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퇴직연금 실물이전 시행 앞두고
증권사에 고객 뺏길라 상품 30여개 보강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도입을 앞두고 은행들이 상장지수펀드(ETF) 등 상품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수익률이 높고 라인업이 화려한 증권업계에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는 대응책이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은 현재 101~131개의 ETF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이들 은행은 조만간 ETF 개수를 30~40여개 더 보강할 예정이다.
앞서 국민은행이 지난 21일 기존 68개에서 33개를 추가 확대했으며,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이달 말까지 46개, 34개를 각각 추가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구체적인 보강 수치가 나오진 않았지만, 연말 기준으로 은행권 최다 수준 펀드 ETF 보유를 목표로 설정했다.
은행들이 앞다퉈 ETF 상품을 확대하는 것은 퇴직연금 시장에서 고객을 붙잡아두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저조한 수익률, 적은 포트폴리오 등이 약점으로 꼽히면서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올해 3분기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400조87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은행권이 차지하고 있는데, 4대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만 144조2451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123조0202억원) 대비 21조2249억원 늘어난 규모다. 은행마다 적립금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적게는 3조5000억원에서 많게는 6조9000억원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4대 은행의 퇴직연금 원리금 보장 평균 수익률은 △확정급여(DB)형 3.86% △확정기여(DC)형 3.57% △개인형 퇴직연금(IRP) 3.43%, 원리금 비보장 평균 수익률은 △DB형 9.67% △DC형 13.56% △개인형 IRP 13.86%다.
'안정성'을 무기로 내세운 은행들이 퇴직연금 시장에서 존재감을 더 키웠지만, 수익률은 타 업권 대비 저조하다는 평가다. 그간 증권사 원리금 보장·비보장형 수익률에서 모두 밀리면서, 업계에선 ETF를 포함한 실적배당형 상품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오는 31일 '퇴직연금 갈아타기' 시행에 앞서 은행들이 상품 라인업 확대에 공들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익률이 높거나 다양한 상품을 가진 운용사로 손쉽게 옮길 수 있게 되는 만큼, 최대한 상품 수를 늘리고 있는 모습이다.
실물이전 제도는 DB형, DC형, IRP 등 같은 제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가입자가 운용 중인 상품이 실물이전 대상에 해당하더라도 이전을 희망하는 사업자가 동일한 상품을 취급해야 실물이전을 할 수 있다.
다만 실적배당형 상품 확대 등에도 업계 특성상 한계점이 여전하다는 평도 있다. ETF 라인업 개수가 600~700개가량인 증권사보다 그 수가 적다는 점, 실시간 ETF 거래가 아닌 예약매매 방식이라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은행권은 ETF 상품을 점차 확대해나가는 한편, 펀드 및 ETF 사후관리 모니터링 강화, 전문 관리 서비스를 통해 고객 수익률 관리에 힘을 주겠단 방침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물이전이 본격화하면 수익률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동 흐름이 보일 수 있다"면서도 "ETF 상품 확대 등 고객 니즈에 맞는 상품을 제공하고, 고객 수익률 관리를 위해 펀드 및 ETF 사후관리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연서 KB골든라이프 평촌범계연금센터장은 " 단순히 많은 상품이 라인업 되어 있다고 해서 꼭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 퇴직연금 관리를 위해 유익한 정보를 제때 제공받을 수 있느냐, 연금에 대해 원하는 방식으로 전문가와 상담이 가능한가 등을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이진희 기자 ljh@kbanker.co.kr