한 때에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뽑은 삼성전자 리서치 제목은 이렇다. ‘하반기부터 체질 개선 가속화 기대’, ‘좋은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 아닐까’, ‘유연한 시장 대응으로 수익성 개선에 집중할 것’,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거’. 투자 의견은 말할 것도 없다.

온통 장밋빛 전망이었던 건 아니다. ‘당분간 보수적 관점 권고’란 제목의 리서치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 둔화를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매수 의견이다. 이렇듯 증권가가 삼성전자에 대해 매수 의견으로 일관하는 동안 주가는 52주 신저가의 늪에 빠졌다.

삼성전자의 더 큰 문제는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별다른 묘수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증권가는 왜 매수 의견 일색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잖아도 리서치의 신뢰도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실망감만 확산하는 형국인데 이래도 상관없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매수 의견은 안 고치면서 스리슬쩍 목표주가만 내리는 증권가의 관행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매수 의견을 유지한 채 언론 인터뷰에선 ‘삼성전자의 겨울’이라고 언급하는 행위도 이율배반적이다. 확실하게 띄워 주든 일관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하든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그간 나는 애널리스트와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의견을 최대한 신뢰하고자 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팔아야 할 땐 팔아야 한다고 말하는 애널리스트가 적어도 한 명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모두가 똑같은 스탠스다.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리서치센터의 독립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신뢰를 완전히 거두고 싶진 않다. 일각에선 더는 증권사의 리서치를 안 믿는다고 하지만 리서치의 공신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전히 리서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투자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눈물의 손절을 권할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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